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축구] 신태용 '명장'을 만든 황선홍의 '패착'


26일 2024 AFC U23 아시안컵 8강전 한국, 인도네시아에 발목
황선홍 감독, 신태용 감독 의식한 소극적 전략 '자충수'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을 이끈 황선홍 감독이 26일 2024 파리 올림픽 최종예선을 겸한 AFC U23 아시안컵 8강전에서 후반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하고 있다. 한국은 연장까지 2-2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10-11로 져 올림픽 10회 연속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도하=KFA

'세상은 요지경'처럼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많은 곳이 스포츠 세계, 특히 축구계다. 오죽하면 '공은 둥글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어디로 구를지 모르는 공처럼 진행 방향을 전혀 알 수 없고, '각본 없는 드라마'란 수식어가 자주 인용되는 곳이 바로 축구 세상이다. 때로는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또 때로는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는 축구계의 주요 이슈와 화제들을 오랫동안 축구계와 함께한 기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조명한다.<편집자 주>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이럴 수도 있구나. 아무리 축구가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는 하지만 설마 그 의외성의 제물이 한국이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오는 7월 2024 파리 올림픽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세계 축구사에 유례가 없는 올림픽 10회 연속 본선 진출 기록을 눈앞에 두고 짐을 싸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불운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졸전이고 참사였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도네시아가 한국을 꺾고 4강에 오르리란 것을 전망할 수 있었을까.

개최국 카타르보다 수월할 것으로 여겼던 인도네시아와 8강전에서 승부차기 패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도하=KFA

공교롭게도 올해 들어서는 '도하의 참사'를 두 번이나 겪게 된다. 지난 1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A대표팀이 요르단과 2023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에서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0-2 참패를 당하더니 26일 새벽에는 황선홍 감독이 지휘하는 올림픽축구대표팀이 인도네시아에 발목이 잡혀 8강전에서 탈락하는, 정말 믿어지지 않는 참사를 목도했다. 연장 120분 동안 2-2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10-11로 패함으로써 지난 1984년 LA올림픽 이후 40년 만에 올림픽 무대에 오르지 못 하는 참담한 결과가 빚어졌다.

클린스만호의 참패나 황선홍호의 참사 모두 한국의 승리가 기대됐던 경기에서 어이 없는 용병술과 경기력을 보인 내부 문제로 무너졌다는 점에서 평행이론을 떠올리게 된다. 요르단과 리턴 매치는 조별리그에서 이미 승리했던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경기 전날 선수들 간의 내부 분열과 감독의 지도력 한계로 자멸한 측면이 컸다. 황선홍호의 인도네시아전 패배 역시 객관적 전력의 우세를 살리지 못 하고 선수 선발과 기용, 전략에서 모두 상대 벤치와 수싸움을 펼치다 밀렸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인도네시아를 사상 첫 4강으로 이끈 신태용 감독은 황선홍 감독과의 벤치 대결에서 이긴 후 향후 계획에 대한 질문에 한국대표팀을 맡는 것이라고 밝혔다./신태용 인스타그램

인도네시아가 어쩌다 행운의 골로 앞서나가다 승부차기에서 이겼다면 차라리 마음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는 경기 내용 면에서도 한국을 앞섰다. 전반 볼 점유율 52%-48%로 앞선 데다 슈팅 수에서도 6-1, 유효 슈팅 3-1로 우위를 보였다. 인도네시아가 결정력만 좀 더 갖췄다면 전반에 이미 3~4골 차로 벌어졌을 수도 있는 경기였다. 이 같은 경기 흐름은 연장전까지 이어졌으며 후반 25분 이영준의 퇴장 이후에는 오히려 지키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이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수비 축구를 하며 승부차기로 끌고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장면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죽음의 조'라는 B조 최종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로테이션 멤버를 가동하며 1-0 승리를 거뒀을 때는 우승도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조 1위 확정으로 인도네시아를 8강에서 만나면 4강 진출이 보다 용이할 것으로 전망됐고, 4강에만 오르면 3.5장의 파리 올림픽 티켓을 거의 손에 넣기 때문이었다. 황선홍 감독 또한 가장 중요한 8강전을 이기기 위해 한일전에서 주전 선수들을 아낀 것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이상했다. 스타팅 멤버를 받아본 순간, '어 이영준 정상빈 김정훈이 빠졌네!'란 생각에 어리둥절했다. 이영준은 바로 조별리그 2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모처럼 한국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각광을 받고 있었고, 정상빈은 황선홍호의 에이스였으며 김정훈 또한 주전 골키퍼였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전반전을 수비력으로 버틴 후 후반전 주전 투입의 대공세로 승부를 결정짓겠다는 전략이었으나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4강 진출을 놓고 치열한 머리싸움을 펼친 한국의 황선홍 감독(오른쪽)과 인도네시아의 신태용 감독. 한국대표팀 사령탑 후보로 꼽힌 두 지도자의 명암이 2024 AFC U23 8강전을 기점으로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도하=KFA(홍석균)

왜 우리가 굳이 수세적 경기를 펼쳐야 할까. 아니 세계의 어느 강팀이 약팀을 상대로 전반 수비적 경기 운영을 한단 말인가. 현대축구의 흐름은 전반 초반부터 강한 전방 압박으로 상대를 몰아 경기를 유리하게 이끄는 게 트렌드인데, 언제 적 후반 승부란 말인가. 인도네시아가 체력적으로 약하다는 것도 옛말인데, 너무 상대를 모르는 것 아닌가.

장고 끝에 악수(惡手)라더니 승리 전략에 골몰하다 오히려 '자충수'인 패착을 둔 것으로 보였다. 주전 센터백이 아닌 자원들로 스리백 전술을 들고 나온 것이나, 상대와 정면 대결을 펼치지 않고 오히려 기를 살려준 '전반 수비-후반 공격' 전략은 지나치게 상대를 높게 평가했거나 상대 벤치의 신태용 감독을 과잉 의식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가 예전과 달리 조직적이고 유기적 움직임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이 풀 스쿼드로 정상적 대결을 펼쳤다면 이기지 못 할 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같은 의문은 경기 내내 지속됐으며 호주의 주심 숀 에반스 심판까지 한국에 불리한 장면을 잇따라 집어내 더욱 경기를 어렸게 했다.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 투입된 이영준은 상대 선수의 신경전에 말려 슈팅 한 번 제대로 때려보지 못하고 퇴장당했고, 설상가상으로 황선홍 감독 또한 심판 판정에 어필하다 퇴장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24 AFC U 23 아시안컵 8강전 기록./AFC

경기는 흐름이다. 일단 공격을 하면 슛까지 하고 마무리를 해야 안정된 수비진영을 갖추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역습을 허용하게 된다. 또한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의 자세와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이를 컨트롤하고 끌어주는 것이 지도자다. 한국의 월드컵 4강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꿈에 그리던 16강 진출을 확정하고 난 뒤 목표를 다 이룬 것처럼 들떠 있을 때 "나는 아직 배고프다"며 채찍질을 한 것도 승리에 대한 동기부여를 확실히 하기 위함이다. 모든 명장의 공통적 특징이 선수 심리에 정통하고 이를 잘 다룬다는 점이다. 감독이 상대를 두려워하면 선수가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불운으로 참사를 덮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대목이 많았다. 유럽파 선수 3명(배준호 양현준 김지수)의 차출 불발이 어려움으로 작용했다고 하지만 이 또한 구차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이들이 본선에 합류했다면 전체 경기력은 높아졌겠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지난 2년 6개월여 시간 동안 항상 함께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선수 구성과 대체 선수 발탁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센터백 자원을 3명으로 채워 더블 스쿼드를 만들지 못 한 것도 수비의 공백을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주전 센터벡 서명관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으며 변준수는 경고 누적으로 한일전에 결장하기도 했다. 결국 센터 수비라인에서 탈이 난 것이다.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대비하지 못 한 선수 구성의 실패다.

결과적으로 인도네시아전에서 1-2로 실점하는 장면에서는 전문 센터백이 아닌 이강희와 골키퍼 백종범의 커뮤니케이션 실수로 볼을 빼앗겨 라파엘 스트라윅에게 두 번째 골을 내주고 말았다. 2021년 9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더불어 이번 파리 올림픽을 준비하는 U-23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황선홍 감독은 2년 6개월여의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선수들을 제대로 조련하지 못 하고 올림픽 본선행에 실패하며 지도자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긴 셈이다.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중국과 B조 2차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한 이영준(아래)은 인도네시아와 8강전 후반 교체 투입된 지 25분 만에 퇴장당했다./도하=KFA

이는 '팔색조' 전술을 사용하며 '여우'란 별명을 얻은 신태용 감독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인도네시아 올림픽팀과 대표팀 감독을 겸하고 있는 신태용 감독은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사상 첫 16강 진출을 이룩한 데 이어 U23 아시안컵에서도 사상 첫 8강과 4강을 연달아 이룩해 '국가 영웅'으로 칭송되고 있다. 카타르를 꺾고 4강에 오른 이웃 일본 역시 신태용 감독을 '아시아의 명장'으로 부르며 혹시라도 올림픽 티켓 경쟁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인도네시아를 경계할 정도다.

사실 이번 대결을 앞두고는 한국의 황선홍 감독과 인도네시아의 신태용 감독 가운데 누가 더 한국인 최고 지도자에 부합할 것인가로 관심을 모았다. 현재 공석인 한국의 국가대표팀 사령탑의 후보로는 한국인과 외국인 11명이 올라있다. 오는 5월 발표되는 국가대표 감독 최종 후보군은 한국인 4명과 외국인 7명으로 좁혀진 상태다. 황선홍 감독이나 신태용 감독 모두 한국의 대표적 지도자로 커리어를 쌓아왔고 8강전 이전까지 차기 대표팀 감독 후보로도 꼽혀왔다.

하지만 황선홍 감독은 지도자 검증의 가장 중요한 길목에서 경쟁 상대를 오히려 이롭게 하는 '패착'을 둠으로써 신태용 감독의 명성이 아시아를 뒤덮게 하는데 크게 일조한 셈이 됐다. 신태용 감독은 공개적으로 한국전을 마친 후 한국대표팀 감독에 대한 야망을 드러냈다.

황선홍호의 에이스 정상빈이 후반 교체 멤버로 투입돼 2-2 동점골의 수훈을 세운 뒤 기뻐하고 있다. 전반부터 뛰었다면 어땠을까./도하=KFA

경기 직후, 한국 취재진을 만난 신태용 감독은 "한국이 (올림픽) 10회 연속 출전하게 되면 앞으로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황선홍 감독님이 만들어 냈으면 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같이 8강에서 만나게 됐는데 저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그런 기록을 제가 깼다는 것이 너무 힘들고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고 기쁘고도 미안한 심경을 토로했다. 또 향후 계획에 대해선 "우선 인도네시아가 월드컵도 진출할 수 있도록 꿈을 크게 가져보겠다. 마지막 꿈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한국 대표팀에서 마지막 도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이제 1956년 멜버른 대회 이후 68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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