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계속 바뀌는데, 왜 한국축구는 그대로인가 [최순호의 축구세상]


월드컵 실패 뒤 또 감독 찾기…사람보다 먼저 바꿔야 할 것은 한국축구의 운영 방식

한국축구대표팀 홍명보 감독(오른쪽 네번째)이 6월 25일(한국시간) 열린 2026북중미월드컵 A조 조별리그 남아공전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때 선수들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있다./몬터레이(멕시커)=KFA

[더팩트 | 최순호 전 국가대표] 대한민국 축구는 지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감독을 바꾸고, 선수를 바꾸고, 협회 임원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 그동안 우리는 성적이 나쁘면 감독에게 책임을 묻고, 여론이 악화되면 책임자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겨왔다. 그러나 사람이 바뀐 뒤에도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됐다면 이제 질문을 달리해야 한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일하는 구조와 시스템에 있는 것은 아닌가.

축구에서는 감독 한 명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도 좋은 선수를 지속적으로 육성하는 시스템, 전문적인 행정 조직, 경쟁력 있는 리그, 명확한 장기 계획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을 지속하기 어렵다. 대표팀 감독 한 사람에게 한국축구의 미래까지 맡기는 방식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프로구단부터 ‘지원받는 조직’에서 ‘가치를 만드는 기업’으로

한국축구의 변화는 프로축구에서 시작해야 한다.

프로구단은 단순히 예산을 받아 집행하는 조직이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 팬을 만들고, 선수를 키우고, 콘텐츠를 생산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스포츠 기업이 되어야 한다. 현재 K리그에는 기업구단도 있고 시·도민구단도 있다. 각각 탄생 배경과 역할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은 책임경영이다.

예산을 얼마나 쓰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돈으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냈느냐다. 관중은 얼마나 늘었는지, 유소년 선수는 얼마나 성장했는지, 선수 이적을 통해 어떤 수익을 창출했는지, 지역사회와 어떤 관계를 구축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유럽의 경쟁력 있는 클럽들은 경기 결과만으로 구단을 평가하지 않는다. 선수 육성과 이적, 경기장 운영, 스폰서십, 콘텐츠, 글로벌 마케팅까지 하나의 산업으로 움직인다. K리그 역시 이제는 ‘얼마를 지원받았는가’보다 ‘얼마의 가치를 만들어냈는가’를 묻는 구조로 가야 한다.

◆감독 한 사람의 철학이 아니라 ‘한국축구의 철학’이 필요하다

대표팀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감독이 바뀔 때마다 전술과 선수 선발 기준이 크게 달라진다. 한 감독은 빌드업을 강조하고, 다음 감독은 역습을 강조한다. 세대교체의 기준도 감독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감독마다 철학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대표팀에는 감독보다 상위 개념의 축구 철학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선수가 어떤 기술적 특징을 가져야 하는지, 유소년 단계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연령별 대표팀과 A대표팀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이 필요하다.

독일과 스페인, 일본 등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키워온 나라들의 공통점은 특정 감독 한 사람에게 국가 축구의 운명을 맡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독은 시스템 안에서 일해야 한다. 시스템이 감독을 따라다녀서는 안 된다.대표팀 감독이 바뀌더라도 한국축구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방향은 이어져야 한다.

◆유소년 육성도 ‘승리’에서 ‘성장’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축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어린 선수들이다. 그러나 우리 유소년 축구는 아직도 대회 성적과 진학 결과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다. 어린 시절부터 당장의 승리를 위해 실수를 줄이는 축구를 하다 보면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잃기 쉽다.

어린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 아니라 실패하면서 배우는 기회다. 드리블을 시도하다 공을 빼앗길 수도 있고, 과감한 패스를 시도하다 실수할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선수가 성장한다. 세계적인 선수는 지시만 잘 따르는 선수보다 스스로 판단하는 선수에서 나온다.

지도자 평가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대회에서 몇 위를 했느냐뿐만 아니라 몇 명의 선수를 성장시켰는지, 선수들이 다음 단계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갖췄는지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말이 있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유소년 정책의 결과는 1~2년 뒤가 아니라 10년, 20년 뒤에 나타난다.

◆축구 행정에도 더 많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축구는 이제 경기장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스포츠가 아니다. 데이터 분석, 스포츠 과학, 재무, 마케팅, 미디어, 법률, 국제관계 등 수많은 전문 영역이 결합된 거대한 산업이다. 따라서 축구를 잘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축구 행정을 잘할 수 있는 시대도 지났다. 선수 출신에게는 현장 경험이라는 귀중한 자산이 있고, 경영·마케팅·데이터 분야 전문가에게는 또 다른 전문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출신이 아니라 능력이다. 대한축구협회와 프로구단 모두 각 분야 최고의 인재들이 함께 일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축구인과 비축구인을 나누는 오래된 구분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좋은 조직은 사람의 이름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역할과 책임, 평가 기준이 분명한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이제는 ‘누구를 바꿀 것인가’보다 ‘무엇을 바꿀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한국축구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우리는 비슷한 장면을 봐왔다. 감독 퇴진을 요구하고, 협회 책임자를 비판하고, 새로운 인물을 찾는다. 물론 잘못된 결정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책임을 묻는 것은 조직을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사람을 바꾸는 것만으로 개혁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사람이 낡은 시스템 안에 들어가면 결국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한국축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누구를 감독으로 뽑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시스템 속에서 감독이 일하게 할 것인가’.

‘누가 협회를 이끌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원칙으로 협회가 운영되게 할 것인가’.

‘어떤 스타가 나타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좋은 선수가 계속 나오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감독을 몇 번 바꾸더라도 한국축구의 근본적인 경쟁력은 달라지기 어렵다. 축구에서 전술을 바꾸려면 선수들의 위치부터 바꿔야 한다. 한국축구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사람 몇 명의 자리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 판 자체를 다시 짜야 한다.

‘환골탈태(換骨奪胎)’라는 말처럼 겉모습만 고치는 변화가 아니라 뼈대를 바꾸는 변화가 필요하다. 한국축구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좋은 선수도 있고, 뜨거운 팬도 있으며, 축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크다. 우리가 부족한 것은 열정이 아니라 그 열정을 지속 가능한 힘으로 바꾸는 시스템이다.

감독 한 명이 한국축구를 구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좋은 감독이 성공할 수 있고, 좋은 선수가 계속 성장하며, 좋은 행정가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축구가 해야 할 진짜 개혁이다.

이제 감독만 바꾸지 말자. 한국축구의 판을 바꿀 때다.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