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참아"…월드컵 VAR 일관성 문제 수면 위로
[더팩트 | 이한림 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에 도입된 VAR(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거듭 '핫 이슈'가 되고 있다. VAR 시도 결정권을 갖은 주심의 판정이 공교롭게도 유럽 국가나 강팀의 혜택으로 이어지는 묘한(?)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VAR은 월드컵 도입 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주심의 재량으로 VAR 시도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편파 판정이 이어질 수 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VAR 판독센터에서 주심에게 오심이 의심되는 상황을 신호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VAR 시행 최종 결정권자는 주심이다.
결국 일관성의 문제가 지적된다. 해당 경기 주심으로 배정된 월드컵 심판진들은 규정을 토대로 판정을 내린다. 그러나 그들의 성향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VAR 판단 여부도 상대적일 수 있다. 주심이 90분 안에 양 팀에게 엇갈린 판정을 하게 되면 불리한 판정을 받은 팀은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신태용호도 VAR과 관련되어 불운을 겪었다. 한국은 이러한 상황을 지금까지 치른 두 경기에서 모두 경험했다.
한국은 조별리그 F조 1차전 스웨덴전에서 후반 20분 김민우(상주)가 스웨덴 공격수에게 가한 태클로 페널티킥이 주어지며 실점했다. 주심은 김민우의 태클이 나온 직후 휘슬을 불지 않았다. 하지만 VAR을 확인 후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이전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상황이 VAR로 뒤집혔다. 정확한 판정이었지만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순 없다.
추격전을 벌이던 경기 막판에는 VAR의 외면에 땅을 쳤다. 우리 페널티 박스 안에서 공겨을 하다 공이 스웨덴 수비수의 팔에 맞는 장면이 나왔다. 한국 선수들은 김민우의 태클 때 스웨덴 선수들의 반응처럼 두 손을 하늘로 올리고 심판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주심은 외면하고 VAR을 시도하지 않았다. 주심의 재량으로 경기를 그대로 진행했지만, 페널티킥과 연관된 결정적인 상황에서 VAR 시도조차 없었다는 부분에 적지않은 논란이 일어났다.
신태용호는 멕시코와 조별리그 2차전에서도 VAR 불운에 울었다. 한국은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21분 볼을 간수하던 기성용이 멕시코 선수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명백한 파울이었다. 하지만 주심은 휘슬을 입에 물지 않았고, 멕시코의 역습에 무너지며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웨스트햄)에게 추가골을 얻어맞았다. VAR 적용 경우인 득점 상황이었지만 결국 아무렇지도 않은 듯 멕시코의 추가골이 인정되어 버렸다.
26일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B조 최종전 스페인-모로코 경기와 이란-포르투갈 경기에서도 VAR로 인해 양 팀 희비가 갈렸다. 운명의 장난일까. 이번에도 수혜를 입은 쪽은 유럽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이다.
스페인-모로코 경기에서는 후반 35분 모로코의 하킴 지예흐(아약스)의 결정적인 슈팅이 스페인 수비수 헤라르드 피케(바르셀로나 FC)의 손에 맞고 굴절됐다. 모로코 선수들은 강력하게 두 손을 들고 항의했으나 주심은 경기를 속행했다.
1-2로 뒤져 패색이 짙던 스페인은 후반 추가 시간에 이아고 아스파스(셀타 비고)가 감각적인 힐킥으로 동점골을 넣었으나 오프사이드 반칙이 선언됐다. 제 2부심의 깃발을 확인한 아스파스는 골 세레모니 도중 머리를 부여잡고 좌절했다. 그런데 주심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VAR을 확인했다. VAR을 통해 아스파스의 위치가 온사이드로 번복되면서 결국 스페인의 동점골이 인정됐고, 스페인은 아스파스의 골에 힘입어 B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VAR로도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모로코의 최종 두 번째 수비수와 아스파스의 위치가 애매했지만, 판정이 번복되며 스페인이 기사회생했다.
20년 만에 월드컵을 찾은 모로코는 첫 승이 VAR로 날아가자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경기가 끝나고도 심판에게 계속 항의하며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했다. 한 선수는 피케에게 달려가 따지기도 했다. 또한 모로코는 조별리그 2차전 포르투갈과 경기에서도 포르투갈 수비수 페페(베식타쉬)의 핸드볼 반칙이 VAR로 선언되지 않은 것에 대해도 항의했다. 강팀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펼쳤으나 유난히 VAR의 '쓴맛'을 본 모로코다.
같은 시간 열린 이란-포르투갈 경기에서도 3번의 VAR 판정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첫번째 VAR은 후반 8분 포르투갈이 이란에 1-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가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이란 수비수와 경합을 벌이다 넘어졌으나 주심은 페널티킥을 판정하지 않았다. 호날두는 거칠 게 항의했고 잠시 후 VAR이 시도됐다. 이후 페널티킥으로 판정이 번복됐다. 호날두는 페널티킥을 놓쳤다.
두번째 VAR은 후반 36분 또 호날두에게서 나왔다. 이란의 모르테자 푸릴라간지(알 사드)는 호날두와 몸싸움 도중 쓰러졌다. 호날두가 어깨를 먼저 집어넣기 위해 팔을 쓰다가 푸릴라간지의 턱을 가격해버린 것이다. 주심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경기장에 그대로 쓰러진 푸릴라간지가 일어나지 않자 그제서야 경기가 중단됐다. 주심은 이내 VAR을 확인했고 호날두에게 옐로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을 포함한 모든 이란 선수들은 주심에게 왜 레드 카드가 아니냐는 제스쳐로 항의했다. 만약 이때 호날두가 퇴장을 받았다면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이란-포르투갈 경기의 마지막 VAR은 이란이 경기 종료 직전 반대로 페널티킥을 얻은 판정이었다. 키커로 나선 카림 안사리파드(올림피아코스)가 골로 연결했다. 하지만 경기는 1-1로 끝나며 이란의 탈락의 고배를 들었다. 이란의 간판 스타 사드다르 아즈문(루빈 카잔)은 경기 직후 눈물을 터뜨리며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포르투갈에 승리를 거뒀다면 16강에 올라갈 수 있었던 이란은 VAR 판정이 아쉽기만 했다.
잉글랜드 BBC는 26일 열린 두 경기가 끝난 뒤 "VAR이 모든 걸 바꿨다"고 평가했다. 한국이 치른 경기나 이날 조별리그 B조 경기 외에도 앞서 VAR 편파 판정은 논란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조별리그 최종전은 16강 진출과 탈락을 가린다. 차라리 90분 내내 모든 판정을 VAR로 하거나 아니면 VAR을 사용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만 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정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VAR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