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인천 = 이현용 기자] '고개 숙인 올림픽 영웅들!'
영웅들이 고개를 숙였다. 온 힘을 다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죄송합니다"라며 미안한 마음을 나타냈다. 그들이 뭘 그리 잘못했길래 죄인 같은 표정으로 사과하는 걸까. 그들을 미안하게 만든 여러 가지 상황이 잘못됐을 뿐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재혁은 24일 인천 연수구 송도동 달빛축제정원역도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역도 남자 85kg A그룹 경기에 출전해 인상에서 171kg(2위)을 들어 올렸으나 용상 1, 2, 3차 시기에서 모두 실패하며 실격했다. 인상에서 자신의 기록을 뛰어넘는 무게를 들어올렸지만 용상에서 바벨을 머리 위로 들지 못했다. 경기를 마친 그는 "아쉽고 팬에게 굉장히 죄송하다. 또 감사하다"고 말했다.
수영의 박태환도 "죄송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24일까지 이번 대회에서 3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3회 연속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전 종목에서 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마린보이'는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는 "많이 응원해 주셨는데 아쉬운 경기를 보여드려 죄송하다. 남은 경기 열심히 하는 장면 보여드리는 것이 제가 할 도리인 것 같다"고 미안한 마음을 나타냈다.
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사과는 한국 스포츠의 척박한 환경을 간접적으로 비치고 있어 더욱 씁쓸하다. 사재혁과 박태환 모두 재기에 재기를 거듭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유지했고, 이번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저력을 뽐냈다. 두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을 때 국민들은 열광했지만, 올림픽 이후 역도와 수영 종목의 지원과 관리는 더욱 부실해졌다. 당연히 외로운 싸움이 이어졌다. 사재혁은 잇따른 부상을 딛고 부활에 성공했고, 박태환은 기업 스폰서 없이 전지훈련을 떠나며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영웅들은 분명히 최선을 다했다.
있는 힘을 다해 아시안게임에서 선전을 벌인 스포츠 영웅들의 사과에 대한 냉정한 반성이 필요한 때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 '금메달 지상주의'에 빠진 대한민국 스포츠계가 영웅들을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다. 선수들의 피와 땀을 메달 색으로 판단한다. 2년 전, 4년 전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도 부진에 빠지면 서서히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은 먼나라 이야기다.
"한국 수영은 40년 전으로 되돌아 갔다." 박태환이 이번 대회에서 3연속 동메달을 따낸 뒤 나온 외신의 평가다. 한국의 수영 선수 박태환이 아니라 '박태환의 한국수영'이라는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지 않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