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온두라스전 6-0 승리 뒷받침...2경기 연속 무실점 주역 '와일드 카드'
[더팩트 | 박순규 기자] 고질적 수비 불안을 해소하자 한국 축구의 저력이 살아났다. 좀처럼 웃음을 보이지 않던 김학범 감독의 얼굴에도 비로소 미소가 번졌다. 한국 축구가 난적 온두라스를 상대로 5년 만에 크게 설욕하며 8강에 진출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지만 수비에서 불안을 잠재운 ‘와일드 카드’ 박지수(27· 김천상무)의 활약이 무엇보다 컸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28일 오후 5시 30분 일본 요코하마의 요코하마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벌이진 2020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조별리그 B조 최종전에서 황의조의 해트트릭과 이강인의2경기 연속골, 원두재 김진야의 릴레이골을 앞세워 6-0으로 승리, 조 1위로 8강 토너먼트에 올랐다.
비기기만 해도 토너먼트 진출이 확정되는 상황에서 거둔 의외의 대승은 8강에서의 자신감 충전은 물론 뉴질랜드와 1차전에서 당한 0-1 패배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특히 ‘와일드 카드’인 황의조 권창훈 박지수가 처음 선발로 호흡을 맞추며 위력을 보여준 데다 중앙 수비수 박지수가 선발 투입된 이후 2경기 연속 무실점 ‘클린 시트’를 작성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사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끝까지 김학범 감독을 괴롭힌 것은 바로 중앙 수비 불안이었다. 국내에서 치른 6월 가나와 두 차례 평가전과 7월 아르헨티나 프랑스와 평가전에서도 계속 실점을 이어가면서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 했다. 김학범 감독은 당초 와일드 카드로 낙점한 국가대표 수비수 김민재의 합류 가능성을 끝까지 버리지 못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김민재는 결국 출국 전에 출정식을 겸해 가진 프랑스와 평가전 직전 소속팀 베이징 궈안의 올림픽팀 차출 반대로 합류가 무산됐다. 김학범 감독은 김민재의 대안으로 박지수를 급히 불렀다. 박지수도 물론 김 감독의 의중에 있었지만 1순위는 역시 A대표팀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하는 김민재였다. 하지만 대타가 오히려 고민을 해결해줄 줄이야. 박지수는 출국 직전에 올림픽팀에 합류했으나 의외로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였다.
올림픽팀 합류가 늦어 뉴질랜드와 1차전은 벤치에서 지켜보다 후반 43분 교체투입됐으나 루마니아 2차전부터 선발 출장하며 ‘이등병 투혼’을 보였다. 뉴질랜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90분 내내 공격을 퍼붓고도 0-1로 덜미를 잡힌 것은 수비에 허점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박지수의 진가는 위기에서 빛을 발했다. 벼랑 끝에 몰린 김학범 감독은 루마니아와 2차전을 앞두고 선발 5명을 바꾸는 승부수를 던지며 박지수를 정태욱과 함께 중앙 수비수로 세우는 모험을 걸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가장 취약 포지션으로 꼽히는 중앙 수비에, 그것도 제대로 발을 맞춰보지 않은 선수를 선발로 기용하기란 보통의 결단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카드다. 축구에서 수비는 절대적으로 조직력이 우선시되며 안정을 위해 좀처럼 선수를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학범호는 박지수가 선발 투입된 이후 루마니아를 4-0으로 꺾고 온두라스를 6-0으로 제압하며 무실점으로 상승세를 탔다. 이강인의 멀티골, 황의조의 해트트릭, 이동준의 빠른 돌파 역시 튼튼한 수비를 바탕으로 이뤄지며 상대를 괴롭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6월 21일 입대한 육군 이병 박지수가 ‘빡빡머리’로 두 눈을 빛내며 김학범호에 투혼을 불어넣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박지수는 장신의 정태욱과 호흡을 맞추며 파이팅 넘치는 수비로 상대 공격을 봉쇄하고, 공격에 가담해서는 날카로운 전진 패스와 제공권으로 공격 숫자를 늘리며 다득점의 키맨 역할을 했다. 올림픽 선발 데뷔 무대인 루마니아전에서 이강인이 기록한 필드골 역시 박지수의 전진패스로부터 시작됐다.
박지수는 논산 육군 훈련소에 입대, 1주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김천 상무에 합류해 몸 상태를 끌어올리다 올림픽팀에 합류한 상태여서 우려를 자아낸 것도 사실이다. 조직력이 핵심인 수비진에서 어떤 역할을 해낼지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박지수는 상무 입대 전에 활약한 수원FC에서 심판 오심으로 인해 두 번이나 퇴장 징계가 번복되는 등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몸을 사리지 않은 박지수의 투혼을 한국 축구의 주무기인 스피드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발판이 됐으며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능가할 수 있는 메달 사냥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기회는 역시 준비된 사람만이 잡는다는 것을 박지수는 기량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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