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5월의 미사경정장은 단순한 수면이 아니었다. '여왕'의 왕관을 놓고 벌이는 여전사들의 치열한 전장이자, 세대 간의 자존심이 충돌하는 거대한 체스판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 다시 한번 왕좌를 지켜낸 이는 '경험'이라는 무기를 가장 날카롭게 벼려온 베테랑 이주영(3기, A1)이었다.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총괄본부는 지난 13일 미사경정장에서 열린 ‘2026 메이퀸 특별경정’에서 이주영 선수가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 '올스타전' 방불케 한 혈투… 0.1초의 틈을 파고든 '찌르기'
이번 결승전은 올 시즌 2회차부터 18회차까지의 성적을 바탕으로 선발된 상위 6인이 출전해 사실상 '여자 경정 올스타전'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1코스의 안지민(6기)부터 2코스 김인혜(12기), 3코스 이주영(3기), 4코스 김지현(11기), 5코스 손지영(6기), 6코스 박정아(3기)까지, 경정 팬들이라면 누구나 우승 후보로 손꼽는 명단이었다.
승부는 스타트 직후 첫 번째 선회 구간에서 갈렸다. 부상 복귀 후 절정의 컨디션을 보여주던 안지민이 1코스의 이점을 살려 ‘인빠지기’를 시도했고, 패기 넘치는 김인혜가 과감한 ‘휘감기’로 정면 승부를 걸었다. 두 강자가 수면 위에서 격렬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선두 다툼을 벌이는 찰나, 이주영의 노련함이 빛을 발했다.
이주영은 두 선수가 경합하며 생긴 미세한 안쪽 공간을 놓치지 않았다. 바늘구멍 같은 틈을 뚫고 들어가는 전매특허 ‘찌르기’ 전법을 성공시킨 것이다. 찰나의 판단력이 만든 완벽한 궤적이었다. 이주영은 이후 노련한 선회와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추격자들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인공지능도 계산 못한 베테랑의 직관
이번 이주영의 승리는 스포츠에서 '경험'이 갖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경정은 600kg에 달하는 보트와 강력한 모터의 힘을 제어해야 하는 격렬한 스포츠다. 체력이 강조되는 종목에서 3기라는 대선배가 12기 등 젊은 후배들의 거센 도전을 물리치고 2연패를 달성했다는 것은, 단순히 '운'으로 치부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는 수천 번의 실전에서 몸으로 익힌 '물길 읽기'와 승부처에서의 '냉정함'이 만든 결과다.
전설적인 메이저리그 포수 요기 베라는 "야구 경기의 90%는 정신력이고, 나머지 절반이 육체적 능력이다(Baseball is 90 percent mental and the other half is physical)"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계산이 맞지 않는 이 역설적인 문구는 경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주영은 안지민과 김인혜라는 강력한 물리적 위협 앞에서도 정신적 평정을 유지했고, 상대의 심리를 역이용한 전략적 선택으로 우승 상금 500만 원의 주인공이 됐다.
◆전통의 가치와 미래의 조화… '이주영다움'이 던지는 화두
이번 이주영의 2연패는 경정이라는 종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경정은 모터 성능의 평준화와 장비의 과학화로 인해 하드웨어적인 차별화가 줄어들고 있다. 결국 승패는 키를 잡은 '인간'의 통찰력에서 갈린다.
전통적인 관습을 중요시하는 필자의 시각에서 볼 때, 이주영은 선배 기수들이 쌓아온 정석적인 기술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냈다. 이는 과거에 머무르는 노련함이 아니라, 미래의 흐름을 읽고 자신을 변화시킨 결과다.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매니지먼트'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주영은 단순히 경기에 임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승리 공식을 스스로 창조해냈다. 젊은 선수들의 거센 파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보여준 그녀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베테랑들에게 기대하는 '진정한 리더십'과도 닮아 있다.
준우승을 차지한 안지민의 투혼과 3위에 오른 김인혜의 패기 역시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올해 메이퀸의 왕관은 '준비된 자'의 침착함이 '도전하는 자'의 열기를 넘어선 순간, 그 주인이 정해졌다. 5월의 수면은 그렇게 다시 한번 노련한 여왕의 귀환을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