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프로농구 레전드 주희정(40)이 특별한 추석을 맞았다. 가족과 함께하는 명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그에게는 뜻깊은 경험이다.
지난 5월 은퇴를 발표하고 프로농구 선수 생활 20년을 마감한 주희정은 7월 필리핀으로 떠났다. 그곳의 프로농구팀 피닉스 퓨얼 마스터즈에서 세 달 가까이 지도자 연수를 했다. 지난달 29일 귀국한 주희정에게서 아직은 익숙하지 않을 새로운 농구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프로농구 선수에게 추석연휴는 새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을 기간이다. 지난해까지는 그도 그랬다. 올해는 다르다. 가족과 함께하는 추석, 정말 오랜만이다. 결혼 이후로는 처음, 돌아가신 할머니와 단 둘이 지낼 때도 명절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
"막바지 시즌 준비로 바쁠 때니까요. 전지훈련을 떠나 있거나 그랬죠.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는 줄곧 그래왔으니까 추석을 집에서 쇠는 것은 한 20년 만인 것 같네요. 행복하죠. 날마다 가족과 함께 있으니 선수때보다 정말 시간이 빨리 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는 "이번 추석연휴에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에 간다"고 했다. 고향 부산에는 지금 친척들이 살고 있지 않다. 그들만의 가족여행, 그래도 행복하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게 효도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프로에 뛰어들었던 그에게 가족의 의미는 특별하다.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자란 곳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큰 아이는 한 번 가봤는데 워낙 어릴 때라 기억도 나지 않을 거예요." 세 딸과 아들은 그가 필리핀에 있는 동안에도 여름방학 기간에 마닐라를 다녀갔다.
필리핀 연수는 어땠을까. "힘든 건 없었어요. 선수들이 좀 자유분방하다고 할까. 훈련 때도 마찬가지고. 함께 지내다보니 저도 좀 개방적이 된 것 같아요."
필리핀에서 그는 '슈팅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움직이면서 슈팅하는 걸 가르쳤죠. 그래도 제가 좀 나으니까요. 웃겼던 게 저보고 슈터라는 거예요." 선수 시절 한동안 3점슛은 포인트가드였던 그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피나는 노력으로 정확한 외곽슛을 갖게 됐지만 한동안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가 피닉스 선수들에게 뛰어난 슈터로 대접받은 데는 그가 필리핀에 있는 동안 레바논에서 열렸던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의 영향도 있었다. "8강에서 한국이 필리핀을 크게 이겼잖아요. 한국 선수들 슛을 보고 모두 놀라더라구요." 한국농구의 전설적인 슈터 신동파는 1969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ABC) 필리핀전에서 50점을 넣었다. 그 뒤 그는 필리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스타가 됐다. 필리핀인들에게 한국농구선수라면 좋은 슈터일 수밖에 없다.
'슈터' 주희정이 열정적으로 지도했지만 피닉스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스태프로 참여했던 팀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지만 많은 것을 배웠어요. 어떤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몸으로 배웠죠."
'몸으로 배우기'는 계속된다. 주희정은 오는 11월 미국으로 두 번째 연수를 떠날 계획이다. "어떤 팀 코치를 맡아 편하게 배울 생각은 없어요. D리그로 경험하고 NBA경기도 보고 요즘 중시하는 스킬 트레이닝도 몸으로 부딪혀 보려고요."
제2의 농구인생을 시작하는 그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프로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할머니였듯 지도자로서 그에게도 가족이라는 든든한 원군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