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지 없는 MMA?”...AG 첫 메달 노리는 태극전사 3인 [오승혁의 길로틴]


8일 만난 아시안게임 MMA 국대 선수들
윤태영·최은석·이보미, 열린 매트 적응부터 중앙아시아 레슬링 대비까지

8일 오승혁의 길로틴은 아시안게임 MMA 첫 국가대표들과 만나 국제대회에 임하는 각오를 들었다. 왼쪽부터 이보미, 윤태영, 최은석. /서울 강남=오승혁 기자

[더팩트|서울 강남=오승혁 기자] "너무 최고를 목표로 잡고 ‘최고가 될 거야’ 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면 결국 최고가 돼 있지 않을까요."

아시안게임 첫 종합격투기(MMA) 무대를 앞둔 윤태영의 말은 담담했다. 같은 꿈을 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묻자 나온 답이었다. 로드FC 웰터급 챔피언으로 프로 무대를 누벼온 그에게도 태극마크를 달고 치르는 이번 대회는 낯선 도전이다.

10일 낮 ‘오승혁의 길로틴’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에 있는 도무스를 찾았다. 지난해 말 문을 연 이곳에서는 매주 주말 MMA 경기가 열린다. 관객들은 식사와 음료를 즐기며 경기를 보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선수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눈다. MMA를 케이지 안에만 가두지 않고 대중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는 취지다.

8일 낮 오승혁의 길로틴은 케이지 안에서 아시안게임 MMA 국가대표들과 훈련, 목표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서울 강남=오승혁 기자

이날은 경기가 없는 케이지 안에 마이크가 놓였다. 평소라면 링 위 천장에 매달린 마이크가 내려오면 링 아나운서가 이들의 등장을 알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은 케이지 바닥에 놓인 마이크 주위를 남자 트래디셔널 -77㎏ 윤태영, 남자 모던 -71㎏ 최은석, 여자 모던 -54㎏ 이보미가 둘러앉았다. MMA가 처음 정식 메달 종목으로 치러지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을 대표할 세 선수다.

경기는 오는 20일부터 22일까지 일본 나고야시 이나에 스포츠센터에서 열린다. 20일 예선에 이어 21일 준결승, 22일 결승이 펼쳐진다. 아시아 23개 국가·지역에서 모인 선수 59명이 남자 모던 -60㎏·-71㎏, 남자 트래디셔널 -65㎏·-77㎏, 여자 모던 -54㎏, 여자 트래디셔널 -60㎏ 등 6개 체급의 초대 메달을 놓고 겨룬다.

MMA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경기 흐름이 복잡해 보일 수 있다. 선수들은 서서 펀치와 킥을 주고받다가 상대의 허리나 다리를 잡아 넘어뜨린다. 승부는 바닥에서도 계속된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 타격을 이어가거나 관절기와 조르기로 항복을 받아낸다.

강한 타격으로 상대가 의식을 잃으면 KO, 심판이 경기를 더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TKO가 선언된다. 관절기나 조르기에 걸린 선수가 항복하면 서브미션으로 끝난다. 제한 시간 안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판정으로 승자를 가린다. MMA가 Mixed Martial Arts의 약자로 여러 무술의 조합을 뜻하는 만큼 펀치, 킥, 관절기 등 모든 것을 겨루게 된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 MMA가 UFC 등 프로 경기와 완전히 같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가장 큰 차이는 철망으로 둘러싸인 케이지가 없다는 점이다. 선수들은 열린 매트 위에서 싸운다.

UFC를 비롯한 MMA 프로 무대에서는 상대를 철망으로 몰아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반대로 케이지에 기대 테이크다운을 방어할 수 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런 ‘케이지 레슬링’을 사용할 수 없다. 물러서다 경기장 밖으로 밀려나는 상황도 신경 써야 한다.

아시아종합격투기협회(AMMA) 경기 규정상 경기장은 매트 위에 팔각형 경계를 표시한 형태다. 상대의 공격과 관계없이 한 선수가 스스로 경계 밖으로 나간 상황이 같은 라운드에 세 차례 쌓이면 그대로 패배할 수 있다. 케이지가 사라진 자리를 공간 싸움이 대신하는 셈이다.

복장에 따라서도 경기가 모던과 트래디셔널로 나뉜다. 모던 선수는 반바지와 래시가드를 착용하며 상대의 옷을 잡을 수 없다. 소매 없는 도복을 입는 트래디셔널 선수는 도복을 잡아 상대를 제어하거나 넘어뜨리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같은 MMA라도 거리 싸움과 테이크다운, 그라운드 공방의 양상이 달라져 보는 이들에게 다양한 상황을 선사할 가능성이 크다.

8일 만난 이보미(27·여자 54㎏급·모던), 자신의 강점인 타격을 살리기 위해 테이크다운과 그라운드 방어를 보완했다. /서울 강남=오승혁 기자

세 선수에게 프로 경기와 국가대표 경기가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이보미는 "나라를 대표해서 나간다는 게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윤태영도 프로 무대에서는 자신을 위한 경기를 치렀다면, 아시안게임에서는 한 경기 한 경기가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증명하는 승부가 된다고 했다.

최은석에게 이번 대회는 아시아 강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현재 위치를 확인할 기회다. 국가대표라는 책임감과 함께 자신의 실력이 어디까지 통할지 겨뤄보고 싶다는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자신감만으로 준비한 것은 아니다. 경계하는 상대를 묻자 세 선수의 입에서 구체적인 패배 경험과 훈련 이야기가 나왔다.

8일 만난 최은석(20·남자 71㎏급·모던), 중앙아시아 선수들의 강한 레슬링에 대비해 공격과 방어를 집중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서울 강남=오승혁 기자

최은석은 앞선 국제대회에서 맞붙었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선수들의 레슬링과 신체 능력을 먼저 꼽았다. 직접 싸워보며 강점을 느꼈고, 패배하면서 자신의 약점도 확인했다. 이번에는 같은 결과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상대의 공격에 맞춘 방어와 반격을 집중적으로 준비했다.

윤태영 역시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나오는 만큼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다고 했다. 특히 레슬링과 힘이 강한 상대를 염두에 두고 코치와 함께 테이크다운 방어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타격에 강점이 있는 이보미의 숙제는 그라운드였다. 앞선 국제대회에서 상대와 바닥 공방을 벌이다 서브미션으로 패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는 상대의 테이크다운과 그라운드 공격을 막고 자신이 유리한 타격 싸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경기장이 케이지에서 매트로 바뀌면서 훈련 방식도 달라졌다.

최은석은 타격이 섞이는 MMA에서는 상대와 거리를 좁혀 몸을 붙이는 과정부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프로 경기에서는 상대를 케이지로 몰아 움직임을 제한한 뒤 넘어뜨릴 수 있지만, 열린 매트에서는 상대가 옆으로 빠져나갈 공간이 많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훈련을 거치면서 매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8일 만난 윤태영(30·남자 77㎏급·트래디셔널), 케이지가 없는 경기와 도복 공방에 대비해 도복 주짓수 훈련을 늘렸다. /서울 강남=오승혁 기자

트래디셔널에 출전하는 윤태영은 최근 도복 주짓수 훈련을 늘렸다. 상대의 도복을 잡고 움직임을 제어하거나, 자신이 도복을 잡혔을 때 풀어내는 공방을 경기 운영에 접목하기 위해서다. 프로 무대에서 쌓은 경험에 전통 무술의 그립 싸움을 새로 덧붙이고 있다.

이보미는 매트의 경계를 의식하며 훈련하고 있다. 뒤로 물러서며 대응하기보다 자신이 먼저 상대를 압박하고 몰아가는 연습에 집중했다. 같은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세 선수가 풀어야 할 문제는 각자의 체급과 경기 방식에 따라 달랐다.

대회가 끝난 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묻자 긴장감이 조금 풀렸다. 상대의 레슬링과 테이크다운을 말하던 선수들의 입에서 음식과 휴식 이야기가 쏟아졌다.

이보미는 일본에서 여러 음식을 마음껏 먹고 싶다고 했다. 윤태영은 짜고 맵고 단 음식부터 빵과 디저트, 기름진 고기를 차례로 떠올렸다. 감량을 위해 미뤄둔 음식들이다.

최은석이 기다리는 것은 평범한 하루였다. 정신없이 달려왔다는 그는 대회를 마치고 찾아오는 추석에는 시골에 내려가 조용히 쉬고 싶다고 했다.

편하게 웃던 선수들도 프로 선수와 국가대표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다시 진지해졌다. 화려한 기술이나 단기간에 강해지는 방법보다 힘든 시간을 견디며 운동을 이어가는 태도를 이야기했다.

이보미는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은 고되지만 그 끝에서 얻는 성취도 크다며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태영은 최고라는 결과에 매달리기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최은석은 하루에 모든 힘을 쏟아붓고 지치는 것보다 자신의 운동량을 조절하며 오래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잘하는 선수도 포기하면 그 자리를 지킬 수 없고, 부족한 선수라도 오랫동안 훈련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아시안게임 MMA 메달에 도전하는 세 선수는 지금까지 그렇게 하루를 쌓아왔다. 패배했던 상대를 분석하고, 케이지 대신 열린 매트에 적응하고, 도복을 입은 새로운 공방을 준비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미뤄가며 감량도 견뎠다.

인터뷰를 마친 윤태영이 익숙하게 닭가슴살을 꺼내 먹고 최은석과 이보미가 헤드셋을 끼고 명상하듯 잠시 차분한 시간을 보내는 풍경은 수련하는 수도승을 연상시켰다.

오는 20일에는 케이지 문 대신 나고야의 매트가 이들을 기다린다. 프로 무대에서 자신을 위해 싸웠던 선수들이 이번에는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 MMA의 첫 아시안게임 메달을 향해 나선다.

sh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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