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약 10개월 동안 13만 7862km 이동
'손세이셔널' 손흥민(22·레버쿠젠)이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더 이상 놀랄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 됐다. 단순히 슈틸리케호 주전이 아닌 핵심으로 자리매김한 손흥민이다. 하지만 소속팀은 손흥민의 차출이 반갑지만은 않은 듯하다.
손흥민은 27일 열린 우즈베키스탄전에 선발로 출전해 61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하지만 좋은 경기력을 보이진 못했다. 특유의 번뜩이는 재능은 보였지만 몸이 전체적으로 무거운 경기였다. 장시간 비행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손흥민은 지난 23일 아버지 손웅정 씨와 함께 대표팀 합류를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했다. 오는 31일 뉴질랜드전을 치르고 독일로 복귀한다. 손흥민은 24일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 입소 직전 인터뷰에서 "소속팀에서 이번 차출을 반대했지만 (차)두리 형 은퇴식이 있어 설득했다"고 밝혔다. 차두리 은퇴 경기를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손흥민의 마음 씀씀이에 축구 팬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레버쿠젠의 걱정이 이해가 된다. 계속된 장시간 비행에 그의 컨디션 조절이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낸 이가 많았다. 손흥민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시작으로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 월드컵을 마치고 한국을 찍고 독일을 향한 손흥민은 약 보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손흥민은 리그 경기를 소화하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뛰기 위해 프랑스로 향했다. 다시 독일에서 리그 경기를 뛰었고 A매치를 위해 귀국했다가 소속팀에 복귀했다. 손흥민의 부루마불은 끝나지 않았다. 주사위는 계속해서 돌아갔다. UEFA 챔피언스리그 제니트전을 위해 러시아 땅을 밟았고 독일을 찍은 뒤 슈틸리케호에 합류해 요르단과 이란을 차례로 방문했다.
손흥민은 벤피카와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를 위해 포르투갈을 방문했고 다시 리그 경기를 소화했다. 이제 손흥민을 기다리는 것은 아시안컵이었다. 손흥민은 호주에서 슈틸리케호에 준우승을 안겼고 한국에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뒤 또다시 독일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약 40일 동안 독일에서 리그 경기에 집중한 손흥민은 지난 18일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 출전했다. 그리고 지난 22일 독일 분데스리가 26라운드 샬케04전을 독일에서 치른 뒤 23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손흥민이 지난해 5월 30일부터 지난 23일까지 298일 동안 이동한 거리는 무려 13만 7862km(각 나라의 수도 기준으로 거리 계산, 같은 국가 내 이동 거리는 제외, 비행기는 뒤로 가지 않는다고 가정)에 달한다. 지구 한 바퀴의 둘레가 4만km라 계산했을 때 3바퀴를 훌쩍 뛰어넘는 놀라운 거리다. 하루 평균 약 463km를 이동했다. 매일매일 서울과 부산 사이의 거리 이상을 이동한 셈이다. 같은 국가 내에서 이동한 거리를 더하면 수치는 더 올라간다.
손흥민은 한국 축구의 보물이다. 어느덧 '에이스'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성장했다. 그렇기에 '관리'가 필요하다. 한국 축구는 박지성을 통해 큰 교훈을 얻었다. 그는 무릎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귀국을 당연하게 여겼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장거리 비행 후 무릎이 부어 몇 차례 고생했을 때에도 결코 불평하지 않았다. 그동안 축구 팬이 그라운드 위의 박지성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축구 팬들은 손흥민을 오래도록 보고 싶어 한다. 다행히도 한국 축구의 수장도 같은 생각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훈련 첫날 장거리 이동 선수들을 배려했다. 러닝과 스트레칭으로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것에 집중했다. 그는 "장거리 이동한 선수들이 많다. 최대한 배려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손흥민, 기성용, 박주호 등 대부분 유럽파는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하지 않았다.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사령탑이 바뀌더라도 선수를 소모품이 아닌 자산으로 생각하는 정신은 이어져야 한다.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뉴질랜드전에서는 다시 한번 태극마크를 단 손흥민을 볼 수 있다. 팬들은 골을 터뜨린 손흥민이 밝은 표정으로 차두리를 위한 세리머니를 펼치는 것이 보고 싶다. 이런 기대와 설렘을 오래도록 느낄 수 있길 바란다.
[더팩트ㅣ이현용 기자 sporgo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