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이다원 기자] "선이 굵은 중성적인 얼굴, 저만의 매력 아닐까요?"
당당한 자태가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다. 전형적인 미인의 얼굴은 아니었지만 블랙홀 같은 마력이 표정 곳곳에 묻어난다. 트렌스젠더 역을 두 번이나 한 배우 이엘(31·김지현)의 목소리에는 오랫동안 연기 하나만 보고 달려온 자신만의 신념이 굳게 베어 나왔다.
이엘은 최근 서울 가산동의 <더팩트> 사옥을 방문해 배우로서 겪었던 좌절과 집념, 자신에 대한 소소한 얘기까지도 모두 털어놓으며 취재진의 귀를 사로잡았다. 검정고시 이력과 얼마 전까지 아르바이트한 경험 등 여배우로서 쉽게 꺼내지 못할 얘기까지 펼치며 솔직하고 털털한 속내를 보여줬다.
◆ 독특한 마스크 "내겐 오히려 장점"
인형처럼 깜찍한 얼굴의 여배우는 아니다. 오히려 남성적인 매력마저 묻어나는 '톰보이'형 외모다. 여자로서 트렌스젠더 연기에 도전한 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중성적인 매력이 빛난다.
"그게 제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요. 선머슴처럼 생기거나 청순가련형도 아닌 성 중간에 서 있는 느낌이 강하잖아요? 목소리도 낮고 몸매도 굉장히 스키니해서 마르고 예쁜 남자 같아 보이기도 한대요. 그런 얘길 듣다 보니 '틈새시장을 노릴 수 있겠구나' 싶었죠. 몸 쓰는 것도 워낙 좋아하니까 액션 배우가 되는 것도 괜찮고요."
그러나 소신과 달리 오디션에서는 선 굵은 외모가 오히려 장애가 돼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고.
"그땐 아픈 소리도 많이 듣고 상처도 받았어요. 진짜 난 안 되는 건가? 이런 생각도 했죠. 하지만 작은 역이라도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니까 인정해주는 분들이 늘어나더라고요. 지금은 마음 편히 연기에 몰입하다 보니 체형이나 강한 얼굴선도 부드럽게 보이던데요?"
영화 '하이힐'과 SBS 수목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두 번씩이나 트렌스젠더 역을 맡으며 사람들에게 주목받은 것도 독특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제가 센 캐릭터를 좋아하거든요. 아직 작품을 많이 안 해봐서 그런지 일상적인 감정 속에서 디테일한 느낌을 살리기 어렵더라고요. 오히려 상황이 세서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배역이 저에게 맞았어요. 특히 '괜찮아 사랑이야'는 '하이힐'에서 이미 트렌스젠더 연기를 한 번 해본 뒤 출연한 거라 감정을 잡기 어렵지 않더라고요. 노희경 작가가 짧게 쓴 한 대목만 봐도 그냥 눈물이 나오던데요? 반응이요? 방송 끝나고 검색어 1위 했다는 걸 친구들의 문자 보고 알았어요. 얼떨떨하던데요? 하하."
◆ 검정고시로 배우까지 "조바심요? 전혀 안 나요"
공부에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닫고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둔 건 그의 확고한 자아를 보여주는 경험이었다. 이어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연기 학원을 다니게 됐고 그 속에서 재미를 찾은 그는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 입학하며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어릴 적부터 서양화가인 아버지를 따라 영화를 많이 봤어요. 또 미술관, 오페라 극장, 연주회 등등 주말마다 문화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예술 속에서 살게 됐죠."
그러나 연기 활동은 순탄치 않았다. MBC 일일드라마 '엄마의 정원'에 합류하기 직전까지 홍대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와 병행할 정도였다고.
"지금 생각하면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땐 눈물 마를 날이 없었죠. 주머니는 비어가는데 부모에게 돈을 받을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카페에서 일했는데 제 최대 슬럼프였어요. 오랫동안 활동했지만 늘 생활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고 손님 가운데 절 알아봐주는 사람도 한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를 갈았어요."
흔들리지 않고 한 길을 달려온 까닭일까. 얼굴에 조바심이 보이지 않는다. 김희애 전도연 김성령 등 30대를 훌쩍 넘긴 여배우들의 활발한 활동이 그에게 더욱 힘이 된다는 설명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불안감이 컸지만 이젠 아니에요. 그 선배들 보면서 '연기가 반짝 예쁠 때 하는 게 아니구나, 꾸준히 하면 되는구나'는 걸 느꼈거든요. 오랫동안 제 롤모델인 전도연 선배처럼 대체할 수 없는 연기력과 흡인력, 일상 연기에 강하면서도 폭발적으로 감성을 쏟아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독특한 매력만큼이나 빛날 그의 존재감에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