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인가. 골운도 따르지 않고, 벤치 대결에서도 밀렸다. 공격은 풀리지 않고 오히려 역습의 빌미가 됐다. 결국 한국의 빌드업을 중앙에서 철저히 분석하고 봉쇄한 아랍에미리트(UAE) 감독의 전략적 승리였다. 아랍에미리트는 최종전에서 한국이란 대어를 잡으며 아시아 지역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29일 오후 10시 45분(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알막툼 스타디움에서 열린 UAE와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최종 10차전에서 주전 공격 트리오인 손흥민 황의조 황희찬을 전방에 포진시키는 4-1-4-1 전형으로 나섰으나 상대 선수들의 지능적 공수플레이에 막혀 8-2의 압도적 볼 점유율 우세에도 불구하고 후반 9분 하렙 압둘라에게 선제 결승골을 내줘 0-1로 지고 말았다.
이로써 한국은 월드컵 10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이룩하고도 최종예선 최종전에서 첫 패배를 기록하며 7승2무1패 승점 23점으로 조 2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지난 24일 11년 만에 이란을 2-0으로 잡으며 A조 1위로 올라선 한국은 이날 이란이 레바논과 홈경기에서 2-0 완승을 거둠으로써 순위가 바뀌게 됐다. 이란은 8승1무1패 승점 25로 한국을 끌어내렸다. UAE는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다투던 이라크를 제치고 3승3무4패 승점 12로 A조 3위를 확정, 아시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최종전에서 극적 승부를 연출한 UAE의 로돌포 아우아바레나 감독은 골키퍼 칼리드 에이사, 결승골의 주인공 하렙 압둘라와 함께 영웅으로 등장했다. UAE는 지난해 12월 아랍컵에서 카타르에 0-5로 참패한 데 이어 지난달 1일 최종예선 이란 원정에서도 0-1로 져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감독(네덜란드)을 경질한 UAE는 ‘소방수’ 로돌포 아루아바레나 감독(47·아르헨티나)을 선임, 본선 진출의 희망을 이어갔다.
아루아바레나 감독은 2016년부터 알와슬(UAE), 알라이얀(카타르), 알아흘리(UAE), 피라미드FC(이집트) 감독직을 거치면서 중동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평가받았으나 지난 25일 이라크 원정에서 0-1로 져 승점 1차 추격을 허용하며 데뷔전 실망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과 최종전에서 미드필드에 5명의 선수를 배치하는 기형적 4-5-1 포메이션 전략으로 한국의 공격을 차단하고 성공적 역습을 끌어내면서 '기적의 승리'를 끌어냈다.
골키펴 에이사는 한국의 집요한 공격을 펀칭과 안정된 수비력으로 철저히 방어했으며 하렙 압둘라는 한 차례의 득점 기회를 날카로운 슛으로 살려 한국 공격수들과 대조를 보였다. 정신력에서 UAE가 앞섰다.
아루아바레나 감독과 벤치 대결을 펼친 벤투 감독은 후반 남태희와 조영욱을 잇따라 투입하며 반전을 노렸으나 기울어진 경기장 분위기를 뒤집지는 못 했다. 이미 월드컵 10회 연속 본선 진출을 확정한 가운데 최종전에 나선 벤투 감독은 지난 24일 11년 만에 승리(2-0)를 거둔 이란전 스타팅 멤버에서 골키퍼 김승규만 조현우로 바꾼 선발 멤버로 나섰다. 최전방에 황의조를 세우고 좌우날개에 손흥민과 황희찬, 공격형 미드필더에 이재성과 권창훈, 수비형 미드필더에 정우영, 포백진에 김진수~김영권~김민재~김태환, 골키퍼에 조현우를 내세우는 4-1-4-1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전반부터 기대에 못 미쳤다. 이라크와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걸린 B조 3위 다툼을 벌인 홈팀 UAE는 중원 수비를 탄탄히 한 4-5-1전형으로 한국의 공격을 차단하고 역습에 나서는 전략으로 전반을 0-0으로 마쳤다. 한국은 전반 71-29%의 압도적 볼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수비 진영에서의 패스 미스와 공격 진영에서의 불안정한 패스로 제대로된 유효 슛을 단 하나도 기록하지 못 했다. 전반 슈팅 수는 5-3으로 앞섰으나 유효슈팅에서는 오히려 0-1로 뒤졌다.
한국은 후반 9분 역습을 허용하며 선제골을 내줬다. 전반 내내 선수들의 빌드업 과정에서 패스 미스로 역습을 자주 내주던 벤투호는 역시 공격 전개에서 상대에게 볼을 빼앗긴 뒤 하렙 압둘라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공격하다가 역습을 허용하면서 중앙 수비수인 김민재와 김영광이 사력을 다해 쫓아갔으나 압툴라의 왼발슛을 막지 못했다.
24일 이란전 2-0 승리 후 곧바로 중동 원정에 나선 한국 선수들은 대체로 몸이 무거웠고, 패스 실수가 많았다. 중앙 수비에서도 실수가 잦았으며 공격을 연결하다가 뺏기는 경우가 위기를 초래했다. 전반에는 양 팀 모두 한 차례씩 VAR 판독이 있었으나 페널티킥으로 연결되지은 않았다. 한국은 골운까지 따르지 않았다.
0-1로 끌려가던 한국은 후반 14분 김태환의 크로스를 황의조가 날카로윤 헤더슛으로 연결했으나 아쉽게도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무산됐다. 황의조의 헤더까지 한국의 슛은 두 차례나 상대 골대를 때리는 불운을 겪었다. 경기가 묘하게 꼬이면서 골운까지 따르지 않자 벤투 감독은 후반 16분 권창훈을 골지역에서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는 남태희로 교체하며 공격에 변화를 꾀했다.
전반에는 황희찬의 플레이가 빛났다. UAE의 탄탄한 '두 줄 수비'를 흔들기 위해 손흥민과 위치를 바꾸며 왼쪽에서 주로 공격 기회를 엿본 황희찬은 특유의 황소 같은 저돌적 돌파로 위협적 장면을 잇따라 만들어냈다. 황희찬은 0-0의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던 전반 42분 손흥민의 오른쪽 코너킥을 UAE 골키퍼 칼리드 에이사가 펀칭으로 쳐내자 페널티아크 정면에서 제기를 차듯 오른발 슛을 날려 골대를 때렸다. 양 팀 선수 모두가 공수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온 슛이라 골로 연결되는 듯했으나 아쉽게 오른쪽 크로스바를 때리고 말았다. UAE 골키퍼 에이사는 황희찬의 슛을 뒤늦게 처리하다 골포스트에 허리를 다쳐 한동안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A조 3위를 확정한 UAE는 B조 3위 호주와 아시아 플레이오프(PO)를 치러 승리하면 남미 예선 5위와 대륙간 PO에서 맞붙어 월드컵 본선 진출에 도전할 수 있다. 이날 이라크는 시리아와 1-1로 비겼다.
skp2002@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