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3년 만에 돌아온 스페인 무대를 단 13분 만에 집어삼켰다. 데뷔전 축포로 에어 메트로폴리타노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아틀레티코의 새로운 7번’ 이강인(25)이 난적 비야레알을 상대로 2경기 연속골 사냥에 나선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24일 0시(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리야드 에어 메트로폴리타노에서 비야레알과 2026~2027 라리가 2라운드 홈경기를 치른다. 현지시간으로는 23일 오후 5시다. 시선은 단연 이강인에게 집중된다. 이제 관심은 '깜짝 데뷔골'을 넘어 이강인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새로운 주전 '7번'으로 자리 잡느냐에 쏠린다.
이강인은 20일 말라가와 개막전에서 벤치에서 출발했지만 후반 12분 투입된 뒤 불과 13분 만에 승부를 갈랐다. 오른쪽에서 공을 잡아 안으로 파고든 뒤 왼발로 감아 찬 슈팅을 골문 구석에 꽂아 넣었다. 알렉스 바에나의 추가골까지 더한 AT마드리드는 2-0으로 승리했고 이강인은 공식 경기 데뷔전부터 경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로이터도 이강인이 오른쪽 측면에서 안쪽으로 파고들어 결승골을 터뜨렸다고 주목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골이 시메오네 감독의 주문을 그대로 수행한 결과였다는 점이다. 이강인은 경기 뒤 스페인 'AS'와 인터뷰에서 시메오네 감독이 투입 직전 "라인 사이에 공간이 많으니 공을 받으면 슈팅을 노리라"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이강인은 그 지시를 완벽하게 실행했다. 공간을 찾아 움직이고, 주저하지 않고 슈팅하며 닫혀 있던 경기를 열었다.
시메오네 역시 이강인의 '결정력'뿐 아니라 전술 수행 능력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말라가전 뒤 "경기가 요구하는 것을 해낼 수 있는 선수다. 팀이 필요로 할 때 역할을 해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이강인이 최고의 경기력을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래서 비야레알전은 한 단계 더 중요한 시험대다. 말라가전이 '조커 이강인'의 가치 확인이었다면 비야레알전은 '주전 이강인'으로의 신분 상승을 가늠할 무대다. 스페인 'AS'가 현재 제시한 AT마드리드의 비야레알전 예상 선발 4-2-3-1에는 이강인이 2선 공격 자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개막전에서 벤치 출발했던 상황과 비교하면 불과 한 경기 만에 팀 내 위상이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팀 사정도 이강인의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그리즈만이 미국 무대로 떠났고, 알렉산데르 쇠를로트는 부상 중이다. 훌리안 알바레스의 거취 문제까지 이어지면서 말라가전에서는 원래 측면 공격수인 아데몰라 루크먼이 중앙 공격수로 나섰다. 실제 AT마드리드는 전반 45분 동안 말라가의 밀집수비를 제대로 뚫지 못했고 이강인과 바에나가 투입된 뒤에야 공격의 속도와 창의성이 살아났다.
이강인에게 필요한 역할이 명확해지는 대목이다. 좁은 공간에서 수비 한두 명을 벗겨내는 드리블, 왼발 킥, 라인 사이에서 공을 받아 전방으로 연결하는 패스는 시메오네가 그리즈만 이후 공격진에서 필요로 하는 요소와 맞닿아 있다.
다만 이강인의 몸 상태가 아직 100%는 아니다. 월드컵과 병역 관련 행정 절차 등으로 팀 훈련 합류가 늦었던 이강인은 말라가전 뒤 "아직 경기 리듬이 부족하다. 훈련을 통해 개인적으로도 팀으로도 좋아져야 한다"고 스스로 진단했다. 그럼에도 짧은 출전 시간에 경기 흐름을 바꿨다는 점은 오히려 기대를 키운다.
상대 비야레알은 결코 만만치 않다. 지난 시즌 AT마드리드와 마지막까지 3위 경쟁을 벌인 비야레알은 최종 38라운드 맞대결에서 무려 5-1 대승을 거두며 3위를 차지했다. AT마드리드에는 순위 싸움의 패배와 4골 차 참패라는 두 겹의 상처를 안긴 상대다.
새 시즌에는 이니고 페레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비야레알은 개막전에서 라싱 산탄데르에 0-2로 끌려가다가 파페 게예와 니콜라 페페의 연속골로 2-2를 만들었다. 두 골 차를 따라잡는 저력을 보여준 만큼 AT마드리드가 잠시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위험한 상대다.
비야레알의 새 사령탑 페레스 역시 올 시즌 목표를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진출로 분명히 제시했다. 전방 압박과 적극적인 공격 전개를 추구하는 팀을 상대로 이강인이 압박을 어떻게 벗어나고, 그 뒤 생기는 공간을 활용하느냐가 승부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강인으로서는 '진짜 시험'이다. 승격팀 말라가를 상대로 터뜨린 데뷔골이 자신의 존재를 알린 한 방이었다면, 지난 시즌 라리가 3위 비야레알을 상대로 다시 공격포인트를 기록한다면 의미가 달라진다. 시메오네의 '특급 조커'를 넘어 선발로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선수라는 신뢰까지 얻을 수 있다.
세레소 회장이 입단식에서 기대했던 'AT마드리드의 주축', 그리고 그리즈만이 남기고 간 등번호 7의 무게도 그렇게 증명할 수 있다.
이강인은 개막전 뒤 "중요한 것은 팀을 돕는 것이다. 더 많은 승리를 위해 계속 강하게 훈련하겠다"고 말했다.
시작이 반(始作半)이라고 했다. 그러나 유럽의 빅클럽에서 한 경기의 영웅이 되는 것과 한 시즌의 주역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첫 경기 13분 만에 스페인을 흔든 이강인. 이제 비야레알전은 그 돌풍이 '한여름밤의 반짝임'인지, AT마드리드의 새로운 7번 시대를 알리는 출발점인지를 보여줄 두 번째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