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노 기자] 큰 기대를 품고 '축구종가' 잉글랜드로 날아갔으나 1군 무대를 뛰기까지 꼬박 20개월이 걸렸다. 그동안 부상으로 팀 전열에서 이탈하기도 했고, 주전 경쟁에서 밀려 임대를 떠나는 등 시련의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온 데뷔전에서 화려하게 비상했다. 바로 윤석영(24·퀸즈파크 레인저스, 이하 QPR)의 이야기다.
윤석영은 19일(이하 한국 시각) 런던 로프터스 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4~2015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8라운드 리버풀과 홈 경기에서 감격의 EPL 데뷔전을 치렀다. 90분 그라운드를 누비며 모두 36번 볼 터치를 기록했고, 패스 성공률은 75%를 보인 윤석영은 두 번의 태클과 가로채기에 성공했고, 7번 상대 공격을 차단하며 '철벽 수비'를 자랑했다. 공격 포인트를 올리진 못했지만, 필요할 땐 적극적으로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등 공수에서 제 몫을 다했다. QPR은 2-3으로 패했지만, 상대 주축 공격수 라힘 스털링을 꽁꽁 묶으며 데뷔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날 윤석영은 왼쪽 풀백으로 선발 출전해 풀타임 활약했다. 던-스티븐 코커-네덤 오노오하와 함께 포백을 구성했다. 공식 경기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지만, 큰 실수 없이 제 못을 다했다.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상대 원톱 마리오 발로텔리와 오른쪽 측면 공격수 스털링과 맞대결에서 우위를 점했고, 적극적으로 오버래핑에 나서 날카로운 공격력을 뽐내기도 했다. 특히 상대 페널티박스 왼쪽 측면을 파고들 때는 마찬가지로 리버풀전에서 EPL 데뷔한 이영표를 떠올리게 할 만큼 날카로운 돌파를 보였다.
EPL 데뷔전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분히 경기를 이끌어갔다. 윤석영은 경기 초반부터 가벼운 몸놀림을 보였다. 전반 2분 만에 공격에 가담해 EPL 1호 크로스를 시도했다. 보비 자모라의 머리에 정확히 배달됐다. 이 공은 찰리 오스틴에게 향했해 팀 첫 슈팅으로 이어졌다. 전반 4분 스털링과 첫 맞대결에선 치열한 몸싸움을 펼쳐 공을 따냈고, 1분 뒤에는 페널티박스 안에서 발로텔리의 공을 가로채며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 전반 22분엔 스털링의 공격을 태클로 차단하고 곧바로 상대 진영까지 돌파하며 두 번째 크로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후반 초반 역시 윤석영의 활약은 계속됐다. 후반 9분 오버래핑에 나선 리버풀 오른쪽 풀백 글렌 존슨을 끝까지 쫓아가 슈팅을 방해했다. 3분 뒤에는 스털링과 맞대결에서 또다시 승리했다. 이어 후반 31분엔 페널티 박스 안에서 발로텔리의 강력한 오른발 슈팅마저 방어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후반 막판엔 지친 기색을 보였지만, 마지막까지 본연의 임무인 수비에 충실하며 '꿈의 데뷔전'을 마무리했다. 이날 QPR 중앙 수비수 던과 코커가 자책골을 기록한 가운데 실수 없이 경기를 펼친 윤석영의 활약은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경기 후 영국 매체 '스카이스포츠'는 윤석영에게 '태클이 좋았다. 하지만 때때로 자신의 포지션에 얽매여 있었다(Tackled well but caught of position on occasions)'는 촌평과 함께 평점 7을 부여했다. 이날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자모라(8점)에 이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후한 평가를 받았다.
윤석영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지난 2013년 1월 24일 QPR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QPR 대신 상대적으로 주전 경쟁이 수월한 풀럼 입단을 고민했지만, 해리 레드냅의 설득으로 QPR 입단을 결심했다. 하지만 잉글랜드 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이적과 동시에 부상과 부진이 겹쳤고, 설상가상 QPR은 챔피언십(2부 리그)으로 강등됐다. 이후 2부 리그에서 주전 경쟁에서도 밀리며 지난해 10월 돈 캐스터 로버스로 임대를 떠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월 다시 QPR로 복귀해 시즌 마지막 8경기에 나서 팀 승격에 힘을 보탰다.
EPL로 복귀한 올 시즌엔 발목 부상으로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며 단 한 차례도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부상 회복 후 2군 무대에서 경기 감각을 회복한 윤석영은 레드냅 감독의 선택을 받고 20개월 만에 가진 EPL 데뷔 무대에서 날개를 펴고 비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