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심재희 기자] 신태용호가 다음 월드컵 개최국 러시아와 평가전에서 패배의 쓴잔을 들었다. 전반전 막판과 후반전 초반 수비가 잇따라 흔들리면서 무너졌다. 하지만 패배 속에서도 몇 가지 희망적인 부분들이 비쳤다. 특히 '윙백'으로 변신한 '블루드래곤' 이청용의 부활이 반가웠다.
한국이 7일(이하 한국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VEB 아레나에서 펼쳐진 러시아와 평가전에서 2-4로 졌다. 전반전 중반까지 대등한 경기를 벌였으나 수비 불안으로 4골을 허용하면서 땅을 쳤다. 하지만 후반전 막판 0-4로 뒤진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두 골을 만회했다. '블루드래곤' 이청용이 2개의 멋진 도움을 올리며 신태용호의 체면을 세웠다.
이청용은 3-4-3 포메이션에서 오른쪽 윙백으로 출전했다. 오른쪽 윙포워드로 기본 배치된 권창훈의 뒤를 받쳤다. 대표팀에서 줄곧 윙포워드나 윙으로 뛰었던 이청용이 '변신'을 꾀하면서 중원에 힘을 실었다. 센터백에서 '왼쪽 윙백'으로 자리를 바꾼 김영권과 함께 신태용호의 측면을 책임졌다.
어느덧 대표팀의 베테랑으로 자리잡은 이청용은 '윙백 임무'를 완벽히 소화했다. 쉽게 말해 수비해야 할 때 수비하고 공격해야 할 때 공격하며 한국의 중원을 잘 지켰다. 전반전에 권창훈과 손흥민이 스위칭 플레이를 시도하며 공격적으로 나서자 공격을 자제하면서 중원과 수비에서 공간을 효과적으로 점유했다. 연속 실점으로 패색이 짙자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측면을 지배하면서 한국의 공격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경기 막판 나온 이청용의 2도움은 'EPL 클래스'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청용은 후반 42분 오른쪽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로 권경원의 헤더골을 도왔고, 후반 48분에는 후방에서 상대 수비라인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공간 패스를 찔러주며 지동원의 만회골에 징검다리를 놓았다. 정확한 킥과 경기장을 전체적으로 볼 줄 아는 넓은 시야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실히 증명한 이청용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신태용호는 러시아전 패배로 뚜렷한 숙제가 드러났지만 가능성도 동시에 발견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과 다른 전형과 전술 속에서 '호흡 불일치'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으나, 신태용 감독이 강조하는 '짜임새'의 틀은 갖춰나갔다.
한국은 이날 경기에서 '더블 프리롤'을 가동했다. 공격에서는 손흥민, 수비에서는 장현수를 프리롤로 두고 전형의 탄력도를 나름대로 잘 높였다. 하지만 장현수가 중원으로 올라온 사이에 전체적인 미스가 나오면서 수비의 중심이 심하게 흔들렸다. 공격에서 흐름이 끊기면 수비 전환이 늦어 위태로운 상황을 많이 맞이했고, 세트 피스 위기 상황에서 임무 분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골을 연이어 내줬다. 또한 김주영과 권경원의 동선이 자주 겹치면서 상대 공격수들에게 위험한 공간을 내주고 자책골까지 기록했다. 수비수들의 빌드업과 커버 플레이 등은 나쁘지 않았으나, 가장 중요한 '호흡'에서 문제를 보여 대량 실점하고 말았다.
중원과 공격의 원터치 패스에 이은 깔끔한 공격 전개는 매우 좋았다. 황의조를 앞에 두고 손흥민-구자철-권창훈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공격이 속도와 다양성에서 모두 완성도가 높았다. 전반 18분과 전반 43분 세 유럽파(손흥민-구자철-권창훈) 선수들이 정확한 짧은 패스로 상대 수비라인을 무너뜨리며 슈팅까지 터뜨린 장면은 박수를 받을 만했다. 여기에 '에이스' 손흥민의 과감한 돌파와 벼락같은 슈팅이 몇 번 터져나오면서 러시아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슈팅 직전 패스의 정확도가 떨어지고 중앙 쪽 공격 분배가 적었던 점이 아쉽지만, 중원에서 공격으로 풀어나가는 '짜임새'는 매우 훌륭했다.
2분 사이에 자책골을 두 번이나 내주는 등 4실점 하면서 패배한 신태용호. 새로운 변화를 꾀했으나 불안한 경기력으로 '실망'이라는 두 글자를 떨쳐내지 못했다. 신태용호가 가야할 길이 여전히 멀고 험난하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 러시아 평가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