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프로농구 시즌 종반 부산 KT가 뿌리고 있는 고춧가루가 아주 맵다.
KT는 9일 고양체육관에서 벌어진 원정경기에서 이재도가 더블더블(21점 11어시스트)을 기록하는 등 선수들의 고른 활약에 힘입어 고양 오리온을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82-79로 물리쳤다. 최근 7경기에서 4승 3패. 최하위팀이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치고는 기세가 무섭다. 4승 가운데 3승의 상대가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창원 LG, 정규시즌 1위를 노리는 안양 KGC와 오리온이었다.
9위 전주 KCC와 승차가 어느새 반 게임으로 줄었다. 조동현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꼴찌 탈출을 목표로 삼았다"고 밝혔다. 최근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 그는 "어린 선수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경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선수들이 주인 의식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KT는 지난 1월 31일 팀의 간판인 조성민을 LG에 내주고 김영환을 받는 전격 트레이드를 했다. 대신 신인 드래프트 순위를 바꾸기로 했다. 전형적인 리빌딩 시도다. 그런데 이 선수 교환에는 주목할 만한 의미가 담겨 있다. '조성민 한 명에 좌우되는 팀'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조 감독은 "성민이에게 미안하지만 다른 국내 선수들이 약한 면이 있다보니 성민이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고 말했었다. 감독뿐 아니라 선수들도 어려운 상황을 맞으면 조성민에게 기댔고, 그가 부상으로 빠져있거나 상대의 집중견제에 묶이면 팀 전체의 경기력이 크게 떨어졌다.
트레이드 이후 KT는 두 경기를 잇따라 졌다. 그러나 이후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포인트가드 이재도가 믿음직한 리더로 자리잡았고 김종범과 김우람 등 젊은 선수들이 승부처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김현민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조성민이 떠난 후 15경기에서 KT는 7승 8패로 5할에 가까운 승률을 기록했다. LG에서 온 김영환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전력상 별다른 플러스 요인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팀에 비해 전력이 떨어지는데 시즌 초반부터 선수들의 잦은 부상으로 더욱 힘겹게 경기를 치렀다. 현재도 김우람과 박상오가 부상 중이고 이날 경기에서 김종범까지 다쳤다.
조 감독은 강팀을 잡았지만 선수들의 막판 집중력 부족을 아쉬워했다. 그는 "빡빡한 일정 때문에 지치기도 했지만 막판 집중력이 떨어진 것은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선전하다가도 후반에 쉽게 무너졌던 이전에 비한다면 훨씬 좋아진 모습이 뚜렷하다. 조 감독이 말한 '주인 의식' 덕분일 것이다.
탈 꼴찌도 물론 의미 있는 목표다. 그러나 KT의 '고춧가루 부대' 변신에서 더 중요한 것은 강팀들을 상대로 승리를 경험하면서 마지막 고비를 넘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팀을 살리기 위해 간판 스타를 포기한 KT의 결단이 적어도 지금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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