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5월 7일이었습니다. 경기 도중 쓰러져 8개월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중학교 복싱선수 아들(조연호 군)을 둔 아버지는 이날 오전 대한체육회와 대한복싱협회를 항의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실무책임자인 김나미 사무총장이 한 언론(4월 30일 목포MBC 보도)에 "아이는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었다", "아들이 이렇게 된 걸로 뭔가 한밑천 잡으려고 하는 건가 할 정도로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등의 막말을 해 체육계 안팎으로 파문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 같은 7일 밤 11시30분께. 'SNS에 이게 정말인가? 싶은 사진이 올라왔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과 중학생 아들 2명이 런던에서 ‘축구레전드’ 박지성 부부와 식사 및 사인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사진을 보니 나란히 축구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유 회장의 두 아들은 런던의 한 식당에서 가족 단위로 식사를 하고, 유니폼에 친필 사인을 받았습니다. 유 회장의 가족이 자랑삼아 이를 SNS에 올리면서 이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유승민 회장의 일부 지인들은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 유능한 아버지 덕에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런던으로 가족여행을 갔고, 거기서 만나고 싶었던 축구스타를 만난 것이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을까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듭니다. 먼저 세부 사항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4월 30일 언론보도가 나온 직후 파문이 확산됐습니다. 유승민 회장은 1일 급거 귀국 후 김나미 사무총장의 직무정지를 처분하고, 징계절차에 착수했습니다. 이어 4일 김나미 사무총장은 자진사퇴했습니다. 그리고 유승민 회장은 가족과 함께 5일 런던으로 떠났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이 과정에서 3차례 보도자료를 냈죠.
# 핵심은 ‘김나미 막말’ 파문의 발생 직후 대한체육회가 낸 첫 번째 보도자료(30일)에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과와 함께 ‘해외출장 중인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이 조기 귀국해 A군 부모를 직접 만나 사과의 말을 전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유승민 회장은 "선수의 생명과 안전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위로와 공감이 우선되어야 한다. 귀국 즉시 선수와 부모님을 직접 찾아 진심 어린 사과를 드리고, 선수의 완쾌를 위해 체육회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유승민 회장은 1~5일 사이 조연호 선수와 그 가족을 찾아 사과하고 위로하지 않은 채 런던행 비행기에 오른 것입니다. 아마도 오는 13일 귀국 이후로 약속이 미뤄진 듯합니다.
# 유승민 회장의 행동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기본적으로 대한체육회장이라는 공직에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처신입니다. 공직자가 아니라면 자식의 앞날을 위해 친분이 있는 해당 분야 권위자와 만남을 주선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대한체육회장과 같은 공직자는 다릅니다. 대한민국에서 박지성을 만나 함께 식사하고, 친필사인을 받고, 격려를 받고 싶은 유소년 축구선수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들은 모두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이 아끼고, 보호하고, 성장시켜야 하는 어린 체육인들입니다. 그들이 유승민 회장의 두 아들 축구선수가 런던에서 박지성과 함께 특별한 체험을 하는 것을 보며 느낄 위화감과 박탈감은 어떻겠습니까? 이틀 뒤 유승민 회장과 두 아들은 황희찬 선수의 경기를 직관하고, 직접 만나 사인을 받고 실착유니폼을 선물로 받기도 했습니다. 이게 부러워만할 일인지요?
# 두 번째, 유승민 회장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진정성이 의심받고, '꼬리자르기(김나미 사퇴)'라는 의혹이 발생하는 겁니다. 이 일 때문에 조기귀국했고 1일 귀국 후 5일 출국까지 시간이 있었으니 조연호 군과 그 가족을 직접 찾아가야 했습니다. 더 급한 일이 있었을까요? 참고로 유승민 회장은 지난달부터 서울경찰청 산하 금융범죄수사대의 소환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5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1년이 넘어간 유승민 회장 고발 사건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막바지다. 현재 소환날짜를 조율하고 있는데, 피의자가 바빠 날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승민 회장은 스스로 정한 사과방문 약속도 어기고, 경찰의 소환조사 요구에도 응하지 않은 것입니다. 조연호 군의 아버지는 "아직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 김나미 사무총장은 자진사퇴가 아니라 해임되어야 한다"고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