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치열했던 경기만큼이나 우승의 감격도 컸다. 김인성의 천금 같은 역전 헤더 결승골이 '디펜딩 챔피언' 포항의 코리아컵 최다 우승(6회)의 신기원을 열었다.
박태하 감독이 이끄는 포항 스틸러스는 30일 오후 3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챔피언 울산HD와 '2024 하나은행 코리아컵' 결승전에서 1-1로 연장에 돌입한 112분 교체멤버 김인성의 헤더 역전골과 경기 종료 직전 강현제의 쐐기골에 힘입어 3-1 역전승을 거뒀다. 이로써 포항은 2회 연속 우승과 함께 통산 6회 우승의 금자탑을 이룩하며 우승 상금 3억 원을 거머쥐었다.
부임 첫 해 코리아컵 우승을 이끈 포항 박태하 감독은 대회 '감독상'을, 동점골을 기록한 정재희는 MVP에 올랐다.
K리그 우승에 이어 '더블'을 노리던 김판곤 감독의 울산은 전반 38분 루빅손~보야지치~이청용으로 이어진 골 찬스를 주민규가 헤더 선제골로 연결하면서 1-0 승리를 거머쥐는 듯했으나 후반 24분 정재희에게 1-1 동점골을 내주고 연장 후반 7분 김인성에게 역전 결승골, 경기 종료 직전 강현제에게 쐐기골까지 내줘 2관왕 달성에 실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올 시즌 K리그 3연패 위업을 달성한 울산은 전반 10분 이후 오른쪽 윙어 이청용의 절묘한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면서 전반 38분 선제골을 기록했다. 전반 8분 이청용의 크로스와 김민혁의 헤더로 한 차례 득점 루트를 점검한 울산은 38분 루빅손~보야니치~이청용~주민규로 이어지는 그림 같은 플레이로 먼저 골망을 흔들었다.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 외곽에서 루빅손이 얼리 크로스를 날리자 포항 수비수가 헤더로 걷어냈다. 굴절된 볼을 잡은 울산 보야니치는 곧바로 오른쪽 이청용에게 연결했다. 프로 데뷔 21년차의 베테랑 이청용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골마우스로 크로스를 올리자 주민규가 뛰어들며 헤더로 골문을 뚫었다. 주민규의 헤더슛은 포항 골키퍼 윤평국의 오른손을 스치며 골망을 흔들었다.
하지만 포항의 저력은 후반에 접어들면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디펜딩 챔피언' 포항은 전반 10분까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쳤으나 이후 울산의 전방 압박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포항은 후반 들어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기동력이 살아난 포항은 후반 24분 정재희의 강력한 왼발 중거리슛이 울산 이청용의 몸에 맞고 굴절되면서 1-1 동점을 만들었다.
통산 5차례 우승(1996년·2008년·2012년·2013년·2023년)으로 K리그1 전북현대, K리그2 수원삼성과 함께 대회 최다 우승팀인 포항은 통산 6회 우승 집념이 연장 후반전에 폭발했다. 연장 후반 7분 완델손이 집념으로 골라인 부근의 볼을 살려내면서 역전 드라마의 서막을 열었다. 순간적으로 울산 수비진이 느슨한 플레이를 보인 틈을 비집고 역전에 성공했다. 김종우가 올린 크로스를 김인성이 허공에 몸을 띄운 상태에서 방향을 바꾸는 강력한 헤더로 골망을 흔들었다.
기세를 탄 포항은 연장 후반 경기 종료 직전 강현제가 울산 수비수를 앞에 두고 오른반 슛으로 쐐기골을 터뜨려 승부를 결정지었다.
울산은 이날 4-3-3 전형을 바탕으로 루빅손~주민규~이청용을 스리톱으로, 보야니치~고승범~김민혁을 미드필드진에 포진시켰다. 이명재~김영권~임종흔~윤일록이 포백을 형성했고, 전날 K리그 MVP에 오른 골키퍼 조현우가 골문을 지켰다.
박태하 감독이 지휘하는 포항은 4-4-2포메이션을 바탕으로 조르지 홍윤상을 투톱, 완델손~오베르단~한찬희~정재희를 미드필드진에 포진시켰다. 이태석~전민광~아스프로~신광훈이 포백으로 호흡을 맞췄으며 윤평국이 골문을 지켰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한국 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이번 대회는 올해부터 FA컵에서 코리아컵으로 명칭을 바꿔 지난 2월 막을 올렸다. 결승전 방식이 기존 홈 앤드 어웨이가 아닌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단판 승부를 벌이는 것으로 고정됐다. 새로운 명칭 아래 새로운 방식으로 치르는 역사적인 첫 해 결승전은 공교롭게도 K리그1 전통의 라이벌 '동해안 더비'로 치러지게 됐다.
양 팀이 결승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두 팀이 코리아컵에서 붙은 4번의 맞대결은 모두 준결승에서만 이뤄졌다. 상대 전적에서는 이날 경기 전까지 포항이 2승 1무 1패로 앞섰다. 가장 최근 맞대결인 2020년에는 울산이 승부차기 끝에 포항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동해안더비로 코리아컵 결승전이 장식된 점은 팬들만큼이나 양 팀 감독들도 승리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였다. 박태하 감독(포항)과 김판곤 감독(울산)은 선수 시절 각각 포항과 울산 소속으로 초대 대회였던 1996년 코리아컵 준결승에서 서로를 상대한 바 있다. 둘 다 준결승에서는 벤치 멤버로 출전하지는 못했다. 이때는 포항이 결승에 올라 승리해 초대 챔피언이 됐다.
포항은 파이널 라운드를 포함해 리그 마지막 6경기에서 단 한 차례의 승리도 거두지 못하며 6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지난 7월부터 6연패의 수렁에 빠졌던 기간까지 넓혀보면 14경기 2승 3무 9패로, 전반기에 리그 우승 경쟁을 펼쳤던 분위기를 고려하면 확연히 꺾인 수치다. 그럼에도 지난해 정상에 오름으로써 코리아컵 역대 최다 우승 공동 1위(전북현대, 수원삼성과 5회)에 올라있는 면모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반면 울산은 ‘리그 3연패’라는 대업을 쌓은 기세를 이어가 2017년 이후 7년 만에 코리아컵까지 정상을 노려 더블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리그에서의 마지막 패배는 지난 8월 수원FC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후반기에 저력을 과시했다. 특히 포항을 상대로 올 시즌 리그 맞대결 3승 1패 우위를 점한 것도 고무적 요소로 작용했다.
이번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포항은 75대의 관광버스를 대절해 팬들을 수송했다. 이에 맞서 울산은 19대의 관광버스에 더해 KTX 열차 300여 석을 사전 예매하여 팬들을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이동시켰다. 또한 포항과 울산 구단의 모기업 고위 관계자를 비롯한 임직원 2000여 명이 참석했다. 본부석에서는 내년 1월 차기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이 출마 선언 후 첫 만남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