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재킷은 반납?'... 알고 보면 더 재밌는 '마스터스' [박호윤의 IN&OUT]


마스터스, 전통과 디테일이 만든 가장 특별한 무대
그린 재킷 제작비는 250달러, 그러나 그 가치는 무한대
마스터스 10배 즐기기

로리 맥길로이가 지난해 우승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뒤 그린 재킷을 입고 우승 트로피를 들며 가족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AP.뉴시스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마스터스 챔피언의 상징인 그린 재킷의 제작비는 얼마일까. 또 제작에 걸리는 시간은? 그리고 재킷은 우승자의 완전한 소유일까, 아니면 순회배 처럼 1년만에 반납하나?

마스터스 토너먼트 주간이다. 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다. 4대 메이저 어느 하나 서사 없는 대회가 없지만 선수와 팬 상당수는 ‘명인열전’이라 불리는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첫 손에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100년 가까운 세월을 말해주는 마스터스만의 전통과 상징, 그리고 같은 기간 켜켜이 쌓인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만의 이야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PGA투어는 마스터스 개막을 앞두고 홈페이지에 ‘팬들이 잘 알지 못하는 마스터스에 관한 10가지 사실들’과 ‘알아두면 좋을 오거스타의 9가지 이야기’라는 테마의 글을 게재했다. 이를 몇가지로 분류해 소개한다. 마스터스를 몇 배는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스터스는 우승자에게 전년도 챔피언이 그린 재킷을 입혀주는 전통이 있다. 2024년 대회에서 우승한 스코티 셰플러(왼쪽)에게 존 람이 재킷을 입혀주고 있는 모습./AP.뉴시스

#그린 재킷, 그 영광과 규칙

마스터스를 상징하는 가장 강렬한 장면은 단연 챔피언에게 입혀지는 그린 재킷이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개인 소유가 아니다. 1년 동안은 외부에서 자유롭게 착용하지만 다음해 대회가 시작되면 클럽에 반납해야 하며 이후에는 클럽 내에서만 착용이 가능하다. 흥미로운 것은 제작비가 국내 기성 양복 가격인 250달러 정도(물론 가치는 제작비의 수천배가 넘지만)이고, 만드는 데는 약 한 달이 걸린다. 조지아 지역에서 생산된 울과 폴리에스터 혼방 원단을 사용해 신시내티에서 제작된다. 색상은 소위 마스터스 그린이고, 왼쪽 가슴에는 클럽 로고가 박힌 자수가, 안감에는 소유자 이름의 자수가 새겨진다.

상징적인 만큼 흥미로운 일화도 많다. 1997년에 첫 챔프에 오른 타이거 우즈는 "재킷을 끌어 안고 그대로 잠들었다"고 했고, 2007년 우승자 잭 존슨은 "옷 커버가 없어 쓰레기 봉투에 싸서 들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2021년 아시아 선수 최초로 정상에 오른 마쓰야마 히데키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돼 1년 내내 드라이클리닝 조차 하지 않았다"고 추억했다.

캐디들이 입는 흰색 점프수트로 상징적이다. 캐디 빕에 적힌 번호는 선수들의 등록 순서에 따라 결정되는데 예외로 디펜딩 챔피언은 도착 순서와 상관없이 언제나 1번이다.

#챔피언스 디너, 그리고 패배자에 대한 예우

대회 기간 중 화요일 밤에 열리는 ‘챔피언스 디너’는 또 다른 전통이다. 오거스타 클럽 회장인 프레드 리들리와 역대 우승자들만이 참석하는 가장 폐쇄적이고 특별한 만찬이다. 전년도 챔피언이 메뉴를 정하고, 식사 비용 전액을 지불한다. 금액이 종종 수만 달러에 달하기도 하지만 이후 수십년간 참가 자격을 얻고 공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 최고의 골퍼들이 탐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그린 재킷을 아쉽게 놓친 선수도 예우를 받는다. 준우승자는 은메달과 은쟁반을 받고 트로피에 영구적으로 이름이 새겨진다. 플레이오프에서 패한 선수는 코스 내에 별도의 기념을 남긴다. 이글을 기록하면 크리스털 잔 한 쌍, 홀인원이나 더블 이글은 대형 크리스털 볼, 라운드 최저타 기록자에게는 크리스털 꽃병을 수여하며 이 모든 제품에는 이름과 연도, 기록이 새겨진다.

2021년 챔피언인 일본의 마쓰야마 히데키(오른쪽)가 동료인 가타오카 나오유키와의 연습라운드 도중 유서깊은 12번홀의 호건 브릿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AP.뉴시스

#코스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

코스 내 백나인에는 3개의 헌정 다리가 있다. 아멘 코너의 중심인 12번홀에는 ‘호건 브릿지’, 13번홀에는 ‘넬슨 브릿지’ 그리고 15번홀에는 ‘사라센 브릿지’가 있다. 17번홀 뒤에는 육각형 분수가 있는데 이곳에는 기록 변화의 역사와 역대 챔피언 이름, 그리고 플레이오프 패배자도 함께 기록된다. 오거스타는 원래 묘목 농장이었던 부지에 만들어졌는데 그래서 모든 홀은 코스 내 식물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대표적으로 아젤리아는 13번홀을 의미한다.

마스터스 우승자는 다양한 특전을 누린다. 우선 오거스타 내셔널의 명예회원이 되고, 대회 직전 일요일에 역대 챔피언 전용 티타임을 부여 받으며 챔피언스 디너 참석 자격과 함께 그린 재킷을 다시 한번 입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마스터스의 까다로운 출전 자격을 통과한 아마추어들에게는 좁지만 특별한 공간이 제공된다. 클럽하우스 내 위층에 자리한 30x40피트 크기의 '크로우스 네스트'에서 숙박할 수 있다. 이곳을 거쳐간 선수들로는 잭 니클러스, 벤 크렌쇼, 타이거 우즈 등이 있다.

지난해 마스터스 전통 행사 중 하나인 파3콘테스트에 참여한 안병훈의 가족들. 부인 최희재씨가 딸 지우를 안은 채 아들 선우가 벙커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있다./AP.뉴시스

#믿기 어려운 초라한 시작

이처럼 화려한 전통 이면에는 의외의 시작이 있었다. 클럽은 대공황 시기에 탄생했고, 그래서 초기에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다. 설계자인 엘리스터 맥켄지는 설계비를 절반으로 줄였고, 그나마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회원 모집도 어려워 회원수가 고작 76명이었다. 2차대전 기간에는 코스를 폐쇄하고 소와 칠면조를 키워 운영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또한 클럽 부지를 주택용으로 분양하려 했던 계획이 단 한 명의 구매자만 나타나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가기도 했던 사실은 지금의 위상을 생각하면 상상키 어려운 이야기다.

대회 명칭은 초기 ‘오거스타 내셔널 인비테이셔널 토너먼트’라는 긴 이름이었으나, 언론에서 ‘마스터스’란 표현을 쓰기 시작하면서 1939년 공식 타이틀로 자리 잡았다. 1937년에 그린 재킷을 도입했고 1952년 챔피언스 디너, 그리고 1960년 파3 콘테스트를 시작하는 등 현재의 전통이 하나씩 완성됐다.

타이거 우즈가 2019년 마스터스 복귀전서 기적적인 우승을 차지한 뒤 환호하고 있는 모습./AP.뉴시스

#전설이 만든 서사

마스터스는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과감한 변화를 통해 난이도를 조절해 왔다. 가장 큰 분기점은 1980년대 그린 잔디 교체다. 기존의 버뮤다에서 벤트 그래스로 바뀌면서 그린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고 아놀드 파머는 이를 두고 "오거스타가 완전히 다른 코스가 됐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 코스의 역사를 관통하는 세 명의 거인은 단연 잭 니클러스와 아놀드 파머, 그리고 타이거 우즈다. 1996년 이 세 전설이 함께 라운드를 했는데, 당시 우즈의 모습을 보고 니클러스는 "앞으로 20년 동안 이 코스의 주인공은 저 친구(우즈)가 될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예언을 한 바 있다. 그 말은 이듬해 우즈가 12타차의 압도적 우승으로 현실이 됐고 2001~2002년 연속 우승과 2019년 기적같은 복귀 우승이 이어지며 마스터스 신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결국 마스터스는 단순한 골프 대회가 아니다. 규칙 하나, 공간 하나, 그리고 이름 하나까지 모두 이야기를 품고 있고, 오거스타 내셔널의 모든 구석에는 역사와 전통, 그리고 디테일이 겹겹히 쌓여 있다. 매년 마스터스를 보면서 골프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곳에 이 같은 ‘살아 숨쉬는 이야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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