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실수해도 동료들이 있어. 동료들, 형제들, 가족들이 있다고. 그거 믿고 가서 쟤네 조용히 시켜주자. 쟤네 4만명, 5만명? 오라 그래. 우리가 유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건 운동장 안이니까 들어가서 뿌시자고(부수자고.). 화이팅!"(주장 손흥민)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지난달 31일 2023 카타르 아시안컵 16강전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와 연장 120분의 피 말리는 혈투 끝에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한 데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경기 전부터 끌어올린 선수들의 다부진 결의와 투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31일 대한축구협회가 인사이드캠을 통해 공개한 사우디와 16강전의 막전막후를 보면 선수들이 '캡틴' 손흥민을 중심으로 얼마나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보게 된다. 손흥민은 훈련장에서 "웃으면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항상 생각하자"고 선수들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4만 사우디 관중이 들어찬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 라커룸에서 손흥민은 다시 한번 선수들의 투지를 자극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 자세를 주문했다. 바로 옆의 이강인을 비롯한 모든 선수단이 스크럼을 짜고 전의를 다지는 가운데 손흥민은 "실수해도 동료들이 있다. 동료들, 형제들, 가족들이 있다고. 그거 믿고 가서 쟤네 조용히 시켜주자"며 "쟤네 4만명, 5만명? 오라 그래. 우리가 유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건 운동장 안이니까 들어가서 뿌시자고(부수자고)"라며 투지를 일깨웠다.
사우디 사령탑인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의 '조기 퇴근'을 시킨 한국선수들의 끈질긴 승부욕과 투혼은 바로 이런 데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한국 선수들은 후반 시작하자마자 선제골을 내주고 후반 추가 시간 10분 가운데 9분이 흘러갈 때까지 골을 기록하지 못 했으나 경기 종료 1분을 남기고 드라마 같은 동점골을 터뜨렸다.
폭풍우 같은 슛을 퍼붓고도 사우디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골문을 열지 못하던 한국은 설영우의 헤더 패스를 조규성이 극적으로 골문 안에 밀어넣으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연장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돌입한 승부차기에서는 골키퍼 조현우가 두 차례 선방쇼를 펼치며 4-2 승리를 끌어냈다. 승부차기에 앞서서는 클린스만 감독까지 참여한 스크럼을 통해 필승 의지를 다졌으며 결국 한국선수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해 한발짝 나아갔다.
조규성은 퇴근길 카메라를 향해 "아쉬운 게 더 크다. 죄송하다. 더 분발하겠다"고 말하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눈부신 선방으로 한국의 8강행을 이끈 골키퍼 조현우는 "선수들 최고다. 부담감이 많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촬영자가 ‘왜 눈물을 흘렸냐’고 묻자 "너무 좋아가지고, 너무 감동이고 지금도 울컥한다"고 했다.
동점골을 어시스트한 설영우는 특유의 활짝 웃음과 함께 두 손으로 승리의 V를 그려보였으며 정우영은 "컴온" "컴온"이라며 누구든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황인범은 "모든 선수들이 잘했지만 오늘은 국민분들이 (조)규성이와 (조)현우 형을 많이 칭찬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황희찬은 "너무 뿌듯하고 오늘 잘 쉬고 다음 목표를 위해 잘 나가다 보면 좋은 결과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충분히 저희 팀은 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도 응원해달라. 선수들도 좋은 모습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할 테니 마지막까지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했다.
한국은 오는 3일 오전 0시 30분 호주와 8강전을 펼쳐 4강 진출 여부를 판가름한다. 한국으로선 지난 2015년 호주 대회에서 당시 안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이끄는 호주와 결승에서 1-2로 아쉽게 진 '리벤지 매치'다. 당시 손흥민은 0-1로 뒤지던 후반 45분 동점골을 넣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갔으나 결국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