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최우선 가치도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그룹은 경제적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바꾸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주요 그룹의 이런 노력은 아직 일반인에게 생소한 편이다. '반도체' 세계 1위 기업 삼성이 다문화 여성을 대상으로 커피 제조 전문가 바리스타 육성 교육을,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나선 현대자동차가 지역 특산물 판매와 유통을, 통신업계의 '맏형' SK가 산림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조림사업을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에 따라 <더팩트>는 국내 주요 그룹의 '이색 계열사'를 살펴보고 왜 이런 기업을 운영하는지에 대한 역사와 배경을 시리즈로 조명한다. <편집자 주>
모든 비용 절감해 장학금 전달…'따뜻한 자본주의로 복지 사각지대 없애'
[더팩트ㅣ을지로=이지선 기자] "한국 최고의 부자가 되기보다 최고의 기부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증권가 '샐러리맨 신화'를 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말이다. 창업의 꿈을 가지고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에서 나온 박현주 회장은 100억 원 자본금으로 미래에셋캐피탈을 설립해 '미래에셋그룹'의 시작을 알렸다.
창립 후 3년 뒤인 2000년 3월 박현주 회장은 회사 자본금이 300억 원에 불과하던 시절 본인 개인 자금 75억 원을 출자해 '특수관계법인'을 하나 설립했다. 사회 환원을 위한 복지 법인이다. 바로 지금의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이다. 젊은이의 희망이 되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은 자산운용 증권 생명으로 구성된 투자전문 미래에셋그룹에선 보기 드문 이색 계열사다. 오는 20일까지 제23기 미래에셋 해외 교환장학생을 모집할 정도로 전통을 자랑하며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서울에서 대학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해외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힘든 시기에 기회를 준 재단 측에 늘 고맙게 생각한다. 독일 브레멘에서의 6개월은 혼란스럽던 시기에 구체적으로 인생 진로를 결정하는 분수령이 됐다. 독일의 시위 문화와 법 질서를 체험하면서 법조인의 꿈을 키워 그 길을 걷고 있다. 당시 함께 선발된 다양한 분야의 장학생 모두 청년들의 꿈을 지원하는 박현주재단에 고마운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2013년 독일 브레멘대(University of Bremen)에서 3학년 봄학기를 수료한 박찬준(28)씨는 8000여 미래에셋 해외 교환 장학생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특별한 요구 조건 없이 미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가능성이 무한한 젊은이들에게 안목을 넓혀주고 세계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 재단에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은 을지로에 위치한 본사 건물 12층에 있다. 14일 찾은 33.05㎡(10평) 남짓한 사무실은 다음 복지 프로그램을 위한 준비로 분주했다. 재단에서 일하는 직원은 4명이 전부다. 이들로 인해 이곳에서 8000명의 학생들이 미래에셋의 지원으로 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기업이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는 것은 요즘 흔히 볼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미래에셋의 사회복지 법인 설립은 박현주 회장 의지가 크게 반영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인재 육성'에 대한 박 회장 철학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 회장은 결코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굳이 장학생들을 불러모아 사진을 촬영하는 의식적인 행사를 하지 않는 것도 박 회장의 뜻이다.
박 회장은 "미래 인재에게 투자하는 것이 미래에셋이 고객과 사회로부터 얻은 것을 환원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보여주듯 그는 매년 계열사 보유 주식에 따른 배당금을 전액 기부해 인재 육성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 '따뜻한' 자본주의…박현주 회장 철학 실현
박현주 회장은 지난 2010년부터 8년간 약 216억 원의 배당금 전액을 기부했지만 재단 이사 명단에 이름이 없다. 대신 이사장으로는 역대 대학 총장을 지낸 인사들의 이름을 올려왔다. 현재 미래에셋박현주재단 이사장은 정운찬 전(前) 국무총리로 정 전 총리 또한 서울대 총장을 거쳤다. '인재 육성'에 방점을 찍은 박 회장의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등기 임원들도 최현만 수석부회장을 제외하고는 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회장 뜻에 따라 조용하고 묵묵하게 지원을 이어가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은 수익사업을 진행하지 않는다. 결산보고서에 오른 수익사업에 따른 이익은 기본 자본금을 통한 이자나 배당금 정도다. 자본금은 각 계열사 법인 기부금이나 박 회장의 개인 배당금으로 충당한다.
미래에셋박현주재단에서 10년간 일한 이문주 팀장은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재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회사는 아무래도 돈이 오가는 곳인 만큼 차가운 느낌이 있지만 우리 재단 사업으로 미래에셋이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4명의 인원으로 모든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어 힘들지만 따뜻한 자본주의를 실천하는 정신이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과거 한 학생이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기 중에 아르바이틀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우리 재단이 장학금을 지원해 그는 학업을 마쳤다. 이후 그 학생은 방학 기간동안 아르바이트를 한 후 모은 금액을 우리에게 장학금으로 보내 다른 학생을 돕고 싶다고 밝혔다"며 "한 번 행한 선(善)이 여러 곳으로 퍼져나간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례도 눈길을 모은다. 이 팀장은 "가족 여행 프로그램 '제주 희망 캠프'라는 사업이 있는데 결손가정이나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등에 가족 여행 기회를 줘 가장 애착이 간다"며 "올해도 할머니 한 분이 일용직을 하시며 손주를 키우고 계시는 가정을 선발해 여행을 보내드렸으며 이들이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 "비용 아껴 장학금 더 주자" 미래 인재 발굴 '고심'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의 주력 사업은 단연 '해외 교환학생 장학금 지원'사업이다. 흔히 기업의 장학금 지원에 도전을 하려면 거창한 자기소개서와 면접이 필수다. 이에 따라 장학금을 받기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이 재단은 장학생 선발 과정에서 면접을 없앴다. 1인당 300만~400만 원 이상이 지원되는 대규모 사업인 만큼 내부에서는 장학생 검증 과정을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장학금 사업 초기에는 여의도 미래에셋 본사에서 지원 신청자들을 일일이 면접을 봤지만 박현주 회장은 장학금 지원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대한 줄여 더 많은 청년에게 기회를 주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해외 교환학생 지원 장학금을 받은 한 학생은 개인 블로그에 "서류와 자기소개서만으로 도움을 준 미래에셋에 감사하다"며 "응원을 받는 기분으로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장학금 지원 대상 선정은 기본 인적사항을 모두 가리고 블라인드 심사로 진행한다. 출신학교에 상관없이 계획과 목표 등이 담긴 자기소개서 하나만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얘기다. 또한 선정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을 우선적으로 선정해 지원하는 방침도 세웠다.
뿐만 아니라 장학금을 홍보를 위해 활용하는 '장학금 수령 시 후기 작성이 필수'라는 조항도, 행사 동원 명령도 없다. 고위 임원들이 함께한 이렇다 할 사진이 없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장학생들은 단 한번 '쉐어링 데이'를 통해 만난다. 하지만 이 또한 회사 임원들은 참석하지 않는, 오로지 학생들간의 소통만을 위한 시간이다.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은 2014년부터 국내 장학금 지원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국가 장학금 제도가 자리를 잡아 지원 대상이 중복된다는 판단에서다. 대신에 젊은 인재들이 폭넓은 지식과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외 지원을 늘리고 있다.
이외에도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은 사업 홍보 비용도 대폭 줄였다. 그럼에도 장학금을 받아 좋은 결과를 낸 학생들이 많다 보니 주변에 알려 25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 4차산업혁명 등 新산업도 교육 프로그램에 반영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의 또 다른 핵심 사업은 '청소년 금융진로교육'이다. 투자 전문 금융그룹의 특성을 살려 재단과 각 계열사가 손잡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은 아동 양육시설이나 지역아동센터 소속 청소년, 북한 이탈 청소년이 주요 대상이다.
금융교육에는 계열사 직원들이 강사로 봉사활동을 나가기도 한다. 유아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각 연령대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유용하면서도 재밌는 교육을 제공한다.
특히 교육사업은 장기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인재 육성이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닌 만큼 일회성 지원보다는 오랜 기간에 걸쳐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무리하게 사업을 늘리기보다는 기존 사업 콘텐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와 함께 금융 교육 프로그램은 4차산업혁명과 같은 신(新)산업도 포함한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가상현실(VR) 체험이나 3D프린터기로 제품을 설계하는 내용도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변화하는 미래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은 '희망듬뿍 도서지원' 사업을 진행중이다. 아이들이 도서관이나 시설에 기증된 도서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만의 책을 소유할 수 있도록 대상자 연령과 특성을 고려한 '맞춤 도서'를 제공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지난 2013년 전국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총 7만 권이 넘는 도서를 지원했다.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은 그룹 자체 사회공헌도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미래에셋 임원들은 매달 급여 1%를 기부하는 '희망 나눔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고 직원들도 정기후원에 동참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마다 이들이 기부액만큼 회사에서 동일하게 기부해 재원을 2배로 만든 후 사회복지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미래에셋그룹 관계자는 "금융의 미래는 사람이라는 박현주 회장 철학에 따라 재단의 사회공헌사업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따뜻한 자본주의를 실천해 복지 사각지대를 최대한 없앨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