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투지도, 기술도, 전술도 모두 밀렸다. 전방압박에 약한 벤투호의 고질적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 한일전, 지난해 0-3 패배의 수모를 설욕하며 대회 4연패를 달성하려던 목표는 결국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27일 오후 7시20분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 2022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 최종 3차전에서 대회 4연패이자 통산 6회 우승을 노렸으나 상대의 적극적인 전방 압박을 풀어내지 못 하고 공격다운 공격을 해보지도 못 한채 허무하게 0-3으로 패하는 수모을 당했다. 볼 점유율에서는 앞서면서도 후방 빌드업을 하다 상대에게 볼을 뺏겨 역습을 자초하는 등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열세를 면치 못한 끝에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중국전에서 0-0 무승부에 그쳐 위기에 몰렸던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전방부터 적극적인 압박으로 '숙명의 라이벌' 한국을 꺾고 지난 2013년 우승 이후 9년 만에 정상을 탈환하며 기사회생했다. 한국은 일본의 압박 전략과 적극적인 파울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며 우승과 함께 지난해 3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친선전 0-3 완패의 아픔을 씻기는커녕 상처만 더 깊어졌다.
이로써 한국은 역대 한일전에서 42승 23무 16패로 우위를 이어갔으나 2000년대 이후 전적을 놓고 보면 6승 7무 6패로 역전 위기에 몰렸다. 문제는 가장 최근 맞대결에서 잇따라 완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3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친선전에선 0-3으로 졌다. 1974년 한일 정기전(1-4), 2011년 한일 친선경기(0-3) 이후 세 번째 3점 차 패배였다. 지난해 6월 16세 이하(U-16) 대표팀은 일본을 만나 0-3으로 패배했다. 이후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U-23) 대표팀이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에서 일본을 상대로 또 0-3으로 졌다. 이날 경기까지 최근 벌어진 연령별 한일전 4차례 대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잇따라 0-3 패배를 기록하는 참사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축구의 상징인 투지도, 벤치의 전략도 모두 부재했다. 벤투 감독은 중국(3-0 승), 홍콩(3-0 승)을 연파하며 승점 6으로 중국과 2차전에서 0-0 무승부에 그친 2위 일본(승점 4)과 비기기만 해도 대회 4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으나 미드필드와 수비에서 일본의 적극적인 전방 압박을 풀어내지 못 하며 고전하다 후반 4분 일본 왼쪽 윙포워드 소마 유키에게 헤더 선제골을 허용했다. 전반 점유율은 55-45%로 앞섰으나 슈팅수에서는 3-8로 뒤졌고, 파울에서조차 4-8로 열세였다. 과거 한국축구는 '아시아의 호랑이'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투지에서는 일본에 앞섰으나 최근에는 이마저도 밀리고 있다.
후반 18분에는 사사키 쇼에게 헤더 추가골을 내준 데 이어 27분에서 마치노 슈토에게 0-3 쐐기골을 내줬다.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키가 큰 이점도 살리지 못하고 헤더로만 두 골을 내주고 마치노에게 허용한 추가골은 일본의 부분전술에 속절없이 수비진이 농락당한 치명타였다. 벤투 감독은 홍콩과 지난 2차전에서 로테이션 멤버를 가동하며 일본전에 대비했으나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어처구니 없는 패배를 기록했다. 3실점 모두 내용과 결과가 좋지 않아 더 쓰라렸다.
한국은 2003년 출범한 동아시안컵 남자부에서 역대 최다인 5차례 우승을 경험했다. 또 2015년 대회부터 부산에서 열린 2019년 대회까지 3연패를 기록한 가운데 81번째 한일전에서 기분 좋은 우승을 기대했으나 또 다시 한일전 패배의 수모를 되풀이 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선수 개인기보다는 팀 조직력을 더 우선시 하는 벤투 감독은 한일전 승리를 위해 최전방 공격수 조규성(김천)을 원톱으로 놓고 공격 2선에 나상호(서울) 권창훈(김천) 엄원상(울산), 수비형 미드필더에 김진규(전북) 권경원(감바 오사카), 포백진에 김진수(전북) 박지수(김천) 조유민(대전) 김문환(전북), 골키퍼에 조현우(울산)를 내세웠다. 황인범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센터백 권경원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리고 권창훈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했으나 조규성은 고립되고 빌드업은 '속 빈 강정'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