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설날 장사 씨름대회가 지난 24일 충남 예산군 윤봉길체육관에서 막을 올렸다. 이 대회는 29일까지 엿새간 열리는데 체육관 안에는 씨름이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됐음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문화재청이 씨름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고 밝힌 것이 지난 4일. 그 이후 처음 열린 대회가 바로 설날 장사 씨름대회다.
무형문화재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가치있는 유산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문화재로 지정해 특별히 관리하지 않으면 맥이 끊기고 사라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씨름이라는 무형의 유산이 계승되고 발전할 수 있는 바람직한 형태, 그것은 스포츠다..
놀이가 아닌 스포츠로서 씨름에는 좋은 시절이 있었다. 1980년 군사정권이 제5공화국을 세운 다음 스포츠 장려정책을 폈고 이에 따라 씨름도 야구, 축구와 함께 프로화됐다. 성황리에 출범한 '민속씨름'은 큰 인기를 얻으며 메이저 스포츠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친근한 문화였고 뛰어난 기량과 독특한 개성을 갖춘 스타들이 많았을 정도로 종목 자체의 기반도 탄탄했으나 정부와 방송의 전폭적인 지원이 프로 스포츠로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힘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팀들이 없어지면서 씨름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4년 LG씨름단이 해체된 직후 천하장사 출신 최홍만이 종합격투기로 전향했다. 이태현과 김영현 등이 그 뒤를 이으면서 프로 스포츠로서의 씨름은 사실상 사라졌다.
씨름의 몰락에 대해 기술씨름의 쇠퇴, 경제적 재난, 단체 내부의 갈등과 씨름인의 분열 등이 꼽히지만 프로 스포츠의 형태를 유지하기에는 종목 자체의 한계도 있었다. 씨름이 재미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씨름은 잘 갖춰진 형식을 툉해 육체의 아름다움과 신체동작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스포츠다. 폭력과 우아함을 융합시키는 스포츠 가운데 씨름만한 매력을 갖춘 종목이 있을까. 문제는 씨름이 고유의 전통 문화라는 점이다. 항상 진행되고 있는 스포츠라기보다는 설과 단오, 한가위 등 명절에 열리는 행사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씨름은 형편이 나쁜 편은 아니다. 전국체육대회를 위해 팀을 운영하는 지방자지단체들에 의해 프로 때와 별 차이가 없는, 150명 가까운 선수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정상급 선수들의 경우 수억대의 수입을 올린다. 다만 스타가 없고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망주의 유입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스모에서 일본인 요코즈나가 나오면서 일본이 떠들썩하다. 기세노 사토가 지난 22일 열린 하츠쇼바에서 우승하면서 1998년 와카노하나 이후 19년 만의 일본인 요코즈나가 탄생한 것이다. 왜 그동안에는 없었을까?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이 뛰어난 유망주들이 스모가 아닌 야구와 축구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생활체육으로 스모를 하지만 직업으로 삼으려는 학생들은 별로 없다. 그래서 스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돈과 명예는 몽골 등 외국인들에게 돌아간다.
스모는 일본의 국기로 여겨지지만 현대 스포츠와는 거리가 있다. 복장과 경기장, 순위를 매기는 방식 등이 모두 전통적인 관습을 따른다. 스포츠라기보다는 종교 의식 같은 느낌을 준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항상 관심을 갖고 있고 대중도 꼭 필요한 문화로 받아들인다. 역시 문화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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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이 과거의 영화를 되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나라에서 행해지는 스포츠가 아니고 당연히 올림픽 종목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가 소비되는 사회에서 스포츠로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가치있는 문화유산으로 계승되고 발전하기 위해 스포츠의 형태를 띠어야 하지만, 스포츠로 살아남기 위해 문화재의 성격을 강화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이번 설날 장사 씨름대회는 무료다. 설날 고궁과 왕릉의 관람료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새로 출범한 통합씨름협회는 씨름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그저 가치를 인정받은 경사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씨름의 정체성과 발전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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