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내홍이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숱한 억측과 소문이 꼬리를 물며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모양새다.
급기야 '96라인'의 대표팀 은퇴설은 주장 손흥민과의 대립 구도로까지 번지고 있다. 일부 보도의 추측성 해석이 '92라인 대 96라인'이라는 대립 구도를 키우는 양상이다. 나름대로 취재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보도라 하더라도, '92라인 대 96라인'의 대립설은 여전히 정황상의 추측에 불과하다.
전언을 바탕으로 한 취재나 과거 사건을 나열해 맥락을 짚어보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의 구체적인 설명은 충분히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주변의 추측과 해석만 무성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답답한 이는 축구대표팀 임시 사령탑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일 것이다. 6경기 임시 지휘봉을 잡고 들어와 이미 4경기를 불협화음 속에서 치렀고,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11월 남은 2경기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봉합되거나 해결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식 감독이라면 강력한 통솔력을 바탕으로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설 수도 있겠지만, 황인범도 인정했듯이 임시감독 신분으로 선수단 내부의 갈등에 개입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모레노 감독으로서는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그렇다고 마냥 지켜보기만 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그렇다고 위기에 빠진 대표팀을 그저 방관만 할 것인가. 그 중심에서 문제를 풀어야 할 핵심 주체는 단연 대한축구협회다. 협회는 회장 부재를 이유로 책임을 미루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직의 책임을 회장의 부재 뒤에 숨기려는 태도는 용납하기 어렵다. 회장이 없다고 협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동안 조직을 운영해온 임원진과 행정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지금 축구협회가 이번 대표팀 사태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곤란하다. 현영민 전력강화위원장이 당사자들과 밤샘 설득을 거쳐 은퇴를 만류했다는 보도만 전해질 뿐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단순한 설득으로 풀릴 일인가.
이번 사태는 국가대표로서의 책임과 규율을 저버린 행동인지, 아니면 대표팀 내부에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를 드러내는 사건인지부터 밝혀야 한다. 어느 쪽이든 단순히 설득하고 만류하는 선에서 덮을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축구협회는 즉시 진상조사에 착수해 사태의 경위와 본질을 명확히 밝히고, 조사 결과에 따라 책임을 물을 것은 묻고 개선할 것은 개선해야 한다. 선수들의 입장만을 듣거나 주변의 전언을 취합하는 수준을 넘어,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재발 방지책까지 마련해야 한다.
국가대표팀 정식 감독 선임 작업 역시 언제까지 회장의 등장만을 기다릴 것인가. 당장 내년 1월로 예정된 아시안컵에 출전하려면 정식 감독 선임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이 나와야 한다. 모레노 감독이 국민적 신임을 얻어 아시안컵까지 팀을 이끌어주길 내심 바라는 눈치지만, 그 플랜이 어그러졌을 때의 대안은 준비되어 있는가.
지난 2일 베네수엘라전이 끝난 뒤 황인범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대표팀 내부에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쌓여온 것이라면, 그동안 협회가 보여준 방임과 무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년 전 '탁구 게이트' 당시에도 협회는 선수단 내부의 갈등을 외부에 공개하면서 정작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로서의 책임은 다하지 못했다. 스스로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바로잡아야 할 협회가 오히려 감독 선임 실패와 행정 무능에 쏠린 비난을 피하려 아시안컵 부진의 책임을 선수들에게 돌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만약 협회가 문제를 인지했다면, 차후에라도 진상을 정밀히 조사하고 징계할 것은 징계하여 국가대표팀의 규율과 영(令)을 바로 세웠어야 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이강인이 사과하고 손흥민이 포용했다"는 식의 개인적 화해로 치부하며 덮어버렸다. 결국 국가대표팀 내에 이 같은 충돌과 불협화음이 계속해서 자라날 토양을 협회 스스로 제공한 셈이다.
경기력 측면에서 이들은 모두 대표팀에 중요한 선수들이다. 그러나 불편한 관계가 지속된다면 이들의 기량을 온전히 결집하기 어렵다. 선수 개인의 갈등을 봉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표팀 내부의 문제가 무엇인지 규명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해야 할 주체는 바로 축구협회다. 오늘도 쏟아지는 각종 루머와 추측성 보도를 보며 축구협회가 남 일 보듯 방관해서는 안 된다. 하루빨리 ‘진상규명 TF’를 구성해 사태의 실체를 밝히고, 그에 따른 대책과 후속 조치를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대표팀의 주축 멤버라는 이유만으로 팀에 혼란을 초래한 사안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
선수들의 행동이 경솔한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표팀이 선수 개인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는 조 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대표팀 내부에 오랫동안 누적된 부조리가 드러난 것이라면 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어느 쪽이든 사실 확인과 책임 규명이 먼저다.
축구협회는 더 이상 선수들의 설득과 개인 간 화해에만 문제 해결을 맡겨서는 안 된다.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진상조사에 착수하고, 그 결과와 후속 조치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대표팀의 규율과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선수들의 몫만이 아니다. 그 책임의 중심에는 축구협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