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용의 Lee+박지성의 J.S=?
제대로 된 '물건'이 나타났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이청용의 성 'Lee'와 박지성의 이름 'J.S'를 합친 'lee J.S.' 활약상을 보고 있으면 일부러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청용과 박지성의 플레이 스타일을 그대로 흡수한 듯하다. '이청용+박지성.' 바로 슈틸리케호의 '살림꾼이자 해결사'로 떠오른 이재성 이야기다.
중국 우한에서 열리고 있는 2015 동아시안컵에서 이재성은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박지성과 이청용의 장점을 동시에 발휘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일 중국과 1차전에서 결정적인 패스 두 방으로 한국의 2-0 승리를 이끌었고, 5일 일본과 2차전(1-1 무승부)에서는 후반 중반 투입되어 맹활약을 펼쳤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예측 능력으로 상대를 '모기같이' 괴롭혔고, 결정적인 킬러 패스와 묵직한 한방으로 공격에서도 결정적인 구실을 해냈다.
축구에서 흔히 팀의 완성도를 따질 때 '3S'를 본다. 스피드(Speed), 시스템(System), 스태미나(Stamina)가 바로 '축구의 3S'다. 여기에 현대 축구는 하나의 'S'를 더 요구한다. 바로 스페이스(Space)다. 팀이 '공간'을 잘 장악하고 활용해야 승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공간을 잡기 위한 팀의 중심축, 이른바 '스페이스 맨'(space man)이 가치를 드높인다. 공간을 점유하고 경기를 이끌어가는 '스페이스 맨'의 싸움이 승부의 열쇠가 되고 있다.
이재성은 '스페이스 맨'으로서 기본 자질을 갖추고 있다. '공간에 대한 완벽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경기장 절반 이상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 기본적으로 수비할 때 수비하고, 공격할 때 공격할 줄 아는 그는 상황에 맞게 공간을 장악하며 팀 에너지를 상승하게 하는 '밀고 당기기의 귀재'다. 밀리는 분위기에서는 강력한 압박과 수비 지원으로 후방에 힘을 보태고, 공격 상황에서는 다양한 움직임과 기술을 발휘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며 상대의 패스 길목을 차단하고, 공격 상황에서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동료에게 패스의 길을 열어준다. 수준급 드리블 실력과 단 한방에 분위기를 바꾸는 공간 패스, 그리고 한 템포 빠른 슈팅 타이밍까지 알고 있다. 아직 완성형이 아니라 직접적인 비교에는 무리가 있지만, 박지성의 수비력과 이청용의 공격력을 기본적으로 겸비했다는 느낌이 든다.
프로 데뷔 후 이재성은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고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윙어, 섀도 스트라이커를 두루 맡았다. 어디에 내세워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니 '멀티 플레이어'라는 평가는 당연하다. 더 대단한 것은 포지션에 구애를 받지 않고 부분 전술의 밑그림에서 다양하게 움직일 줄 안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 경기 중에 수비형 미드필더가 됐다가 윙어로 변신하고 공격형 미드필더로 자리를 옮겼다가 측면 미드필더로 변신한 뒤 어느덧 섀도 스트라이커로서 득점을 노린다. 박지성이 됐다가 이청용이 됐다가 하니 상대로서는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재성이 더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왼발'을 플레이의 중심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박지성과 이청용의 장점에 '왼발 프리미엄'을 더했다. 축구에서 '왼발'이 가지는 가치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이다. 왼발잡이들이 이전보다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오른발잡이에 비해 많이 적어 '희소성'을 지닌다. 찰나의 순간에 왼발 중심의 플레이를 펼치면 상대를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기에 파괴력이 대단하다. 이런 '왼발의 장점'을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활용하며 공간을 잡고 득점까지 노리는 선수가 바로 이재성이다. '이청용+박지성'이라는 별명이 그저 팬들의 기대만 반영되어 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보완점도 보인다. 축구 아이큐와 기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피지컬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현재 이재성은 180cm 70kg의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다. 빠르고 날렵하지만 폭발력은 다소 떨어진다. 드리블 돌파를 하다가 힘에 부쳐 휘청거리는 경우가 더러 있고, 상대와 몸싸움에서 흔들려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박지성이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초기에 겪었던 '피지컬 열세'를 극복하며 더 큰 선수로 성장했듯이, 이재성 역시 더 큰 물에서 놀려면 피지컬 단련에 들어가야 한다. 단, 무분별한 몸 키우기가 아닌 자신이 자연스럽고 힘이 넘치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직 20대 초반이다. 1992년 8월 10일에 태어난 이재성은 현재 만 22살이다. 이번 동아시안컵이 끝나면 23살이 된다. 어리지만 플레이는 이미 농익었다. '애늙은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노련하다. 대선배인 박지성·이청용과 비교를 하면 손사래부터 칠 정도로 겸손한 자세까지 닮았다. 박지성 특유의 '지성턴'과 이청용의 필살기인 '택배 스루패스'를 즐기면서 시나브로 성장하고 있는 이재성. 지금처럼 이대로만 발전한다면, 박지성과 이청용처럼 한국 축구의 '보물'이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꼬리말) 위에 언급한 '스페이스 맨'은 현대 축구에서 '키 플레이어'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 보니 더욱 흥미롭다. 공교롭게도 '스페이스맨'(spaceman)은 '우주인, 외계인'이라는 뜻을 지닌다. 축구에서 '공간을 잡아먹는 외계인'의 존재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더팩트 | 심재희 기자 sseoul@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