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트레제게의 눈물과 김진수의 미소

고개를 숙이고 무표정하게 1일 인천국제공항에 들어선 김진수가 팬들의 환호에 미소를 되찾았다. / 인천국제공항 = 김슬기 기자

고개를 숙이고 무표정하게 등장한 김진수(22·호펜하임), 팬들의 함성이 터졌다. 조심히 고개를 든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팬들의 반응에 실수를 털어낸 그는 미래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팬들은 다시 달리는 김진수를 볼 생각에 같이 웃었다.

27년 만에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축구 대표팀이 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했다. '수장' 울리 슈틸리케(60) 감독을 필두로 코치진에 이어 '캡틴' 기성용(26·스완지 시티)이 나왔다. 김주영(26·상하이 둥야), 김승규(24·울산 현대), 차두리(34·FC서울), 이정협(23·상주 상무) 등이 차례로 팬들이 기다리는 현장에 나타났다.

대부분 태극전사가 얼굴을 비친 가운데 김진수는 손흥민(22·레버쿠젠), 박주호(27·마인츠05), 남태희(23·레퀴야SC) 등과 함께 가장 마지막으로 팬들 앞에 섰다. 김진수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선수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차두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팬들의 환대에 고마운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출구 앞에서 파이팅 포즈를 취한 태극전사들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외치고 환영식이 열린 밀레니엄홀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유독 표정이 어두운 한 선수가 있었다. 김진수는 100m 남짓 한 거리였지만 무표정하게 자신의 짐을 끌고 이동했다. 김진수가 지나갈 때 팬들의 함성은 커졌다. "김진수, 힘내라", "김진수, 잘 생겼다", "김진수, 파이팅" 등 팬들은 그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팬레터를 건네는 팬도 있었다.

팬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김진수가 묵묵히 이동하고 있다. / 인천국제공항 = 이현용 기자

밀레니엄홀에서 시작된 환영식에서 이정표 장내 아나운서는 선수 한 명, 한 명을 호명했다. 선수들이 소개될 때마다 팬들은 큰 환호로 반겼다. 가장 큰 함성은 김진수에게 쏟아졌다. 김진수의 이름이 불리자 많은 팬들은 소리를 높였다. 그제야 김진수는 고개를 들고 팬들을 마주했다. 팬들의 소리는 더 커졌다.

환영식이 끝나고 취재진을 만난 김진수는 한결 편한 표정이었다. 그는 "(차)두리 형에게 미안하다. 우승이라는 좋은 선물을 안겨주고 싶었으나 내가 실수를 저질러 패해 아쉬웠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두리 형은 착하니까 용서해줄 것"이라며 과거 실수에서 벗어나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실책을 저질러 팬들께 실망감을 안겨줬지만 다시 내가 독일로 돌아가서 한국 축구 대표팀의 명예를 걸고 계속 열심히 뛰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가 인터뷰를 마치고 공항을 나서는 순간, 다시 한번 팬들의 함성이 터졌다. 긴 행렬 사이로 빠져나가는 김진수에게 환호와 함께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김진수가 팬들에게 받은 편지를 읽으며 웃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인스타그램

김진수의 표정 변화는 최근 은퇴한 다비드 트레제게(37)의 눈물이 생각나게 했다. 트레제게는 2006 독일 월드컵 결승 이탈리아와 경기에서 연장 전반 10분 교체 투입됐다. 하지만 승부차기 두 번째 키커로 나서 실축했고 프랑스는 준우승에 머물렀다. 마음의 큰 짐을 안고 프랑스로 돌아온 트레제게는 팬들이 자신의 이름을 외치고 환호하자 울음을 터뜨렸다. 이 장면은 축구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김진수는 아시안컵에서 한국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풀타임을 소화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많은 시간 그라운드를 누빈 선수가 김진수였다. 8강과 준결승에서 도움을 기록하며 한국이 27년 만에 결승에 오르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비록 호주와 결승전에서 1-1로 맞선 연장 전반 막판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지만 팬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호와 응원으로 따뜻하게 맞이했다. 김진수가 미소를 되찾았다.

[더팩트ㅣ인천국제공항 = 이현용 기자 sporgo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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