"연봉 뱉어내!" 야유 쏟아지자 머리 '긁적'…또 '홍명보가 홍명보했다' [오승혁의 현장]


30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로 귀국한 홍명보 축구 대표팀 감독
"나가라" "꺼져라" 야유에 고개 들고 시선 정면, 머리 긁적 행진

홍명보 전 한국 축구 대표팀 3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홍 감독이 이끈 축구 대표팀은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32강 진출 실패라는 불명예를 안고 귀국했다. /인천국제공항=남윤호 기자(현장풀)

[더팩트|인천국제공항=오승혁 기자] "홍명보 나와! 연봉 뱉어라!"

"명보 형, 저도 벤치에 앉아서 20억 받고 싶어요!" "20억이 아니라 37억이래요!"

30일 새벽, 어둠이 짙게 깔린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은 평일 새벽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날카로운 고성과 야유로 가득 찼다. 이날 '오승혁의 현장'이 찾은 홍명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귀국 현장은 환영 대신 분노한 축구 팬들과 유튜버, 취재진, 그리고 이들을 통제하려는 경찰 인력 등이 뒤엉키며 그야말로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취재진은 새벽 2시 30분께 입국장에 당도했다. 당초 미국 애틀랜타에서 오는 비행기 도착 예정 시간인 새벽 4시를 1시간 30분 정도 앞둔 시점이었지만, 이미 입국장 게이트 앞은 수십 명의 취재진, 유튜버, 경찰, 공항 경비 인력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새벽 3시를 기점으로 경찰 기동대가 입국장 주변으로 촘촘하게 '벽'을 치며 통제 라인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갈수록 인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최근 현장을 향한 홍 감독 살해 협박 등이 등장했고, 12년 전 귀국길의 '엿 테러'를 겪었던 그와 축구 대표팀의 안전을 염려한 경찰은 인천공항에 기동대와 공항경찰단 소속 경찰관 160명을 대거 배치했다. 인천공항공사 역시 특수경비원과 자회사 직원 등 25명을 현장에 긴급 투입해 삼엄한 경비 태세를 유지했다.

이들 경호 인력 중 일부는 우산을 들고 대기하기도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현장의 축구 팬들은 "뭐 계란이나 엿 날아오면 막으려는 거냐"며 "홍명보 경호에 지금도 얼마나 많은 세금이 투입되고 있는 거냐"고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당초 오전 4시 도착 예정이던 비행기가 오전 3시 15분께 조기 착륙하면서 현장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비행기 착륙 이후에도 홍 감독의 모습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입국장 유리창 너머로 수속을 밟은 홍 감독이 축구협회 관계자들과 긴밀하게 대화를 나누며 머무는 모습이 포착되자, 기다림에 지친 팬들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팬들은 게이트를 향해 "밍기적거리지 말고 당장 나와라"며 소리를 질렀고,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홍 감독의 거액 연봉을 비꼬는 야유가 사방에서 터졌다. 한 팬이 게이트를 향해 "명보 형! 저도 벤치에 앉아서 20억 받고 싶어요! 저도 20억 벌고 싶어요!"라고 외치자 현장에서는 실소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에 근처에 있던 다른 축구 팬은 "20억 아니고 37억이래요"라고 응수하며 허탈함을 표하기도 했다.

홍 감독이 게이트 인근에 도달했을 무렵에는 붉은악마 팬들과 유튜버 등 80여 명에 달하는 인파가 한목소리로 "홍명보 나가!"를 외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대한민국 관문에서 벌어진 자국의 축구 대표팀 감독을 향해 벌어진 이례적인 소동에 입국장을 지나던 외국인 관광객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듯 구경하느라 바쁜 모습을 보였다.

현장의 팬들은 "홍명보 나가!" "홍명보 뒤져라!" "꺼지세요!" 등의 격앙된 구호를 외치며 배출구를 찾지 못한 분노를 뿜어냈다. 갈등이 극에 달한 순간, 확성기를 든 한 붉은악마 관계자가 의자에 올라섰다. 그는 "정당한 비판은 존중하지만 절대 폭력 사태는 없어야 한다"며 현장 참가자들에게 안전을 지켜줄 것을 거듭 부탁했다. 이 같은 자제 촉구와 삼엄한 경비 덕에 다행히 신체적 충돌 등 최악의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30일 새벽 오승혁의 현장은 홍명보 축구 대표팀 감독의 입국을 취재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찾았다. 홍 감독은 머리를 고개를 꼿꼿이 든 채 시선을 정면에 고정하고 묵묵히 앞으로만 걸어 나갔다. 다만 사방을 가득 채운 분노와 적대적인 반응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걸어가며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인천국제공항=오승혁 기자

한바탕 쌍욕과 거친 고성이 휩쓸고 지나간 뒤 마침내 자동문이 열리고 홍 감독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험악한 야유 속에서도 홍 감독은 이른바 '홍명보다운' 태도를 유지했다. 말 그대로 홍명보가 홍명보했다. 고개를 꼿꼿이 든 채 시선을 정면에 고정하고 묵묵히 앞으로만 걸어 나갔다. 다만 사방을 가득 채운 분노와 적대적인 반응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걸어가며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현장의 저항은 집요했다. 팬들은 대한축구협회(KFA) 로고를 영정 사진처럼 합성한 이미지를 태블릿 PC 화면에 띄워 들어 올리는가 하면, 홍 감독의 얼굴을 거짓말쟁이의 대명사인 '피노키오'처럼 길게 늘여 만든 피켓을 들고 "연봉을 뱉어내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한국 축구는 죽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졸전을 펼치다 조기 퇴장한 대표팀의 상황에 대한 분노를 여과 없이 표출했다.

현장에서 만난 축구 팬들의 목소리는 단순히 감독 한 명의 퇴진만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인터뷰에 응한 팬들은 "당장 홍명보 감독의 사퇴가 끝이 아니다"라며 입을 열었다. 이어 "그간의 인터뷰와 행적을 보면 여전히 축구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개인의 미련을 떠나 축구협회 윗선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국 축구에 미래가 있다. 전면적인 물갈이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성토했다.

새벽 공항을 붉게 물들인 축구 팬들의 함성은 축구협회의 밀실 행정과 독단적 결정에 대한 대중의 폭발적인 불신을 그대로 증명했다. 쏟아지는 야유를 뒤로 하고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간 홍 감독과, "물갈이"를 외치며 한 목소리를 낸 팬들의 상반된 모습은 '누가 더 나를 버리고 한국 축구를 위했는지'를 자연스레 보여줬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에서 1승 2패 3위로 32강 진출에 실패, 일찌감치 짐을 싸서 귀국길에 올랐다. 홍명보 감독은 29일 귀국 직전 멕시코 현지에서 자진사퇴를 밝혔다.

sh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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