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50억원·메이저 2연승’ 유해란, LPGA 역사를 바꿨다[박호윤의 IN&OUT]


코다와 시즌 메이저 2승씩 양분…AIG서 3연승-그랜드슬램 ‘최후 결전’

연장 승부 끝에 아문디에비앙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유해란이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AP.뉴시스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골프란 참…, 이런 승부도 있네.'

그렇게 중얼거리게 만든 진땀 승부, 그러나 결국 챔피언은 유해란(25)이었다.

#5타차 리드에서 연장 승부까지...중압감 이겨내고 메이저 2연승

12일 밤(한국시간) 막을 내린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유해란은 경기 초반 한때 5타 차 선두를 달리며 메이저 2연승을 눈앞에 두는 듯했다. 그러나 골프는 필드 위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스포츠다. 최종일을 무려 7타 차 뒤진 채 출발했던 브룩 헨더슨(캐나다)의 추격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헨더슨은 7번홀(파5) 이글에 이어 8번홀(파3)에서는 홀인원을 터뜨렸고, 같은 홀에서 유해란이 보기를 범하면서 순식간에 격차는 1타 차로 좁혀졌다.

흐름은 완전히 바뀌었다. 유해란이 좀처럼 버디를 잡아내지 못하는 사이 헨더슨은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또 한 번 이글을 낚으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반면 전날 메이저 대회 역사상 18홀 최소타 타이인 11언더파 60타를 몰아쳤던 유해란은 최종일 내내 침묵하다가 18번홀에서야 첫 버디를 잡으며 가까스로 이븐파를 기록했다.

유해란(가운데 노란 티셔츠)이 연장 첫 홀 버디 성공으로 우승을 확정짓자 동료들이 축하의 샴펜을 뿌려주고 있다./AP.뉴시스

승부의 흐름이 흔들리자 중계 화면에는 잔인한 숫자들이 등장했다. '최종 라운드 상위권 30명 가운데 유일하게 버디가 없는 선수.' 이어 '1992년 이후 최종일 버디 없이 우승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등… 우승을 눈앞에 둔 유해란을 향한 압박은 점점 커졌다.

그 순간 무너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챔피언은 위기에서 더욱 빛난다. 유해란은 연장 첫 홀에서 언제 흔들렸냐는 듯 침착하게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승부를 끝냈다. 전날의 화려했던 '60타'보다 훨씬 값진 한 퍼트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기록보다 극한의 압박 속에서도 끝내 승부를 마무리한 퍼트가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박세리, 박인비, 고진영에 이어 네번째 단일시즌 메이저 2승

이번 우승으로 유해란은 한국 여자골프 역사에서 박세리(1998년), 박인비(2013·2015년), 고진영(2019년)에 이어 단일 시즌 메이저 2승을 달성한 역대 네 번째 선수가 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불과 3주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 우승이 한 번도 없었던 선수가 순식간에 메이저 2관왕으로 올라섰다는 사실이다.

우승의 대가는 화려했다.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우승 상금 195만 달러에 이어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 상금 140만 달러를 더하며 메이저 두 대회에서만 335만 달러(약 50억 원)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돈보다 더 큰 변화는 세계 여자골프의 권력 지형이다.

#올시즌 메이저, 코다와 유해란이 양분, 투어 사상 최초

올 시즌 치러진 메이저 4개 대회는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다(미국)와 유해란이 정확히 둘씩 나눠 가졌다. 코다가 셰브론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을 제패하자, 유해란은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과 에비앙 챔피언십을 연이어 품에 안으며 정면으로 응수했다.

이는 70년이 넘는 LPGA투어 역사에서 단 한번도 없었던 장면이다. 1983년 4대 메이저 체제가 확립된 이후는 물론이고 현재의 5개 체제로 바뀐 2013년 이후에도 단일 시즌에 메이저 복수 우승자가 2명 동시에 탄생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7타의 열세를 딛고 승부를 연장까지 몰고 간 캐나다의 브룩 헨더슨(왼쪽). 헨더슨은 2022년 이 대회 우승자이기도 하댜./AP.뉴시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 여자골프가 보여준 존재감이다.

시즌 초반에는 김효주가 포드 챔피언십과 파운더스컵에서 넬리 코다를 연이어 제치며 세계랭킹 1위의 질주에 가장 먼저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메이저 시즌이 시작되자 이번에는 유해란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코다가 먼저 메이저 두 개를 가져가자 유해란 역시 두 개를 따내며 균형을 맞췄다.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다는 여전히 올 시즌 최고의 선수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독주를 허락하지 않은 것도 한국 선수들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김효주가, 메이저 무대에서는 유해란이 번갈아 코다의 앞을 가로막으며 여자골프의 긴장감을 끝까지 이어갔다.

#메이저 3연승과 커리어 그랜드슬램 대충돌

이제 모든 시선은 시즌 마지막 메이저인 AIG 여자오픈으로 향한다.

이달 말 열리는 AIG오픈에서 유해란은 메이저 3연승이라는 새로운 역사에 도전한다. 반면 코다는 에비앙에서는 비록 컷오프에 실패했지만 마지막 퍼즐을 맞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에 나선다.

한 명은 새로운 역사를 쓰려 하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의 역사를 완성하려 한다. 그리고 그 무대의 중심에는 대한민국 여자골프가 있다.

넬리 코다의 독주 시즌으로 기억될 것 같았던 2026시즌은 중반을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세계랭킹 1위 코다와 끝까지 맞서며 시즌의 흐름을 바꾼 한국 선수들이 함께 만들어낸 시즌으로 남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다.

메이저 3연승이냐, 아니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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