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한 2015년 아시안컵 대비 국내 전지훈련 선수 명단에는 축구에 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팬이 아니면 고개를 갸웃할 이름이 여럿 들어 있다. 손흥민과 기성용, 이청용 등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할 것이 확실시되는 선수들이 몽땅 빠져 있으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번 제주 전지훈련 명단에 있는 선수 가운데 55년 만에 통산 3번째 우승을 노리며 캔버라 스타디움, 브리즈번 스타디움 등에서 달리게 될 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필드 플레이어들은 골키퍼보다 더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한다. 지난 10월 서아시아 원정 평가전에서 나타났지만 10명의 필드 플레이어는 물론 문지기까지도 외국 리그에서 뛰고 선수들이 경기장에 서 있는 게 한국 축구의 현실이다. K리그 선수들의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
유럽과 서아시아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이 제외된 가운데 28명의 전지훈련 참가 선수 가운데 18명의 K리그 선수가 태극 마크를 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할 만큼 어려운 일이겠지만.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13명의 선수가 처음으로 국가 대표 훈련 소집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북한과 경기에서 극적인 결승 골을 터뜨려 한국을 28년 만에 우승으로 이끈 임창우 그리고 이재성과 강수일, 이정협, 황의조 등이 국내파 국가 대표 후보 새내기들이다. 이들 가운데 글쓴이의 눈에 띈 선수가 있다. 강수일이다.
어지간한 축구 팬이면 알고 있듯이 강수일은 혼혈 선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나이는 어느덧 20대 중반을 넘어섰다. ‘어느덧’이란 표현을 한 것은 2007년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강수일이 인천~제주를 거쳐 올해 포항에서 자신의 최고 시즌을 보내기까지 잠재력은 인정 받았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이 7년의 시간을 흘려 보냈기 때문이다.
혼혈 선수, 귀화 선수는 이제 화제의 대상이 아니다. 농구는 1970년대에 이미 혼혈 선수가 국가 대표로 활약했고 최근에는 혼혈 귀화 선수가 국가 대표 주력 선수로 뛰고 있다. 탁구는 꽤 많은 귀화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혼혈 선수, 귀화 선수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한국전쟁과 맞물린 혼혈인에 대한 편파적인 시각은 뼈아픈 과거다. 물론 이런 시각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지만.
혼혈 선수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한 귀화 선수에 대한 불합리한 대우와 편견도 분명히 있다. 축구의 경우 아직까지 귀화 선수가 태극 마크를 단 사례가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전략 강화 방안 가운데 하나로 공격수 샤샤와 수비수 마시엘 등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우수 외국인 선수의 귀화 문제가 잠시 거론됐으나 곧바로 물밑으로 내려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탁구계에서는 잠시 논란이 있었다. 중국 출신 귀화 선수 당예서가 논란의 주인공이었다. 대한탁구협회는 국제탁구연맹 랭킹에 따라 자동 출전권을 확보한 김경아와 박미영 외에 1명의 선수를 추가하는 과정에서 세계 랭킹이 가장 높은 이은희를 아시아 예선에 내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할 경우 실질적으로 국내 랭킹 1위인 당예서를 비롯한 우수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게 돼 결국 선발전을 열게 됐고 당예서는 7전 전승으로 1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예선은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 수준이니 가볍게 통과했다.
당예서는 여자 단체전 조별 리그와 3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잇따라 3-0으로 꺾는 데 힘을 보태 첫 귀화 한국인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2014년 소치 겨울철 올림픽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릴레이에서 공상정(대만 출신)이 금메달 멤버가 되면서 당예서의 뒤를 이었다.
최근 재기를 위해 애쓰고 있는 지난날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혈통은 매우 복잡하다. 아버지에게는 흑인과 아메리칸 인디언, 중국인의 피가 섞여 있다. 어머니는 태국인과 중국인, 코커서스 백인의 혼혈이다. 미국의 주류 사회를 이루는 인종의 피가 한 방울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우즈는 골프로 성공했고 2009년 불륜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 반듯한 청년, 모범적인 가장의 본보기였다. 혈통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성공 스토리에 재미를 더하는 얘깃거리가 됐을 뿐이다.
지난 10월 4일 막을 내린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육상 남자 200m에서 여호수아는 1986년 서울 대회 장재근(금메달) 이후 28년 만에 단거리 메달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금메달리스트인 페미 오구노데(카타르)와 은메달리스트인 모하메드 파헤드(사우디아라비아)가 모두 아프리카 출신 귀화 선수여서 여호수아는 사실상 아시아 챔피언이었다.
세계 스포츠 무대를 누비는 혼혈·귀화 선수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팩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