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미국 참교육'...부당한 특혜는 독배가 된다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외압에 무너진 FIFA 거버넌스의 민낯
‘달콤한' 독배를 든 개최국 미국의 부끄러운 참사
벨기에에 1-4 참패, 조롱 대상 전락

미국의 세바스탄 버홀터(오른쪽)가 7일(한국시간) 열린 2026북중미월드컵 16강 벨기에전에서 1-4로 패한 뒤 좌절하는 동료 팀 림을 위로하며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시애틀(미 워싱턴주)=AP 뉴시스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2026 북중미 월드컵이 16강전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가운데, 7일(한국시간) 전 세계 축구팬들의 시선은 미국과 벨기에의 맞대결로 쏠렸다. 미국 대표팀의 핵심 스트라이커 폴라린 발로건을 둘러싼 초유의 '징계 집행유예' 사태 때문이었다. 지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에서 거친 파울로 퇴장당해 벨기에전 출전이 불가능했던 발로건.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판정 재검토를 요청했고, FIFA는 전례 없는 '징계 1년 유예'라는 황당한 답을 내놓았다.

유럽축구연맹(UEFA)이 강하게 반발하고 벨기에 축구협회가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등 월드컵의 공정성은 완전히 찢겨 나갔다. 자본에 이어 정치적 권력에 마저 굴복한 FIFA의 거버넌스 와해는 깊은 씁쓸함을 남겼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미국 감독은 웬 떡이냐며 '독이 든 잔’을 들었다. 그는 FIFA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에이스 발로건을 선발로 투입했으나, 벨기에의 유기적인 협력 수비에 막혀 철저히 침묵했고, 결과는 미국의 1-4 참사였다. 사실 이번 선택은 이겨도 '정치적 외압의 수혜자'라는 비아냥을 듣고, 지면 전 세계의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외통수였다. 결국 미국은 벨기에의 전술적 참교육을 통해 부당한 특혜를 입고도 '정의의 응징'을 당한 공공의 적이라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했다.

승리를 향한 부당한 압력이 스포츠의 순수성을 집어삼킬 때 그 끝이 얼마나 참혹한지, 우리는 다시 한번 생생하게 목격했다.

7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DC 내셔널몰에서 2026북중미월드컵 미국-벨기에전을 단체 응원을 하던 미국인들이 자국팀이 벨기에에 크게 밀리자 안타까워하고 있다. /워싱턴DC=AP 뉴시스

◆ 트럼프의 전화, 결국 최대 피해자는 미국 대표팀과 축구팬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무리한 개입으로 인해 가장 큰 치명상을 입은 이들은, 그가 수혜를 주고자 했던 미국 축구대표팀 선수들과 자국 축구팬들이다. 이번 대회 공동 개최국인 미국은 조별리그부터 강력한 전방 압박과 밀리지 않는 몸싸움, 빠른 공수 전환을 바탕으로 4강 이상도 바라볼 수 있는 다크호스로 평가받았다. 온전히 자신들의 땀과 전술적 완성도로 증명해 가던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의 '원치 않는 전화' 한 통은 미국 대표팀이 쌓아 올린 경기력의 순도를 단숨에 탁하게 만들었다. 전 세계 축구팬 중 누구도 미국의 행보를 순수하게 응원하지 않았으며, 미국은 졸지에 전 세계의 공적(公敵)이 되어버렸다.

그라운드 위에서 헌신해 온 다른 선수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정치적 특혜'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허탈함을 마주해야 했고, 순수하게 자국 팀을 응원하던 미국 축구팬들 역시 스포츠맨십을 저버린 국가라는 부끄러운 낙인을 가슴에 달게 되었다. 승리를 강요한 정치적 입김이 도리어 자국 선수들과 팬들의 수치로 돌아온 꼴이다.

반면 벨기에는 FIFA의 부당한 외압에 맞서 선수단이 더욱 단단하게 뭉쳤다. 가르시아 벨기에 감독은 케빈 더 브라위너, 도쿠 등 최근 컨디션 난조를 보이던 핵심 자원들을 과감히 제외하고, 기동력이 더 뛰어난 자원들을 선발 투입해 중원을 장악했다. 이 용병술은 미국의 기동력을 완벽히 멈춰 세웠고, 특혜의 중심에 섰던 발로건은 벨기에 수비수 응고이에게 완벽히 지워지며 전반 동안 단 한 차례의 슈팅에 그치는 수모를 겪었다.

약물의 유혹! 샤라포바가 2016년 8일 지난 10년간 약물 복용을 시인한 가운데 박태환, 벤 존슨, 랜스 암스트롱, 알렉스 로드리게스, 마크 맥과이어 역시 도핑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 유로스포트 홈페이지, 각 선수 페이스북, 더팩트 DB

◆ 기록지 뒤에 숨은 가짜 영웅들

스포츠 역사에는 이렇듯 부정한 방법으로 업적을 세우고 공정성을 훼손하여, 이름 옆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별표(*)’라는 주홍글씨를 새긴 이들이 존재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메이저리그(MLB)의 '스테로이드 시대'다. 1998년 마크 맥과이어의 70홈런과 2001년 배리 본즈의 73홈런은 파업으로 죽어가던 야구의 인기를 심폐 소생한 불멸의 신화였다. 하지만 이들의 압도적인 파워가 금지약물의 힘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순간, 대중의 환호는 싸늘한 냉소로 변했다. 통산 성적은 가이드북에 남아있으나, 이들은 수년째 명예의 전당에서 낙선하며 '가짜 기록'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의 추락은 더 극적이었다. 고환, 폐, 뇌까지 전이된 암을 극복하고 '투르 드 프랑스' 7회 연속 우승을 달성한 그의 인간 승리 드라마는 전 세계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나 2012년, 팀동료들에 의해 도핑의 실체가 드러나며 그의 7회 우승 기록은 역사에서 통째로 박탈당했다. 가장 정교했던 사기극의 주인공이라는 오명만 남았다.

개인의 일탈을 넘어 국가 권력이 직접 시스템을 조작한 사례도 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러시아는 정보기관(FSB)까지 동원해 밤마다 실험실 벽에 구멍을 뚫고 선수들의 오염된 소변 샘플을 바꿔치기했다. 이 조직적 범죄의 결과로 러시아는 국제 대회에서 국기와 국가명을 박탈당한 채 중립 자격으로만 출전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김연아가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우아한 모습으로 연기를 펼치는 모습.

◆ 김연아의 빼앗긴 금메달과 스포츠 거버넌스의 민낯

이 소치 올림픽의 국가적 홈 텃세와 심판진 담합이 낳은 가장 잔인한 피해자가 바로 우리의 '피겨 퀸' 김연아였다. 당시 김연아는 쇼트와 프리 스케이팅 모두에서 완벽한 '클린 프로그램'을 선보였으나, 연결 더블 룹 두발 착지 등 명백한 실수를 범한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내어주어야 했다.

과거 승부조작 이력의 심판이 배치되고, 러시아 빙상연맹 고위 관계자의 아내가 채점관으로 들어가 전 세계 스포츠팬들의 의혹을 샀다. 심지어 2023년 소트니코바 본인의 입으로 "당시 1차 도핑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었다"고 자백했음에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빙상연맹(ISU)은 재조사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다. 체제 수호를 위해 명백한 부정이 눈에 보여도 여간해서는 공식 기록을 뒤집으려 하지 않으려는 스포츠 거버넌스의 씁쓸한 민낯이다.

벨기에 로멜루 루카쿠(9)가 7일(한국시간) 열린 2026북중미월드컵 미국과의 16강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팀의 네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기뻐하고 있다./ 시애틀(미 워싱턴주)=AP 뉴시스

◆ 기록상의 승리, 역사상의 낙인

만약 미국 대표팀이 벨기에를 꺾고 이번 대회에서 승승장구했더라도, 그 성과를 바라보는 전 세계의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경기 전 미국 내에서마저 탄식이 이어졌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의 축구 전문 기자 마크 오그던은 "미국이 벨기에를 이긴다면 정치적 술책으로 규칙을 변경했다는 인식이 영원히 꼬리표로 달릴 것"이라고 한탄했고, 미 정치평론가 사이러스 얀선 역시 "벨기에에 이기더라도 대통령의 부정행위가 필요했다는 이유로 승리가 퇴색할 것이고, 진다면 부정행위를 하고도 이기지 못한 꼴이 된다"고 꼬집었다. 미국 지성인들의 우려대로, 외압이 개입된 스포츠는 승리하는 순간조차 재앙이 되는 구조였던 셈이다.

스포츠 권력이 기록은 지켜낼지 몰라도, 스포츠가 가진 가장 고귀한 가치인 '명예'까지 지켜내지는 못한다. 우리가 말하는 주홍글씨는 서류 위의 글자가 아니라, 전 세계 팬들과 언론의 뇌리에 박힌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록지 속 소트니코바의 이름 옆에는 아무런 주석이 없을지 언정, 대중의 기억 속에는 ‘* 개최국 이점과 심판 매수, 도핑 의혹으로 얼룩진 판정’이라는 가장 부끄러운 주석이 영원히 따라붙어 있다. 부당한 권력의 입김에 편승해 얻으려 한 승리는 결코 축복이 될 수 없다. 남는 것은 기록상의 영광이 아니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주홍글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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