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포르투갈 축구 대표팀의 페르난두 산투스 감독은 18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A조 1차전에서 멕시코와 2-2로 비긴 뒤 분통을 터뜨렸다. 비디오판독 시스템 VAR(Video Assistant Referee)로 선제골이 무효가 됐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전반 21분 호날두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온 것을 나니가 재차 슈팅, 골이 됐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페페의 오프사이드라는 판정이 내려져 골이 취소됐다. 호날두를 비롯한 포르투갈 선수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포르투갈은 1-1로 맞선 가운데 후반 41분 세드릭 소아레스가 다시 앞서 가는 골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 골도 비디오 판독 대상이 됐다. 이번에는 골로 인정이 됐다. 산투스 감독과 선수들은 "왜 우리 골만 VAR로 판정하는가"하는 불만을 드러냈다.
VAR이 FIFA 주최 대회에서 처음 도입된 것은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열린 클럽월드컵.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12월 UAE에서 열리는 클럽월드컵에서도 시행된다. 명백한 오심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지만 아직까지는 혼란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시간으로는 같은 날인 19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축구회관에서 VAR 설명회를 열고 시스템의 개요와 운영 방식을 밝혔다. 다음달 1일 K리그 클래식 18라운드부터 VAR을 도입하기로 한데 따른 것이다. 비디오 판독 대상은 골 상황, 페널티킥, 직접 퇴장, 징계조치 오류 등 4가지 경우다.
VAR이 기존 축구 관습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축구 규칙은 '주심의 판정은 최종적'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판정의 잘못을 자각하거나 부심의 조언에 따라 판정을 바꿀 수 있다'는 문구를 두고 있다. VAR이 또 하나의 부심 역할을 하는 셈이다.
프로축구연맹이 K리그에서 시행하는 VAR은 FIFA와 국제축구평의회(IFAB)의 시범 운영 기준에 따른다. 이 기준은 무척 조심스럽다. 사람인 심판의 영역에 기계가 개입된다는 정서적인 거부감 때문만은 아니다. 심판의 권위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VAR의 철학 자체가 '최소한의 개입, 최대한의 효과'다. 최고의 판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추가적인 눈'의 기능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명백한 오심의 경우에만 비디오 판독을 할 수 있다. 명백한 오심의 의미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선수, 지도자, 미디어, 관중 등)이 심판 판정이 잘못됐다고 인정할 만한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이 정도로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영상으로 판독하기 어려운 부분(그레이존)의 경우는 주심이 최종 판단하며, 기술적인 문제로 장비 작동이 중지되거나 VAR 판정에 오심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경기가 무효화되지 않는다. '최소한의 개입'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기준들이다.
IFAB가 VAR을 도입하면서 '경기 규칙의 원칙과 철학을 준수한다'는 프로토콜을 정한 이유는 명백하다. 심판의 재량권이 필요 이상으로 제한되거나 위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주심, 즉 심판은 경기 규칙 시행과 관련된 모든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경기를 관리하도록 되어 있다. 특정 상황에 대한 판정만이 아니라 경기 전체의 운영이 심판의 역할이다.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경기 운영의 주체로서 심판에게 규칙 전반에 대한 재량권을 주고 있는 것이다.
VAR의 도입은 명백한 오심을 피해 최대한 공정한 경기가 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인데 그만큼 심판의 권위가 위태로운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VAR을 통해 더 이상 심판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포르투갈과 멕시코의 컨페더레이션스컵 경기에서 감독과 선수들이 혼란스러워 한 것은 새로운 제도가 낯설게 느껴진 까닭이지만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심판의 역할과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VAR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역할은 변함없이 중대하다. 심판의 권위에 대한 철학이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존중심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심판들 스스로의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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