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은 파울, 다른 한 곳은 정상?...도대체 기준이 뭡니까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26일 안양-강원전, 인천-부천전… 서로 다른 장소에서 나온 ‘역전된 잣대’
K리그 ‘고무줄 판정’, 일관성이 신뢰 회복 첫관문

지난 26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안양-강원전. 강원 코너킥 때 안양 GK 김정훈과 강원 이유현의 공중경합 중 충돌장면을 주심이 온필드리뷰를 통해 관찰하고 있다./ 쿠팡플레이 중계회면 캡처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월드컵 심판 기근’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들고 안타까워한 게 바로 엊그제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어떻게 하면 다시 세계 무대로 나아갈 것인가를 두고 긴급 공청회가 열렸고, 축구계 내부에서는 뼈아픈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국제 심판으로서 갖춰야 할 경기 규칙 지식과 어학 능력 등에 대한 구체적인 주문과 함께, 세계 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진짜 첫 단추는 결국 ‘국내 리그 판정의 신뢰 회복’이라는 지적이 거세게 일었다. 내수용 판정의 신뢰조차 얻지 못하면서 세계 무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그 요란했던 선언과 공청회 이후, 판정 신뢰를 높이기 위한 변화는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가. 월드컵 브레이크를 마치고 지난 4일 재개된 K리그1 현장을 지켜보며, 우리 심판진이 과연 세계 무대에 한 걸음이라도 가까워지고 있는지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동일한 범주의 플레이를 두고 경기마다, 혹은 주심마다 다른 잣대를 대는 '고무줄 판정' 앞에서 선수와 구단, 팬들은 또다시 절망한다. 심판평가협의체는 매번 ‘주심의 재량’이라는 편리한 방패 뒤로 숨으려 하지만, 모순된 판정 사례가 터질 때마다 은근슬쩍 회피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차곡차곡 데이터를 축적해 심판진의 엄정한 학습 자료로 삼고, 리그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일관된 기준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최근 K리그1 현장에서 관찰한 몇 가지 모순돼 보이는 판정 사례를 비교해 보자.

26일 열린 인천-부천전에서 인천 김명순이 헤더를 위해 점프한 뒤 뒤에 버티고 서있던 부천 공격수 김승빈의 등에 걸려 균형을 잃고 위험하게 낙하하고 있다. /쿠팡플레이 중계화면 캡처

◆ 경합 같은데 파울, 위험한 플레이는 정상? (안양-강원전 vs 인천-부천전)

지난 26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안양-강원전. 0-1로 끌려가던 강원은 전반 30분 코너킥 상황에서 터진 신민하의 헤딩 골이 취소됐다. 코너킥 처리 과정에서 안양 GK 김정훈과 강원 이유현의 공중볼 경합을 ‘골키퍼 차징’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제축구평의회(IFAB) 경기규칙 12조에 따르면, 골키퍼 차징의 핵심은 상대가 '골키퍼가 볼을 완전 소유하고 있다'고 간주되는 상황에서 볼 탈취를 위한 무리한 신체 접촉을 감행할 때 성립한다. 주심의 판단을 우선 존중하지만, 일개 축구팬 입장에서 보기에 해당 장면은 골키퍼가 공을 완전 점유한 상태가 아닌, 공중에 뜬 볼을 동시에 경합하는 과정으로 보였다. 단순히 공을 향해 정당하게 점프한 경합 장면에 ‘골키퍼 프리미엄’을 과도하게 적용해 골을 취소시킨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이 남았다.

반면 같은 날 인천-부천전 전반 추가시간, 부천 공격수 김승빈은 점프하여 헤더를 시도하는 인천 수비수 김명순을 향해 공중 경합 의사 없이 버틴 채 등을 돌려 진로를 막아섰다. 공중에서 균형을 잃은 김명순은 매우 위험하게 낙하했고, 흘러나온 볼은 인천의 자책골로 연결됐다.

KFA 경기규칙 12조는 "위험한 태도로 플레이한다는 것은 볼을 플레이하려 시도할 때 누군가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는 행동"으로 정의한다. 착지 부상 위험이 직관적으로 보이는 명백히 위험한 플레이였음에도, 주심이 VAR 온필드리뷰 끝에 내린 판정은 ‘노파울, 득점 인정’이었다.

정당해 보였던 공중 경합(강원)은 엄격한 잣대로 파울을 선언하고, 정작 선수의 생명과 직결된 위험한 진로 방해(부천)는 정상 플레이로 넘겼다. ‘선수 보호’라는 최우선 원칙과 ‘경합 인정’의 잣대가 완전히 역전된 판정이라고 보는 건 ‘축알못’의 억측일 뿐일까. 일반인들도 수긍할 만한 심판위원회의 설명이 나와주면 좋겠다.

18일 열린 인천-전북전에서 인천 이동률(오른쪽에서 두번째)이 페널티박스 안에서 전북 수비수 김승섭(맨 오른쪽)에게 발을 걷어차이고 있다./쿠팡플레이 중계화면 캡처

◆ 글로벌 표준과 괴리된 박스 안 ‘발 타격’ (월드컵 3·4위전 vs 인천-전북전)

2026 북중미 월드컵 3·4위전 프랑스-잉글랜드전. 후반 39분 프랑스 수비수 말로 귀스토가 박스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잉글랜드 제드 스펜스의 발을 밑에서 걷어차 넘어뜨리자 지체 없이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수비수가 공에 대한 지배력 없이 공격수의 하체를 직접 가격하면 예외 없이 PK를 선언하는 ‘글로벌 표준’을 보여준 장면이다.

그러나 18일 인천-전북전 전반 37분, 인천 이동률이 페널티박스 안에서 볼을 다루던 중 전북 수비수 김승섭의 발이 밑에서 위로 이동률의 발을 직접 걷어차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주심은 VAR실과 장시간 교신 끝에 ‘정상 플레이’로 판정했다.

수비수의 발이 공을 먼저 건드리지 못하고 공격수의 발을 걷어찼다면, 이는 임팩트의 강도와 상관없이 명백한 ‘트리핑(Tripping)’ 또는 ‘키킹(Kicking)’ 파울 범주에 들어간다. 두 장면 모두 박스 안에서 수비수가 공격수의 발을 공격했다는 본질은 같았으나 판정은 극과 극이었다. 글로벌 표준과 K리그 현장 간의 판정 갭(Gap)을 국내 심판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지난 11일 열린 울산-전북전에서 울산 보야니치가 전북지역 박스정면에서 볼을 받기 위해 전진하다 주심과 충돌하고 있다. / 쿠팡플레이 중계화면 캡처

◆ '재량권'이라는 이름의 경기 개입 (울산-전북전 vs 월드컵 8강전)

지난 11일 울산-전북전에서는 전북지역 박스 정면에서 울산 보야니치가 주심과 동선이 겹쳐 충돌하면서 넘어진 뒤 볼 소유권이 전북으로 넘어가 득점으로 연결됐다. 울산의 거센 항의에도 대한축구협회 심판평가협의체는 "심판의 재량권에 해당하는 사항으로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이번 월드컵 스페인-벨기에 8강전에서 올리버 주심은 자신이 스페인 미드필더 다니 올모의 진로를 방해하자 즉시 경기를 중단하고 드롭볼을 선언했다.

경기규칙 9조는 볼이 심판에 맞고 볼 소유 팀이 바뀌는 등 불공정한 영향이 생기면 경기를 중단하고 드롭볼로 재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비록 볼이 아닌 선수와 심판의 신체 충돌이라 할지라도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글로벌 표준’인 월드컵 무대처럼 경기를 중단했어야 마땅하다. 국내에서 이를 ‘재량권’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방치한 것은 ‘규칙의 정신’을 훼손한 판단이라고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스페인 다니 올모(왼쪽)가 지난11일(한국시간) 열린 2026북중미월드컵 8강 벨기에전 도중 마이클 올리버 주심과 부딕쳐 넘어지고 있다. /잉글우드(미 캘리포니아주)=AP 뉴시스

◆ 대중 공개 브리핑, 판정 사례 백서 발간 제안… 동일한 잣대가 신뢰를 만든다

이상 세 가지 비교 포인트는 최근 K리그1 현장에서 목격한 대표적인 사례들일 뿐이다. 과연 그 순간 주심들이 적용한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판정의 일관성을 세우기 위한 심판위원회의 투명한 설명과 명확한 기준 제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매 판정마다 심판진이 내세우는 판단 근거나 나름의 논리가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잣대가 모든 경기, 모든 심판, 모든 팀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느냐’이다.

팬들과 구단이 국내 심판진에 품는 불신은 심판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 문제라기보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고무줄 잣대, 즉 가변적 기준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이제라도 이 판정 간극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적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2월 ‘KFA 오픈 그라운드: 심판 정책 발표’행사에서 대한축구협회 이용수 부회장이 심판 운영 투명성 제고 및 주요 이슈에 대한 먼데이 브리핑을 런칭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하고 있다./KFA

이를 위해 우선, 사례 데이터베이스(DB)화 및 공개 브리핑 정례화가 필요하다. 판정 논란이 발생한 사례들을 유형별로 축적하고, 독일이나 잉글랜드처럼 매주 논란 장면에 대해 영상 분석과 함께 명확한 규칙 근거를 대중과 구단에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당초 대한축구협회는 올해 판정 설명회를 겸한 ‘먼데이 브리핑’ 도입 등을 약속했으나, 결국 지키지 않은 채 유야무야 넘어가며 신뢰 회복의 골든타임을 스스로 놓쳐왔다. 말뿐인 약속에 그칠 게 아니라, 시즌이 끝난 뒤 한 해의 오심 사례와 판정 기준 재정립 내용을 담은 백서를 제작해 공개하는 수준의 실질적인 자정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또한, 현장 스터디를 통한 기준의 일치 및 '국제 표준(Global Standard)'과의 동기화가 시급하다. 시즌 개막 전 전 구단과 심판진이 동일한 사례 영상을 바탕으로 밀도 높은 스터디를 진행해, 모호했던 '재량'의 범주를 명확히 정립하고 현장의 기준점부터 하나로 모아야 한다. 나아가 FIFA가 요구하는 일관된 데이터와 경합 기준을 K리그 현장에 적극 이식해야만 국내 리그의 신뢰 회복은 물론, 멈춰 서 있는 월드컵 심판 배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비로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한축구협회와 심판위원회는 더 이상 협회 내 힘겨루기나 겉치레식 대응에서 벗어나 심판진의 역량 강화와 판정 신뢰 회복에 진심을 보여야 한다. 월드컵 무대의 불청객이 되었다고 하소연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리그에서부터 정당하고 일관된 잣대로 신뢰를 쌓아 나갈 때 국내리그의 발전은 물론 월드컵 심판이라는 세계 무대의 문도 자연스럽게 열릴 것이다.(K리그 심판 운영은 지난 2020년 1월부터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회에서 하고 있으며 KFA가 심판 선발·교육뿐만 아니라 경기 배정과 평가까지 전담하여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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