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는 술장사는 옛말"…위기의 맥주 업계, '문턱' 낮추고 '경험' 입혔다 [오승혁의 '현장']


16일 대한민국맥주박람회 개막...획일적 '카스·테라' 넘어 수백 가지 취향으로
바틀샵, 탭하우스 문 여는 MZ세대

16일 오승혁의 현장은 코엑스 강남에서 개최된 대한민국맥주박람회를 찾았다. 화수네 양조장에서 시그니처 메뉴인 바닐라 스타우트를 내리고 있다. /코엑스 강남=오승혁 기자

[더팩트|코엑스 강남=오승혁 기자] "맥주는 맥주죠. 사실 저도 그랬고 그냥 직관적으로 봤을 때 라벨 예쁜 것, 내 마음에 드는 것, 끌리는 거 이런 게 중요하죠. 검은 색이 딱 보이면 흑맥주 맛이 날 것 같고, 병에 딸기 써있으면 딸기 맛이 날 것 같고요. 이렇게 편하고 쾌적하게 맥주 즐길 수 있게 애쓰고 있습니다." (코리안 화이트 브루어리 김휘은 대표)

16일 '오승혁의 '현장''은 서울지하철 2호선 삼성역과 9호선 봉은사역 인근에 위치한 코엑스 강남을 찾았다. 이날부터 이곳에서 '대한민국맥주박람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국내외 주류 산업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제8회 대한민국맥주박람회(KIBEX 2026)’는 18일까지 3일간 개최된다. 올해 전시는 글로벌 브랜드의 공세와 국내 기업들의 꾸준한 참여에 힘입어 전년 대비 14% 성장한 280개사 360부스 규모로 꾸려져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대학가 술 장사는 부자되는 지름길이라는 소리는 이제 '옛날 얘기'라는 탄식이 들린다. 질병관리청의 13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의 월간 폭음률(최근 1년 동안 월 1회 이상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성은 7잔(맥주 5캔), 여성은 5잔(맥주 3캔) 이상 마신 비율)의 중앙값은 33.8%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2021년 31.7%에서 2023년 35.8%까지 상승한 뒤 최근 2년 연속 감소했다.

술자리와 술을 즐기는 이들 모두 계속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더해 라거, 에일, 스타우트, 필스너, 바이젠 등의 여러 종류로 분류되는 맥주는 이런 문화 자체가 높은 진입장벽으로 여겨져 대중화의 문턱에서 주춤해왔다.

식당에서 맥주를 시키면 카스나 테라 중에 골라야 하는 상황과 정반대로 최소 수십개에서 많게는 몇 백 가지의 맥주를 판매하는 바틀샵과 탭하우스를 즐기는 이들이 공존하는 기묘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날 현장에서 만난 수제맥주 업계는 더 이상 소비자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라벨이 예뻐서', '내가 좋아하는 향이라서' 집어 들 수 있는 직관적인 경험과 지역의 스토리를 내세우는 방식으로 승부한다. 한국수제맥주협회(KCBA)는 행사 기간 20여개 협회 회원사와 개별 양조장이 참여하는 단체관을 구성해 참여하고 있다.

맥주는 크게 발효 방식에 따라 '에일(Ale)'과 '라거(Lager)' 두 가문으로 나뉜다. 상온에서 발효해 과일 같은 풍부한 향과 깊은 맛을 내는 에일은 페일 에일, IPA, 밀맥주인 바이젠(Weizen) 등을 포함하며, 볶은 보리를 사용해 묵직한 풍미를 내는 흑맥주 '스타우트(Stout)' 역시 에일의 한 종류다.

16일 오승혁의 현장이 찾은 대한민국맥주박람회에서 많은 이들이 크래프트 비어를 즐기고 있다. /코엑스 강남=오승혁 기자

반면 낮은 온도에서 발효해 깔끔하고 톡 쏘는 청량감이 특징인 라거는 필스너, 둔켈 등으로 세분화된다. 우리가 식당에서 흔히 접하는 '카스'나 '테라' 같은 대중 맥주 대부분이 이 라거 군단에 속한다.

맥주 업계는 이런 설명보다는 각 지역의 특산물과 이야기를 맥주에 담는 방식으로 새로운 애주가들의 유입을 기대하고 있다. 코리안 화이트의 '하멜촌 맥주'도 그렇다. 하멜 표류기로 익숙한 헨드릭 하멜이 조선에서 보낸 17년 중 상당 기간을 전남 강진에서 머물렀다는 역사적 사실을 맥주에 녹여냈다.

코리안 화이트 브루어리 관계자는 "동네 분들은 익숙한 라거를, 젊은 층은 브라운 에일을 선호한다"며 "IPA 같은 매니아틱한 종류도 최대한 어렵지 않게 풀어내려 노력 중이다"라고 전했다. 강진의 대표 맥주로 자리 잡은 하멜촌 맥주는 현재 서울 일부 바틀샵과 탭하우스에도 진출하며 전국구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2003년 울산에서 시작해 경주까지 영역을 넓힌 한 화수네 양조장 부스 앞에는 유독 긴 줄이 늘어섰다. 이곳의 무기는 이름만 들어도 맛이 상상되는 '바닐라 스타우트'다.

현장을 찾은 취재진이 "에일과 스타우트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자, 관계자는 "페일 에일은 홉의 과일향이나 시트러스함이 특징이라면, 스타우트는 볶은 보리를 사용해 커피나 초콜릿 향을 내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질소 가스가 흐르는 '폭포수 효과'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지나가던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이색적인 스토리를 자랑한 곳은 '울릉브루어리'었다. 울릉도에서 5대째 살고 있다는 양조장 정성훈 대표는 30년간 자연 정화된 '용출수'를 맥주의 핵심 원료로 소개했다. 프랑스 에비앙보다 높은 미네랄 함량을 자랑하는 이 물로 만든 맥주들은 이름부터 남다르다.

울릉도를 찾는 이들이 즐기는 액티비티인 수영, 다이빙, 캠핑, 하이킹 등으로 맥주의 이름을 지었다. 이외에도 울릉도의 찻잎인 '이슬차'를 넣은 에일 등을 선보이며, 맥주를 단순한 음료를 넘어 지역의 자연을 마시는 경험으로 격상시켰다.

현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카테고리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마셔본 맥주가 내 입맛에 맞을 때 비로소 '나만의 맥주'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이날 박람회 현장을 찾은 주류 큐레이션 서비스 '바틀리스트' 관계자는 "술 마시는 젊은 층이 줄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한 잔을 마셔도 내 취향에 맞는 맛있는 술을 찾는 이들은 늘었다"며 "시장의 중심이 '양'에서 '질'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전문가는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맥주에 대한 인식이 매우 유연하고 접점이 많다"며 "한국도 소비자들이 용기를 내어 탭하우스 문을 열 수 있도록, 더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의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코엑스 인근에서 근무한다는 한 30대 직장인은 "코엑스에서 가본 박람회 중에 가장 고객의 접점을 많이 생각한 것 같다"며 "박람회에 오면 관계자들끼리만 소통하고 일반 소비자는 소외되는 느낌을 받은 경우가 더러 있는데, 여기서는 정말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라벨이 예뻐서 선택하고, 딸기 그림을 보고 딸기 맛을 기대하며 마시는 것. 수제맥주의 높은 벽은 어쩌면 만드는 이와 마시는 이가 함께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만난 맥주는 그 벽을 허물고 다시 '대중의 잔' 속으로 스며들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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