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운명의 장난인가. 패배의 위기에서 '월클 스타'의 진가를 보였지만 승부차기(PS·Penalty Shootout)에서 실축하면서 숨가쁜 여정을 아쉽게 마무리했다. 한국의 간판스타 손흥민(33·LAFC)이 분데스리가의 전설 토마스 뮐러(36·밴쿠버 화이트캡스) 앞에서 집념의 멀티골을 기록했다. 미국 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컵 우승을 향한 여정에서 격돌한 외나무다리 결투에서 손흥민의 결정력이 빛났다. 하지만 승부차지 첫 번째 키커로 나와 골대를 때리면서 결국 고개를 떨궜다.
LAFC의 손흥민은 23일 오전 11시 43분(한국 시간) 캐나다 밴쿠버의 BC 플레이스에서 열린 밴쿠버 화이트캡스와 2025 MLS컵 플레이오프(PO) 서부 콘퍼런스 준결승전에서 0-2로 뒤지던 후반 대추격의 멀티골을 터뜨렸다. 0-2로 뒤지던 후반 15분 세 차례의 연속 슛으로 기어이 추격골을 터뜨린 데 이어 후반 추가시간(90+5분) '극장 동점골'을 기록하며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갔다. 연장에서도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LAFC가 3-4로 석패하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사상 첫 콘퍼런스 결승에 오른 밴쿠버는 서부 1위 샌디에이고FC(승점 63·19승 6무 9패)와 서부 4위 미네소타 유나이티드(승점 58·16승 10무 8패) 맞대결 승자와 콘퍼런스 결승(전체 4강)에서 맞대결을 벌인다. 8강부터 4강 그리고 각 콘퍼런스 챔피언이 격돌하는 MLS컵 결승은 모두 단판으로 열린다.
손흥민의 멀티골은 패배 직전의 위기 상황에서 투혼을 발휘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더 돋보였다. 0-2 상황에서 터진 1-2 추격골은 상대 골키퍼와 수비수와 혼전 상황에서 터졌다. 집중력을 발휘해 세 번째 슛으로 기어이 골을 기록했다. 첫 번째 오른발 슛이 밴쿠버 골키퍼 다카오카 요헤이에게 막히고 두 번째 오른발 슛도 수비수에 막히자 세 번째 왼발 슛으로 골문을 뚫었다.
후반 추가시간의 골은 MLS 데뷔골과 한국축구대표팀의 11월 볼리비아전에서 나온 선제골과 비슷한 위치에서 똑 같은 궤적으로 기록됐다. 상대 수비진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페널티아크 왼쪽에서 오른발로 감아찬 손흥민의 프리킥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골대 왼쪽 상단 모서리를 꿰뚫었다.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서도 존재감을 발휘했다.
밴쿠버 골키퍼 다카오카 요헤이는 전반 39분 단 한 차례의 킥으로 최전방까지 연결하는 선제골 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손흥민의 집념을 막지는 못했다. 손흥민의 골은 VAR 판독을 거친 끝에 최종 골로 판정됐다. 손흥민의 프리킥골은 더 철저히 대비했지만 넋을 놓고 당했다. 지난 8월 MLS무대에 입성한 손흥민은 이로써 정규리그 10경기 동안 9골 3도움을 기록했고, MLS컵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도 3골 1도움을 작성했다
LAFC는 7명의 선수를 대표팀에 차출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조직력에 문제점을 드러내 전반에만 2골을 내줬지만 후반 손흥민의 대활약으로 2-2를 만들고 연장전에 돌입했다.밴쿠버는 선수 퇴장으로 9명이 연장전을 치렀다. 하지만 승부차기에서 LAFC는 손흥민과 델가도가 실축하면서 3-4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흥부 듀오' 손흥민과 드니 부앙가는 A매치 이후 첫 경기에서 호흡을 맞췄으나 정상적 폼을 보여주지 못했다. 인조잔디 구장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데다 중원에서 전방으로 볼 투입이 되지 않아 두 선수 모두 전반 45분 동안 단 한 차례의 슛도 하지 못하고 2실점 과정을 지켜봤다. LAFC는 밴쿠버의 철저한 압박과 기동력에 눌려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했다. 전반 45분 동안 득점 기회를 갖지 못 했으며 단 하나의 슛에 그쳤다.
밴쿠버는 잘 준비된 조직력으로 전반을 압도하며 2-0으로 앞서나갔다. 전반 39분 골키퍼 다카오카 요헤이의 롱킥이 선제골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다카오카의 롱볼을 잡은 엠마누엘 사비가 뛰쳐나온 LAFC 골키퍼 위고 요리스 머리를 넘기는 왼발 로빙 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다카오카와 사비가 단 두 번의 터치로 긴장감이 흐르던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기세가 오른 밴쿠버는 전반 추가시간 격차를 더 벌렸다. 오른쪽 코너킥 상황에서 뮐러의 헤더슛을 요리스가 간신히 쳐내자 달려들던 수비수 마티아스 라보르다가 오른발 슛으로 연결하며 골망을 흔들었다. 두 골 모두 요리스 골키퍼의 판단력이 아쉬웠다.
서부 콘퍼런스 결승행 길목에서 만난 두 팀은 치열한 과정을 거쳐 준결승전에서 단판 승부를 펼쳤다. LAFC(승점 60·17승 9무 8패)는 서부 콘퍼런스 3위, 밴쿠버(승점 63·18승 9무 7패)는 서부 2위로 PO에 올랐다. 지난 1라운드(16강)에서 LAFC는 오스틴FC에 2-1, 4-1로 2연승을 거뒀고, 밴쿠버는 FC댈러스에 3-0 승, 1-1 무승부 이후 승부차기 4-2 승리를 거둬 서부 준결승전에 올랐다.
손흥민과 토마스 뮐러의 맞대결도 관심을 끌었다. 지난 8월 MLS에 입성한 손흥민과 뮐러는 월드 스타란 명성에 걸맞게 존재감을 뽐내며 결승행 길목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 전설 손흥민은 LAFC,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의 전설 뮐러는 밴쿠버 유니폼을 입고 우승 여정에 앞장섰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활약하며 통산 454경기 173골 101도움을 기록했고, 뮐러는 통산 756경기 250골 276도움을 달성했다. 뮐러는 뮌헨에서 최다 경기와 최다 도움을 기록했다.
손흥민은 LAFC 입단 후 정규리그 10경기 동안 9골 3도움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 8월24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치른 댈러스와의 원정 경기 중 전반 6분 상대 페널티아크 정면 부근에서 오른발 프리킥으로 터뜨린 데뷔골은 '2025 AT&T MLS 올해의 골'에 선정되기도 했다.뮐러도 밴쿠버 유니폼을 입은 뒤 정규리그 7경기 7골 3도움, MLS컵 플레이오프 2경기 1골을 기록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LAFC는 11월 A매치에 7명의 선수를 각 국가의 대표 선수로 내보낸 게 약점으로 작용했다. 손흥민을 비롯해 부앙가, 마티유 쇼이니에르, 다비드 마르티네스, 앤드류 모란, 네이선 오르다스, 티미 틸먼이 각 국가대표로 차출되면서 합동 훈련에 빠졌다. 반면 밴쿠버는 아메드와 베르할터, 켄지 카브레라, 제이든 넬슨 등 4명의 선수만 차출됐다. 지난 3일 오스틴과 2차전 후 20일 만에 경기를 한 LAFC는 조직력에 문제점을 드러낸 반면 예스페르 쇠렌센 감독이 이끄는 밴쿠버는 잘 짜여진 공수 조직력으로 경기를 장악했다.부앙가는 LAFC에서 모든 대회를 통틀어 101골을 넣었는데, 그중 밴쿠버를 상대로 9골을 넣었지만 이날 경기에선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