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상빈 기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카타르에서 여정이 거대한 브라질 산맥을 넘지 못하고 멈췄습니다. 16강에서 아쉬움을 안고 퇴장하지만 브라질전은 한국 축구에 희망을 쏜 경기였습니다.
한국은 6일 오전 4시(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974 스타디움에서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16강전을 치렀습니다. 상대는 피파 랭킹 1위 브라질.
달걀로 바위 치기에 가까운 전력 차는 휘슬이 울리자 더욱 더 잔인하게 한국을 괴롭혔습니다. 전반전 시작 36분 만에 비니시우스 주니오르(22·레알 마드리드), 네이마르(30·파리 생제르맹), 히샬리송(25·토트넘 홋스퍼), 루카스 파케타(25·웨스트햄 UTD)에게 연거푸 실점하면서 0-4까지 스코어가 벌어졌습니다.
사실상 패배 선고와 같던 브라질 네 번째 골이 들어간 뒤 한국엔 일말의 희망도 없는 것처럼 비쳤습니다. 올 6월 서울에서 치른 브라질과 평가전(1-5 패)이 오버랩됐습니다. 이대로 끝나면 힘겹게 이뤄낸 사상 두 번째 원정 16강이 무색해질 게 뻔했습니다.
절망적이던 한국을 깨운 건 미드필더 백승호(25·전북 현대)였습니다. 후반 20분 황인범(26·올림피아코스)을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은 백승호는 11분 만에 그림 같은 왼발 중거리포로 만회골을 안겼습니다. 네 골 차 영패를 모면하게 하는 귀중한 골입니다.
비록 경기는 한국의 1-4 완패로 막을 내렸지만 백승호의 득점은 분명 가치가 있습니다. 한국의 카타르 월드컵 마지막 골이면서 세대교체 시작을 알리는 골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김영권(32·울산 현대), 김진수(30·전북), 손흥민(30·토트넘), 정우영(33·알사드), 황의조(30·올림피아코스) 등 서른 줄 넘은 선수가 여전히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어 세대교체가 시급했습니다. 월드컵 전까지 각 포지션에 마땅한 대체 자원이 없다는 볼멘소리도 새어 나왔습니다.
월드컵 네 경기를 치르면서 한국은 미래를 밝혔습니다. 우려와 달리 젊은 선수들이 제 몫을 해내며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한국은 총 다섯 골을 넣었습니다. 조별리그 포르투갈전(2-1 승) 김영권을 제외하면 모두 20대 중반 선수가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조규성(24·전북)이 두 골, 황희찬(26·울버햄턴)과 백승호가 한 골씩 넣었습니다.
대표팀 막내 이강인(21·마요르카)은 가나전(2-3 패)에서 조규성의 추격골을 도왔고, 브라질전에선 백승호의 만회골 시발점인 프리킥을 찼습니다. 특히 백승호는 한국의 월드컵 마지막 여정에서 득점포를 가동하며 세대교체 쐐기를 박았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더 이상 베테랑들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백승호가 보여줬습니다.
2010년대에 이르러 한국 축구엔 '양박쌍용' '런던 세대'로 불리는 중추적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워낙 탄탄한 입지를 다진 데다 그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경쟁자도 나타나지 않아 대표팀은 서서히 늙어갔습니다. 그 결과 2014 브라질 월드컵,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란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2020년대로 접어들면서 재능 있는 선수들이 조금씩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강인, 정우영(23·SC 프라이부르크) 등 해외 리그에서 주전급으로 활약하는 신예도 등장했습니다. 조규성은 2022시즌 31경기 17골로 K리그1 득점왕을 거머쥐며 토종 골잡이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다 파울루 벤투(52) 감독의 선택을 받아 월드컵을 누볐습니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2010년대를 이끈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 태생 베테랑들이 자연스럽게 물러나도 빈자리를 채울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태생 루키들이 자기 차례를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걸 확인한 무대가 이번 카타르 월드컵입니다. 한국 축구 새 시대를 열어갈 주춧돌이 카타르에서 세워졌습니다. 백승호의 골이 그 끝과 시작을 장식했습니다. 그래서 더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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