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땀·손흥민 눈물…‘위대한 캡틴 시대’의 유산[이영규의 비욘더매치]


박지성 땀방울과 손흥민 눈물이 일군, 20년 위대한 유산
새 눈물은 두 영웅 위대한 서사가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인사가 되리라

손흥민이 2024년 6월6일 북중미월드컵 2차예선 싱가포르전에서 골을 넣은 뒤 뒤풀이를 하고 있다./싱가포르=KFA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봄날의 설레던 리그 개막을 지나, 이제 세계 축구의 가장 뜨거운 축제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한국 축구의 에이스 손흥민도 25일 소속팀 일정을 마치고 대표팀 베이스캠프에 합류한다. 그러나 이번 무대를 마주하는 마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복잡하다. 대표팀을 둘러싼 행정적 불신과 차가운 무관심, '과연 준비되었는가'에 대한 의문부호가 여전히 가시지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이 무대에서 시선을 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한국 축구의 가장 찬란한 유산을 증명해 온 두 영웅, 박지성과 손흥민이 만들어낸 20년 서사의 거대한 마침표가 어쩌면 바로 이곳, 북중미에서 찍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박지성의 현역은퇴 선언에 맞춰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박지성 헌정영상을 공개했다 / 맨유 홈페이지 캡처

◆ 유럽을 호령한 두 천재,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돌이켜보면 지난 20여 년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위대한 캡틴’의 시대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당시만 해도 동양인에겐 척박하기만 한 유럽 무대에서 '해버지'로 불리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 유니폼을 입고 세계 최고들을 주눅 들게 했던 박지성. 그는 단순히 축구를 잘한 선수를 넘어서, 한국 축구가 유럽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한 레전드였다.

그가 마지막 월드컵이었던 2010년 남아공 대회를 지나 대표팀을 은퇴할 때까지 다져놓은 거룩한 헌신의 길은, 2014년 브라질 무대에서 월드컵 첫발을 디딘 손흥민에게로 이어졌다. 선배가 열어준 길 위에서, 손흥민은 토트넘 홋스퍼의 하얀 유니폼을 입고 아시아인 최초의 EPL 득점왕이라는 전대미문의 역사를 완성했다. 유럽의 변방이었던 대한민국을 세계 축구의 중심부로 당당히 밀어 올린 두 천재의 여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것은, 이 시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거대한 축복이었다.

2022 카타르월드컵 H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에서 마스크를 쓰고 출전한 손흥민(오른쪽)이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드리블하고 있다./ 알라이얀(카타르)=KFA

◆ 태극마크의 무게, 몸을 던져 증명한 무한 헌신

그들의 위대함은 유럽 리그의 정복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들이 가슴에 새긴 '태극마크'의 무게는 언제나 눈물겨웠다. 지구 반바퀴를 도는 살인적인 비행 일정 속에서도, 무릎의 연골이 닳아 없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안와골절이라는 치명적인 부상으로 마스크를 쓰는 위험 속에서도 그들은 조국이 부르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시공간의 한계를 막론하고 언제나 붉은 유니폼 앞으로 달려왔다.

마치 성전을 치르듯 붉은 셔츠를 입고 그라운드에 나서는 순간만큼은 언제나 온몸을 던져 헌신했다.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 하나로 주장 완장의 무게를 견뎠다. 지난 세월 박지성이 흘린 땀방울과 손흥민이 쏟아낸 눈물은, 한국 축구가 절망의 문턱에 설 때마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구원의 서사였다.

손흥민이 2018러시아월드컵 F조 조별리그 독일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쐐기골을 터뜨리는 등 2-0 승리에 앞장섰지만, 결국 조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하자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카잔(러시아)=KFA

◆ 통곡에서 환희까지, 손흥민이 쏟아낸 눈물의 연대기

특히 손흥민이 태극마크를 달고 흘려온 눈물의 연대기는 그 자체로 한국 축구의 현대사였다. 2014년 브라질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월드컵 데뷔골을 넣고도 조별리그 탈락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아이처럼 대성통곡하던 스물두 살의 막내였다면, 2018년 러시아는 세계 최강 독일을 무너뜨리는 기적 같은 쐐기골을 터뜨리고도 끝내 16강의 문턱을 넘지 못한 분함에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던 청년이었다.

그리고 2022년 카타르에서는 안와골절이라는 치명적인 부상 속에서 검은 마스크를 쓴 채 포르투갈의 수비진을 홀로 무너뜨리며 배달한 절묘한 어시스트로, 마침내 16강 진출을 이뤄내고 쏟아냈던 그 환희의 눈물까지 손흥민의 월드컵 출전사는 곧 눈물의 기록이었다. 그의 눈물은 언제나 개인의 영광이 아닌, 나라를 대표하는 자의 책임감과 무한한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더욱 눈물겨웠다.

박지성이 JTBC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JTBC

◆ 선대 캡틴이 보내는 축복, 기록을 넘어선 존중

이제 그는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네 번째 월드컵 무대를 향해 신발 끈을 조여 매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이 무대의 마지막 장이 닫히는 순간, 온몸을 불사른 우리의 캡틴이 또 한 번 뜨거운 눈물을 쏟아낼 것임을. 그것이 승리의 환호이든, 아쉬움의 작별이든, 그가 흘릴 눈물은 지난 20여 년간 한국 축구를 지탱해 온 두 영웅의 위대한 서사가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인사가 될 것이다.

왕관을 쓴 자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선대 캡틴 박지성은, 차가운 숫자가 아닌 가장 따뜻한 문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각별한 후배의 이 '간절한 여정'을 축복했다.

"나보다 월드컵 경험이 많은 선수, 그는 조언이 필요한 선수가 아니다. 그저 후회 없이, 부상 없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월드컵이 되길 바란다."

선배 캡틴의 진심 어린 응원은 지난 21일 열린 JTBC의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해설위원 기자간담회에서 전해졌다. 이 묵직한 존중의 대물림은 우리에게 스포츠가 왜 단순한 승패를 넘어 인간적인 감동을 주는 문화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팬들과 미디어가 성적이라는 압박을 가할 때, 선배 캡틴은 후배가 짊어진 짐을 걷어내며 축구 그 자체를 즐기기를 원했다. 그동안 이 둘 덕분에 밤잠을 설치며 울고 웃었던 우리 국민들 역시, 지금 손흥민이 걷는 마지막 걸음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손흥민이 2022년 12월2일 카메룬 초청 평가전에서 공르 터뜨린 뒤 카메라셔터를 누르는 동작의 골 뒤풀이 시그니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냉소 속에서 피어날 두 영웅의 북중미 서사

홍명보호를 향한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고 냉소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축구는 때로 전술판의 숫자나 행정의 논리를 뛰어넘는 위대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마이크를 잡고 해설위원으로서 후배들의 발자취를 세상에 전할 박지성과, 그라운드 위에서 가장 뜨거운 불꽃을 태울 손흥민. 한 시대를 책임졌던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써 내려갈 북중미의 성공 스토리는, 불신으로 가득 찬 한국 축구의 마지막 구원투수가 될지도 모른다.

혹여 이번 무대가 한 시대의 아름다운 작별을 고하는 페이지일지라도, 그들이 공유한 '위대한 유산(Legacy)'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손흥민의 이번 여정이 그 어떤 압박도 없이,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게 날아오르는 인생 최고의 축제가 되기를 온 마음으로 기원한다. 당신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서, 참으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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