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한국 축구의 역사적인 1000번째 A매치는 무득점 4실점 대패라는 쓰라린 '예방주사'로 남았다. 결과(0-4 패)보다 뼈아픈 것은 희망을 갖기에는 너무나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경기 내용이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8일 영국 밀턴킨스에서 열린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서 0-4로 완패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을 3개월도 안 남긴 시점,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상대인 남아공을 가상한 이번 모의고사에서 대표팀은 수비 조직력의 완전한 붕괴와 중원 장악력 부재, 골 결정력 부족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떠안게 됐다.
◆흔들린 스리백, 롱볼과 스피드에 처참히 뚫린 수비 라인
이날 가장 큰 충격을 안긴 부분은 4골이나 헌납하며 와르르 무너진 수비진이다. 홍 감독은 손흥민과 이강인 등 주전들의 컨디션 난조 속에 김민재를 축으로 김태현, 조유민을 내세운 3-4-2-1 스리백 시스템을 가동했다. 수비 안정에 초점을 맞춘 전술이었으나, 결과는 대실패였다. 홍명보호의 4실점은 지난해 10월 브라질전 0-5 패배 이후 출범 후 두 번째 최다 점수 차 패배다. 홍명보호는 2024년 출범 후 12승 5무 3패를 기록했다. 무득점 경기는 네 번째다.
최근 A매치 3경기 연속 무실점(클린시트)의 기세는 아프리카 특유의 탄력과 스피드 앞에 무기력하게 깨졌다. 전반 35분 상대의 단순한 롱볼 패스 한 번에 미들 블록이 허물어지며 선제골을 내준 것을 시작으로, 전반 추가시간에는 시몽 아딩라의 개인 돌파에 공간을 내주며 속수무책으로 두 번째 골을 허용했다. 상대의 스루패스와 공간 침투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플랜 B' 부재, 둔탁해진 허리와 끊어진 공수 연결고리
'중원의 핵' 황인범의 부상 공백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김진규와 박진섭으로 구성된 중앙 미드필더 조합은 경기 내내 공격의 템포를 살리지 못했다.
전반 45분 동안 볼 점유율(43%-57%)의 열세가 말해주듯, 중원 싸움에서 밀리다 보니 인터셉트 이후 날카로운 역습으로 전개되는 과정이 실종됐다. 유기적인 패스워크 대신 왼쪽 측면의 황희찬이나 최전방 오현규의 개인 돌파에만 의존하는 단조로운 공격 패턴이 반복됐다. 손흥민, 이강인 등 주전 공백 시 경기를 풀어갈 '플랜 B'의 부재가 뼈아프게 다가왔다.
◆3번의 골대 불운, 그리고 집중력을 잃은 뼈아픈 막판 붕괴
아쉬움 속에서도 오현규의 재발견은 작은 수확이었다. 4년 전 카타르 월드컵 당시 등번호 없는 예비 선수였던 오현규는 전반 20분 위협적인 왼발 슈팅으로 골대를 강타하는 등 후방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했다.
전반 43분 설영우의 슈팅, 후반 이강인의 슛마저 골대를 때리는 등 총 세 차례나 골대의 불운에 울어야 했다. 하지만 공격진의 분전에도 수비는 끝내 버티지 못했다. 후반 들어 손흥민, 이강인, 조규성 등 정예 멤버를 대거 투입하며 반전을 꾀했지만, 교체 투입 직후인 후반 17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집중력 저하로 세 번째 골을 내줬다. 급기야 경기 막판에는 전의를 상실한 듯 수비진이 완전히 붕괴하며 네 번째 골마저 헌납, 0-4라는 충격적인 스코어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 월드컵 D-90, 1000번째 A매치가 남긴 처절한 오답 노트
이날 경기는 1948년 런던 올림픽 멕시코전(5-3 승)으로 첫발을 뗀 한국 대표팀의 통산 1000번째 A매치였다.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영국 땅에서 치러진 경기였기에 4실점 완패의 충격은 더욱 크다.
월드컵 개막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아프리카 팀을 상대로 노출한 스리백의 구조적 허점과 세트피스 수비 불안, 그리고 경기 후반 급격히 무너지는 집중력 문제는 당장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가 됐다. 코트디부아르전의 4실점 굴욕이 월드컵 본선을 위한 가장 강력하고 처절한 '오답 노트'가 되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은 오는 4월 1일 오전 3시 45분 오스트리아와 유럽 원정 2차 평가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