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차준환(휘문중)이 8일 강릉에서 열린 전국남녀피겨스케이팅종합선수권대회 남자부 싱글에서 우승했다. 16세 주니어 선수의 한국 챔피언 등극. 예상됐던 일이고 희망을 확인한 기쁨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오로지 선수 한 명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본의 올림픽 챔피언 하뉴 유즈루는 16세 때인 2010년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정상에 올랐다. 2009~2010시즌에 하뉴는 출전한 모든 국내외 주니어 대회에서 1위를 했는데 시니어들과 겨룬 일본선수권에서는 6위에 그쳤다.
두꺼운 선수층과 치열한 경쟁, 그에 따른 높은 경기력 수준 같은 국내 환경이 없어도 김연아 같은 선수가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돌연변이 스타의 탄생은 종목의 저변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그리고 단 한 명이기 때문에 그에게 집중되는 관심과 기대는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서게 되고 선수에게는 중압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종합선수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차준환의 쇼트프로그램(SP) 80점대 진입이었다. 81.83점. 사실 놀라울 것은 없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말처럼 80점대 진입은 시간 문제였기 때문이다. 차준환은 4개월 전 일본에서 열린 주니어그랑프리에서 79.34점을 받았다.
차준환의 SP 80점대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성장 속도'다. SP는 선수의 기술 수준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주니어와 시니어의 경계에 있는 선수들의 SP 점수는 의미가 있다.
지난해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차준환은 7위였다. SP 74.38점. 이 대회에서 80점대를 기록한 선수는 단 두 명이었고 1~3위는 모두 70점대였다. 10년 전 하뉴가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했을 때의 점수는 68.75점. 하뉴는 시니어로 전향한 두번 째 시즌에야 80점대에 도달했다. 물론 규정 변화에 따른 선수들의 점프 기술 향상에 따라 SP 점수가 그때보다 높아졌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현재 정상급 주니어 선수들과 비교할 때 차준환의 점수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주니어 부문 SP 역대 최고 점수는 2015년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일본의 우노 쇼마가 받은 84.87점이다.
오서 코치는 차준환이 그 나이 때의 하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하뉴는 201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코치를 아베 나나미에서 오서로 바꿨고 캐나다에서 훈련했다. 세계적인 안무가들의 도움을 받은 하뉴는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여갔고 2014년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따냈다. 사상 처음으로 SP 100점을 넘겼고 자신의 세계 최고 기록을 110.95까지 늘렸다. 하뉴가 세계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된 과정을 보면 차준환에게 지금부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준환이 지난해 일본 주니어그랑프리에서 우승하면서 합계 239.47점으로 역대 주니어 최고 점수(이후 주니어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러시아의 드미트리 알리에프가 240.07점으로 다시 경신했다)를 기록하는 등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미디어의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3위 안에 들어갈 것"이라는 외국 코치의 '덕담'이 그대로 전해지는 등 1년 밖에 남지 않은 평창 올림픽을 놓고서 '메달 도전'이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쓸 정도가 됐다. 지나친 기대다. 오서의 '평창올림픽 톱10'이 그나마 현실적인 목표다.
4회전의 쿼드러플 살코 점프를 완벽하게 구사한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고무적인 일이지만 찬탄 일색일 뿐 아직 신체적으로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선수가 고난도 점프를 소화하는데 대한 걱정의 눈길을 찾아보기 어렵다.
차준환은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보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에게 거는 기대는 당장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아직은 큰 성과를 바라기보다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소년이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려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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