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선수들, 유로 예선 그라운드를 누비다!
학창 시절 실제로 친구들과 축구를 하면서 상대 팀에 '쌍둥이 형제'가 같이 뛰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얼굴은 물론이고 키와 체형까지 완전히 판박이인 형제를 보며 우리 팀 동료들은 모두가 신기해 했다. 하지만 공을 차는 스타일은 똑같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엔 똑 닮은 생김새와 달리 그들은 왼발잡이와 오른발잡이로 갈렸고, 포지션도 한 명은 공격수였고 다른 한 명은 수비수였다. 어쨌든 경기가 끝나고 '쌍둥이 축구 선수'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서점 골목을 뒤지고 뒤져 일본 축구잡지를 구해 네덜란드의 '데 보어 형제'(프랑크-로날드)의 존재를 알고 미소지었던 '추억'이 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훌쩍 지난 현재 축구로 벌어먹고 사는 직업을 가지게 된 필자는 유로 2016 예선 경기 중계를 준비하면서 '쌍둥이 선수'에 대한 추억이 머릿속에서 다시 튀어나왔다. 여러 팀들의 자료를 모으면서 의외로 쌍둥이 축구 선수가 많다는 사실에 꽤 놀랐다. 그래서 여기저기 더 찾아 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함께 뛰는 쌍둥이 형제를 비롯해 그리 유명하지 않은 선수들까지 나오고 또 나온다. 그라운드를 함께 누비는 쌍둥이 축구 선수라. 오래전 접었던 기억이 '현실' 속에서 다시 펼쳐져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6일(이하 한국 시각) 새벽 열린 러시아와 스웨덴 유로 2016 G조 예선 경기부터 '쌍둥이 선수 찾기' 작업이 시작됐다. 이미 알고 있었던 러시아의 베레주츠키 형제(알렉세이, 바실리)가 쌍둥이 국가대표로 이번 경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실제로 동생 바실리가 선발 중앙수비수로 나섰고, 형 알렉세이는 후반에 교체 투입되어 러시아의 1-0 승리를 지켰다. 또한, 이날 경기에 출전하진 않았지만 드리트리 콤바로프는 크리릴 콤바로프와 쌍둥이었다. 스웨덴에서도 쌍둥이 선수를 내세웠다. 레프트백으로 선발 출전한 마틴 올손이 스웨덴 대표 경력이 있는 마르쿠스 올손의 쌍둥이 형이다. 그런데 잠깐! 잠시 삼천포로 빠져서, '쌍둥이 올손' 형제의 누나 제시카 올손이 2012년 NBA 스타 디르크 노비츠키와 결혼한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스웨덴 '쌍둥이 축구 선수' 올손의 매형이 바로 '독일병정' 노비츠키라 또 놀랐다.
이렇게 시작된 '쌍둥이 선수' 조사는 다른 팀 경기들과 연관되어 탄력이 붙었다. 네덜란드의 데 보어 형제를 비롯해, 브라질의 다 실바 형제(파비우-하파엘), 독일의 벤더 형제(라르스-즈벤), 스페인의 카예혼(호세-후안미) 형제, 불가리아의 미네프(베셀린-요르단) 형제, 그리고 한국의 이상용(전주대)-이강욱(대구대) 형제까지 흥미진진한 '쌍둥이 선수'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데 보어 형제는 우리와 경기에 선발로 나서 5-0 승리를 이끌었던 '안 좋은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고, 이미 알고 있던 선수들도 쌍둥이로 밝혀져 이채로웠다. 공교롭게도 사흘 동안 중계한 네덜란드-아이슬란드(5일), 러시아-스웨덴, 이탈리아-불가리아(7일) 경기가 모두 쌍둥이 선수와 관련이 있었다.
그렇다면, 쌍둥이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은 생김새와 상관관계가 있을까. 정답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다. 쌍둥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비슷한 환경에서 훈련을 받고 운동 능력과 소질 또한 엇비슷해 경기 모습까지 닮을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재능을 보이며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선수로 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러시아의 베레주츠키 형제와 브라질의 다 실바 형제는 전자에 가깝고, 네덜란드의 데 보어 형제와 이상용(수비수)-이강욱(공격수) 형제는 후자에 포함되는 인물들이다.
덧붙여 '엉뚱한' 생각 하나. 만약 쌍둥이 선수가 같은 팀에서 함께 뛴다면 '분신술'의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오른발을 주로 쓰는 라이트윙 쌍둥이 형과 왼발을 주로 쓰는 레프트윙 쌍둥이 동생이 함께 뛴다고 치자. 상대 선수들은 외모는 같지만 주로 쓰는 발이 다른 쌍둥이 형제를 오른쪽과 왼쪽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대비할 것이다. 이 점을 역으로 노려 전반전을 마친 뒤 쌍둥이 형제의 위치를 바꾸면 상대 팀은 헷갈리지 않을까. 실제로 이런 상상을 하고 중계한 이탈리아-불가리아 경기에서 불가리아의 미네프 형제(베셀린-요르단)는 레프트백과 라이트백으로 선발 출전해 경기 도중 자리를 맞바꿔 눈길을 끌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세상에 축구 선수들은 정말 많고 그 가운데 쌍둥이 선수들을 찾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아래는 유럽축구연맹 및 기타 언론과 축구 자료 등에서 찾아낸 '쌍둥이 축구 선수' 리스트다.
◆ 쌍둥이 축구 선수(현역만 포함)
[러시아] 알렉세이 베레주츠키(센터백/사이드백, CSKA 모스크바)-바실리 베레주츠키(센터백/사이드백/수비형 미드필더, CSKA 모스크바)
[러시아] 드미트리 콤바로프(미드필더/레프트백, 스파르타크 모스크바)-크릴리 콤바로프(미드필더/라이트백,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터키] 하릴 알틴톱(공격형 미드필더, 아우크스부르크)-하미트 알틴톱(공격형 미드필더/수비형 미드필더, 갈라타사라이)
[터키] 하이다르 체키르데크(미드필더,벨리디예스포르)-볼칸 체키르데크(수비수, 벨레디예스포르)
[스페인] 하비에르 플라뇨(라이트백/센터백, 오사수나)-미겔 플라뇨(센터백, 오사수나)
[스페인] 호세 카예혼(공격수/윙어, 나폴리)-후안미 카예혼(미드필더, 클럽 볼리바르)
[브라질] 파비우 다 실바(풀백, 카디프 시티)-하파엘 다 실바(라이트백, 리옹)
[독일] 라르스 벤더(수비형 미드필더,바이에르 레버쿠젠)-즈벤 벤더(수비형 미드필더,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폴란드] 파벨 브로체크(공격수, 비슬라 그라코프)-피오트르 브로체크(레프트백/레프트윙, 피아스트 글리비체)
[네덜란드] 예로엔 드로스트(레프트백, 데 흐라프샤프)-헨리코 드로스트(센터백/엑셀시오르)
[스위스] 다비드 데겐(라이트윙, 바젤)-필리프 데겐(라이트백/라이트윙, 바젤)
[벨기에] 디미트리 하이레만스(라이트백, 빌리크)-게오프레이 하이레만스(미드필더, 헤이스트)
[불가리아] 베셀린 미네프(레프트백, 레프스키 소피아)-요르단 미네프(라이트백/레프트백, 루도고레츠)
[스웨덴] 마르쿠스 올손(레프트백/레프트윙, 블랙번)-마르틴 올손(레프트백, 노리치)
[포르투갈] 플라비오 파이샹(공격수, 실롱스크 브로츠와프)-마르코 파이샹(공격수, 스파르타 프라하)
[에스토니아] 에이노 푸리(미드필더, 보타사니)-잔데르 푸리(윙어, 슬리고 로버스)
[헝가리] 아담 시몬(수비형 미드필더, 비데오톤)-아드라스 시몬(공격수, 파크스)
[산 마리노] 알도 시몬치니(골키퍼, 리베르타스)-다비데 시몬치니(수비수, 리베르타스)
[키프러스] 데메트리스 스틸리아누(골키퍼, 에르미스 아라디푸)-루카스 스틸리아누(수비수, 찰카노라스 이달리우)
[한국] 이상용(수비수, 전주대)-이강욱(공격수, 대구대)
[페로제도] 라즈나 파타바리(수비수/키)-란바 안드레센(공격수/키) == 여자 선수
[더팩트 | 심재희 기자 kkamanom@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