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이번 글은 질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매년 10월 열리는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 개회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해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찬성(1번)한다면 체육인 존중, 체육진흥, 개최지에 대한 관심 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반대쪽(2번)은 그렇지 않아도 전국체전 무용론이 나오는 마당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국사가 있다면 참석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것이죠. 중간 지점의 선택지(3번)도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은 임기 중 최대 5번의 전국체전을 맞으니, ‘최소 1~3회 참석하면 된다.’입니다.
여기서는 3번은 제외하겠습니다. 편의적인 발상으로 2번 대답과 유사하고, 실제로 역대 대통령 중 한 번도 전국체전에 참석하지 않은 분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칙에 대한 질문입니다. ‘참석해야 한다 vs 참석할 필요가 없다’ 중 어느 쪽이 타당한지요?
# 전국체전은 명암이 뚜렷한 스포츠 이벤트입니다. 밝은 쪽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시작돼, 한국전쟁 중에도 열렸고, 지역 발전과 함께 대한민국 체육발전에 토대를 구축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전국체전이 없으면 상당수 비인기종목의 시군청팀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높습니다. 어두운 면도 만만치 않습니다. 프로스포츠의 발전과 함께 국민들의 관심이 떨어져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지 오래됐습니다.
전국체전에서만 성적을 내면 선수와 지도자들은 먹고사는 데 큰 문제가 없으니 오히려 국제경쟁력 저하의 역기능을 낳고 있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국가 단위 종합스포츠이벤트를 여는 나라가 한국과 북한(만경대상 체육대회, 매년 4월), 중국(중화인민공화국 전국운동회, 4년 주기) 정도입니다. 개최비용만 통상 1500억 원(지방비+국비)이 넘고, 시도 참가선수단의 훈련 및 경비 등을 합치면 액수는 더 늘어납니다. 이 돈이면 다른 방식으로 스포츠 발전에 써야한다는 것이죠.
# 이렇게 찬반이 뚜렷하게 맞서니 국정책임자인 현직 대통령의 발걸음에 관심이 쏠리는 것입니다. 최근 대통령의 전국체전 참가는 그 중요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2번 전국체전 무용론에 힘이 실리며 ‘이러다가는 전국체전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염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전국체전은 대한체육회가 개최하고, 대한체육회장은 간선방식의 체육계 내부선거로 선출됩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 자체가 준정부기관이고, 예산 대부분을 정부에 의존하는 까닭에 대통령과 정치권이 전국체전을 개혁하겠다고 나서면 현실적으로나 명분상으로나 막을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면 초대 이승만 대통령도 전국체전 참가를 즐겼습니다. 정확한 횟수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박사’ 시절이던 26회(1945년)와 27회(1946년)에도 참석했습니다. 대통령 취임 후 퇴진할 때까지 최소 5회(33 34 36 37 40회) 참석이 확인됩니다. 특히 성화봉송이 도입된 1955년 36회 대회 때는 ‘이승만 대통령 80세 탄신 경국기념 및 체육대회 기념우표’까지 발행되는 등 정치적으로 적극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절정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인 출신 대통령들이었습니다. 3명은 각각 16회(1964~1979년), 8회(1980~1987년), 4회(1989~1992년)로 단 한 번도 전국체전에 결석하지 않았습니다. 1988년에 열린 제69회 전국체전은 초대 체육부장관이자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노태우가 당시 대통령이었는데, 서울 올림픽 개최로 인해 종목별 대회와 겸해서 치러진 까닭에 참석할 무대가 없었습니다. 한승백 교수는 이들의 전국체전 참가를 국가주의 스포츠 이데올로기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전국체육대회 연설문을 통해 본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의 스포츠, 2018년)’.
# 문민정부(김영삼)와 국민의 정부(김대중)도 각각 5년 임기 동안 매년 전국체전에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군사정부의 문화가 짙게 남아 있고, 30년 넘게 지속돼온 전국체전 참가의 전통을 깨기는 쉽지 않았던 탓으로 여겨집니다. 처음 전국체전을 건너뛴 대통령은 노무현이었습니다. 2004년 제85회 대회 때 국제회의 참석을 이유로 개회식에 불참했습니다. 나머지 4번은 모두 참석했습니다. 그러자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90회)과 2010년(91회), 2년 연속 불참했습니다(체전 참가 3회). 탄핵 당한 박근혜 대통령은 4번의 기회 중 2015년(96회)을 생략했습니다. 이유는 모두 국제행사 때문이었습니다.
# 전국체전 참가에 나름 파문을 일으킨 대통령은 문재인이었습니다. 2020년 101회 대회가 코로나19로 인해 열리지 않아 총 4번의 참가기회가 있었는데, 2017년(98회)과 2019년(100회) 두 번만 챙겼습니다. 2021년 대회는 코로나 여파로 무관중로 열린 까닭에 문제가 없었지만 2018년(99회 전북)은 말이 많았습니다. 해외순방(10월13일~16일 파리)을 앞두고 있었지만 12일 전국체전 개회식 참가는 일정상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체전 전날인 11일 제주도 관함식 참석하고, 13일 출국했습니다.
대통령이 국내에 있어도 굳이 전국체전에 참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죠. 그러자 역시 탄핵으로 3번의 전국체전을 치른 윤석열 대통령은 2회 연속 참가하다가 지난해 105회 대회를 대놓고 건너뛰었습니다. 당시 유인촌 장관의 문화체육관광부와 이기흥 회장의 대한체육회가 갈등을 빚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유 장관도 장미란 차관을 대신 보내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 이처럼 대통령의 전국체전 개회식 참가는 이제 확실히 선택사항으로 격하된 느낌이 듭니다. 시도대항으로 펼쳐지는 전국체전은 올해 106회로 부산광역시에서 열립니다(10월 17~23일). 탄핵으로 인해 지난 6월 3일 당선 후 바로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은 어떨까요? 긴 추석연휴를 보내고 있는 지금, 이재명 대통령은 부산에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연휴 후 국정감사가 있고, 이어 트럼프 미 대통령이 참석하는 경주 APEC 정상회의가 코앞(10월31일, 11월1일)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여기에 대한체육회가 뒤숭숭한 것도 이유로 거론됩니다. 각종 (성)폭력 및 비리 사건에 사망사고까지 발생했고, 유승민 회장은 탁구협회장 시절 비리로 스포츠공정위의 징계(견책)를 받았고, 현재 경찰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불참은 이해도 되지만 비판도 예상됩니다. 예능프로그램(냉부해)에는 출연하면서 체육은 무시하냐는 것이죠. 자, 다시 묻겠습니다. 글 모두에 언급한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답은 1번인지요, 2번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