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식의 농구생각] '더티 플레이'란 무엇인가?

2016-2017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미디어데이. /KBL 제공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2016-2017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미디어데이 행사가 20일 KBL센터에서 열렸다. 안양 KGC인삼공사의 김승기 감독과 양희종 오세근, 서울 삼성의 이상민 감독과 주희정 김준일이 참석해 챔프전에 나서는 각오와 우승에 대한 다짐을 밝히는 자리였다.

최근 미디어데이에서는 예전과 달리 상대방을 자극하는 듯한 도발적인 발언들이 많이 나온다. 미디어는 고상하고 모범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감독과 선수들은 발언의 수위를 높인다. 그런 의도를 알기 때문에 다소 지나친 이야기가 나와도 웃어넘긴다.

이날도 재미있는 말의 공방이 펼쳐졌는데 그 중에 하나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주희정이 양희종에게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더티한 수비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에 대해 양희종은 "농구는 몸싸움이 허용되는 스포츠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하는 수비는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고 답했다.

양희종은 리그 최고의 수비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대학 때까지와는 달리 득점으로는 팀에 기여하지 못하지만 뛰어난 수비 실력으로 주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떤 상대를 맡겨도 확실하게 막아내는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수비에서 궂은 일을 많이 하는 그는 승부욕이 강한데다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 팀의 선수와 경기 중 감정적으로 맞서는 일이 잦다. 그러다 보니 일부 팬으로부터 거친 플레이를 한다거나 동업자 정신이 없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그와 자주 부딪히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이 삼성의 문태영이다.

양희종은 "합법적인 몸싸움은 경기의 일부이며 농구팬들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항변했다.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주희정이 말한 것은 규칙이 아니라 '매너', 즉 도덕이다. 스포츠 밖의 세계에서도 합법적이지만 비도덕적인 행위들이 있다. 농구에서 비열한(dirty) 플레이란 어떤 것일까?

스포츠는 일반적인 도덕 기준으로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예를 들면 속임수다. 남을 속이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스포츠에서는 전략으로 받아들여진다. 농구에서 페이크는 중요한 기술의 하나다. 어떻게 보면 상대를 속이는 것은 스포츠의 본질적인 행위다. 스포츠에서의 경쟁은 규칙을 어기지 않고 아무도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상대끼리 서로 속이는 행위를 허용한다.

다만 상대 선수가 아닌 심판을 속이는 것은 스포츠에서도 비도덕적이다. 부당한 이득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리한 판정을 이끌어내려는 할리우드 액션은 처벌을 받는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 고양 오리온의 애런 헤인즈가 삼성 리카르도 라틀리프의 허리를 잡아채는 모습이 TV 중계 화면에 잡혀 화제가 됐다. 헤인즈는 라틀리프를 자신이 원하는 위치로 밀어낸 뒤 빠른 속도로 손을 거두어 심판의 눈을 피했다. 이 경우 도덕적인 면에서는 허리를 잡아챈 것이 아니라 손을 재빨리 거둔 것이 문제가 된다. 파울을 범하고도 그에 따른 벌칙을 받지 않으려는, 즉 부당한 이득을 얻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코트에서는 심판이 눈치채지 못하게 상대 선수의 유니폼을 잡아당기거나, 리바운드를 다툴 때 밀치거나, 레이업을 할 때 슈팅하지 않는 손으로 상대를 밀치거나, 상대의 슛을 막을 때 교묘하게 손을 쓰는 일이 벌어진다. 부당한 이득을 얻기 위한 행위들이지만 규칙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판의 문제가 된다.

의도적으로 규칙을 깨는 경우도 있다. 팀 파울에 여유가 있을 경우 반칙은 수비의 한 수단이 된다. 경기 막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가 공격권을 갖고 있을 때 고의로 파울을 하는 것은 일반적인 전략이다. 상대 팀도 같은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할 것이기 때문에 불공정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다만 속공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반칙을 범할 때처럼 부당한 이득을 얻으려는 의도가 명백한 경우에 대해서는 큰 처벌로 금지한다. 한쪽이 부당한 이득을 얻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거친 플레이가 아닌 행동에 대해서도 언스포츠맨라이크 파울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규칙을 떠나 도덕성의 문제임을 말해준다.

트래시 토크(Trash Talk)는 어떤가. 치열하게 승부를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일 수도 있지만 상대를 자극해 평상의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태영은 다혈질이다. 상대의 거친 플레이에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쉽게 흥분하기 때문에 테크니컬 파울을 받기도 하고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경기를 망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모두가 안다. 문태영이 거칠게 맞서는 모습을 보이는 상대는 양희종만이 아니다. 문태영의 대응 문제를 제외한다면 따져볼 것은 하나다. 상대 선수는 문태영을 자극해 그가 활약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생각을 갖고 행동하고 있는가?

일상에 비해 스포츠는 빠르게 진행된다. 규칙과 전략, 그리고 관행 속에서 순간적인 생각과 행동들을 가려 도덕성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원칙은 있다. 상대 팀과 선수에 대한 존중, 그리고 농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존중이다. 부당한 이득을 통해 상대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힘을 손상하거나 바꾸려는 시도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상대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농구의 기반을 해친다. 그것이 바로 비열한 플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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