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임시’라는 두 글자에 속아서는 안 된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참사 이후 풍비박산이 난 한국축구가 다시 감독을 뽑는다. 대한축구협회(KFA)는 9일 오후 5시 남자 A대표팀 임시 감독 공개채용 서류 접수를 마감하고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갔다. 이번 주 평가위원회를 구성하고, 다음 주 서류 검토와 온라인 면접을 거쳐 우선협상 순위를 정한 뒤 8월 안에 선임한다는 계획이다.
계약기간만 놓고 보면 9월부터 11월까지 A매치 6경기를 맡는 ‘임시직’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축구에서 이 자리는 결코 임시가 아니다.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기둥이다. 6경기를 맡길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대표팀의 축구 원칙을 다시 세울 사람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감독 선임에서는 월드컵을 직접 뛰었던 선수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이재성, 황인범. 유럽 정상급 무대에서 뛰어온 이들이 월드컵 이후 보여준 말과 행동에는 공통된 질문 하나가 숨어 있다.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떤 축구를 하려는 팀인가." 가장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 선수는 김민재다. 김민재는 최근 차기 대표팀 감독에 대해 "본인이 하고자 하는 축구가 확실한 감독"을 원한다고 했다. 거기에 한마디를 더 보탰다. 준비한 전술이 통하지 않을 때 문제를 짚어주고, 하나가 막혔을 때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패턴"을 가진 감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월드컵 남아공전에서 김민재는 한국이 0-1로 뒤진 상황에서 교체되며 벤치를 향해 강하게 의사를 표시했다. 최근 그는 당시 공격수가 더 필요했던 상황이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수비수 한 명의 불만이라기보다 그라운드 안의 선수가 느꼈던 경기 운영의 답답함으로 읽어야 한다.
황인범의 말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남아공전 직후 황인범은 측면 크로스를 활용한 득점 방식을 준비했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패배를 전술 탓으로 돌리는 대신 "우리가 부족해서 졌다"고 책임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말은 준비한 공격 방식이 막혔을 때 경기 안에서 다른 해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바로 김민재가 말한 ‘다른 패턴’의 문제다.
이강인은 더 직접적인 장면을 남겼다. 남아공전 경기 흐름이 풀리지 않자 이강인이 코칭스태프에게 이재성 투입 필요성을 이야기한 정황이 보도됐다. 공격을 풀어야 할 핵심 선수가 경기 도중 벤치에 다른 선수의 투입을 이야기해야 했다면 새 감독은 반드시 그 이유부터 되짚어봐야 한다.
특히 이강인은 체코전에서 패스 성공률 100%를 기록하고 황인범의 골을 도우며 공격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런데 상대가 이강인을 봉쇄하자 한국의 공격도 함께 막혔다. 남아공전에서는 이를 풀어줄 구조적 변화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이강인이 잘하면 공격이 되고, 막히면 팀도 막히는 축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손흥민과 이재성의 문제는 더욱 상징적이다. 비기기만 해도 32강에 오를 수 있었던 남아공전에서 대표팀의 주장 손흥민과 베테랑 이재성이 동시에 선발에서 빠졌다. 이재성은 끝내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홍명보 전 감독은 국회 청문회에서 두 선수의 제외가 갈등이나 징계가 아닌 "전술적인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그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 감독에게 선수 선발 권한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감독의 판단은 결과와 경기 내용으로 설명돼야 한다. 한국은 남아공에 0-1로 패했고, 손흥민을 뒤늦게 투입한 뒤에도 공격의 활로를 찾지 못했다. 남아공의 휴고 브로스 감독은 경기 뒤 "전술적으로 우리가 한국보다 조금 나았다"고 평가했다. 패장의 변명이 아니라 승장이 한국의 아픈 곳을 정확하게 찌른 셈이다.
그래서 새 감독을 고르는 첫 번째 기준은 너무나 분명하다. 스타를 데려다 놓는 감독이 아니라 스타를 연결할 줄 아는 감독이어야 한다.
손흥민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 이강인에게 어느 공간과 어느 정도의 자유를 줄 것인가. 황인범을 후방 빌드업에 묶어둘 것인가, 공격적으로 전진시킬 것인가. 이재성의 압박과 공간 침투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김민재의 공격적인 수비를 살리기 위해 수비라인과 중원의 간격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이 다섯 질문에 명쾌한 답을 하지 못하는 지도자라면 아무리 화려한 이력서를 갖고 있어도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는 부족하다.
두 번째 조건은 플랜 A뿐 아니라 플랜 B와 C를 가진 감독이어야 한다. 포백이냐 스리백이냐는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을 가졌을 때 어떤 방식으로 전진하고, 상대 압박을 어떻게 깨며, 공을 잃었을 때 어디에서 다시 압박하고, 선제골을 내줬을 때 무엇을 바꿀 것인지 선수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술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팀의 원칙까지 경기마다 바뀌어서는 안 된다.
세 번째는 선수와 소통할 수 있는 지도자다. 세계적인 클럽에서 매주 최고 수준의 전술을 경험하는 선수들은 이제 감독의 지시를 일방적으로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다. 경기장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가장 먼저 느끼는 사람 역시 선수다. 선수의 말을 다 들어주라는 뜻이 아니다. 듣되 감독이 결정하고, 결정했다면 선수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현대 축구에서 말하는 리더십이다.
이번 6경기에서 승패만 세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6전 전승을 해도 한국축구의 경기 모델을 만들지 못한다면 절반의 성공이다. 반대로 몇 번 지더라도 대표팀의 새로운 원칙을 세우고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하며 차기 정식 감독에게 이어질 토대를 만든다면 의미가 있다.
공개채용은 공정을 위한 제도이지 좋은 감독을 자동으로 골라주는 마법이 아니다. 지도자 자격증, 운영계획서, 코칭스태프 명단을 점수화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서류의 점수가 감독의 축구 능력보다 앞설 수는 없다.
‘인사가 만사(人事萬事)’라고 했다. 지금은 여기에 ‘욕속부달(欲速不達)’도 새겨야 할 때다. 9월 A매치가 급하다고 서두르다 또 잘못된 사람을 고르면 한국축구는 월드컵 참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셈이 된다.
손흥민과 이재성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김민재와 황인범은 대표팀의 중심 세대이고 이강인은 앞으로 한국축구를 끌고 갈 핵심이다. 이 선수들이 세계적인 클럽에서 배우고 경험한 축구를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제대로 펼치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번 감독 선임에서 면접위원들이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도 거창할 필요가 없다. "손흥민·이강인·김민재·이재성·황인범을 데리고 어떤 축구를 하겠습니까."
그 질문에 가장 구체적으로 답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6경기짜리 감독을 찾지 말라. 한국축구가 다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수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감독을 찾아라. 월드컵 참사 이후 한국축구가 다시 세워야 할 첫 번째 기둥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