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1000경기가 문제가 아니라 연패부터 끊어야죠."
2016~2017 KCC 프로농구 오리온-삼성전이 열린 21일 고양체육관. 경기에 앞서 베이스라인 근처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삼성의 베테랑 가드 주희정(39)에게 다가가 '1000경기'에 대해 물었다. 불혹의 나이에 여전히 코트를 누비고 있는 그는 이날 프로통산 999번째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23일 안양에서 열리는 KGC와의 경기가 꼭 1000번째 경기가 된다.
국내프로농구 사상 최초의 1000경기 출장. 앞으로 좀처럼 깨어질 것 같지 않은 불멸의 기록이다. 주희정은 "나보다 애들이 더 신경쓰는 것 같다"며 웃었다. 삼성은 오리온전에 앞서 동부와 LG에 잇따라 져 시즌 첫 연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당연히 팀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주희정이 "기록보다 연패 탈출이 먼저"라고 말한 것도 시즌 초반부터 이어온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날 주희정이 코트에 선 시간은 단 4분39초. 경기가 끝난 뒤에 기록지 위 그의 이름 옆에 적힌 숫자는 출장시간과 파울 1개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그는 팀의 승리에 기여할 수 있었다. 플레이가 아닌 존재 자체만으로.
삼성은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더블더블(26점 18리바운드)을 기록하며 맹위를 떨치고, 김준일(15점 8리바운드)도 모처럼 좋은 활약을 펼쳤다. 결국 삼성은 리바운드에서 47-26의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며 오리온을 84-79로 물리치고 연패를 끊었다.
삼성은 4쿼터에 4개의 3점슛을 터뜨리며 쫓아온 오리온에게 한때 동점을 허용하며 고비를 맞았다. 충분히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삼성 선수들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위기를 잘 넘겼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실에 들어온 김준일의 소감은 '999'라는 숫자로 시작됐다. "999번째 경기를 이겨서 기쁘다. 다음 경기도 꼭 이겨 희정이 형에게 1000번째 경기를 이긴 경기로 남겨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주희정의 말처럼 삼성 선수들은 어느 순간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김준일은 "모두들 희정이 형이 뛴 1000경기에 1승이라도 더 보태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주희정이 팀의 최선참이고 다시 나오지 않을 대기록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20시즌째를 뛰고 있는 그가 진정한 '프로'의 면모를 일깨우고 있는 까닭이다. 라틀리프는 주희정에 대해 "굉장히 놀랍다. 나도 저렇게 오랫 동안 농구선수를 하고 싶다. 그의 몸관리와 프로 의식을 배우고 또 본받으려 한다"고 말했다.
KBL의 살아있는 역사에 대한 경배는 삼성 선수들에게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가장 빛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농구를 한 선수였다. 그리고 그 치열함은 프로농구 선수 모두에게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다. KBL은 이제는 선발로 출장하지 않는 그가 교체로 투입되면 경기를 잠시 중단하고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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