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프리즘] 썰매, 평창 金 8분의 1의 의미

경기력향상지원단 회의. /제공 대한체육회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동계종목 단체, 강원도, 평창조직위 등이 참여하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경기력향상지원단이 출범했다.

경기력향상지원단은 1일 첫 회의를 열고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이 금메달 8개, 은메달 4개, 동메달 8개 등 메달 20개를 따내 종합 4위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이루도록 남은 1년간 정부와 체육계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지원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했다. 8개의 금메달 가운데 7개는 쇼트트랙과스피드스케이팅 등 빙상에서 따낸다는 계획이다. 나머지 1개는 썰매에서 기대하고 있다. 윤성빈(23, 한체대)이 나서는 스켈레톤이다.

윤성빈은 지난 27일 독일에서 열린 2016~2017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월드컵 6차 대회 남자 스켈레톤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스켈레톤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33, 라트비아)를 밀어내고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섰다. 윤성빈은 앞서 두 차례 월드컵 정상에 섰다.

잘 알려져 있듯 국내 썰매 종목의 개척자는 강광배 한체대 교수다. 그는 동계올림픽에서 루지(1998년 나가노)와 스켈레톤(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2006년 토리노), 봅슬레이(2010년 밴쿠버) 등 썰매 전 종목에 출전한 최초의 선수다.

그는 원래 스키 선수였다.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어서 지도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대학 4학년때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래서 무릎을 비틀지 않아도 되는 루지 선수가 됐고 스키를 했다면 못 나갔을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유학 중 무릎을 또 다쳤고 세대교체를 이유로 루지 대표에서 제외됐다. 힘겨운 재활을 마친 그가 다시 바꾼 종목이 바로 스켈레톤이었다. 스켈레톤에 이어 봅슬레이 선수로 나선 그는 2008년 아메리카컵에서 동메달을 따내 '한국판 쿨 러닝'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1년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뒤 그에게 썰매 종목의 전망에 대해 물었다. 그는 "나는 운동능력이 안되는데도 여기까지 왔는데 능력도 있고 열정도 있으면 얼마나 잘하겠는가. 요즘 새로 뽑힌 선수들은 운동능력은 물론이고 마음자세도 예전과 다르다. 결과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도 올림픽 유치 이듬해에 썰매에 입문해 올림픽이 열리기 전 세계 정상급 수준까지 성장하는 선수가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국내에서 올림픽이 열리니까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노력할 생각이지만 내가 지향하는 건 엘리트 쪽이 아니라 생활체육이다. 거기서 나온 선수가 메달을 딸 수 있느냐는 다음 문제"라고 했었다.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대회들이 있다. 1948년 생모리츠, 1992년 알베르빌, 2010년 밴쿠버, 그리고 2018년 평창이다. 동계올림픽에 처음 나선 것이 생모리츠, 첫 메달과 첫 금메달을 따낸 것이 알베르빌이었다. 김윤만이 알베르빌에서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은메달을 목에 건 이후 2006년 토리노에서 이강석이 스피드스케이팅 동메달을 따낼 때까지 한국의 동계올림픽 메달은 모두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그리고 밴쿠버에서 피겨스케이팅(김연아)과 스피드스케이팅(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금메달을 수확이라는 개가를 올렸다.

윤성빈이 평창에서 메달을 따낸다면 사상 첫 슬라이딩 종목 입상이 된다. 설혹 메달을 따내지 못한다 해도 평창을 빛낸 기억으로 남을 만하다. 썰매에 대한 도전이야말로 올림픽 유치 때의 슬로건이었던 '새로운 지평'을 가장 잘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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