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웅의 해시태그] 사인 거부하는 프로야구 선수들! 팬들 분노 폭발

팬 서비스 확대를 위한 선수·구단·KBO 노력 '필요'

[더팩트ㅣ박대웅 기자] '8910만 원 vs 25억 원.'

1984년 한국시리즈. '무쇠팔' 최동원은 프로야구 사상 전무한 한국시리즈 4승을 혼자 책임지며 소속 팀 롯데 자이언츠를 리그 정상에 올렸다. 이어 후배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1988년 선수협의회(현재 선수협회)를 결성했다. 이후 선수협의회는 선수협회로 이름을 바꿨고, 프로야구 선수들의 처우 개선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당대 리그 최고 투수인 최동원이 선수협의회를 구성했던 1998년 당시 받은 연봉은 8910만 원이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 정도의 값이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리그 최고 연봉은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로 25억 원이다. 1월 발표한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 자료를 보면 현재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가격은 8억 원이다. 25억 원이면 강남 아파트 3채를 살 수 있다.

1988년 리그 최고 투수였던 최동원(왼쪽)의 연봉은 서울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이었던 반면 30년이 지난 올해 프로야구 최고 연봉인 이대호의 연봉은 서울 강남 아파트 3채 값으로 껑충 뛰어 올랐다. /더팩트DB

같은 기간 선수들의 연봉만 오른 건 아니다. 서울엔 돔 구장이, 광주와 대구에는 새 야구장이 들어서는 등 시설과 인프라는 대폭 확대됐다. 동시에 관중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기록을 보면 1982년 출범 당시 관중(정규 시즌 기준)은 143만8768명으로 경기 당 평균 5995명이다. 이어 1997년 누적 관중 5000만 명을 기록했고, 2010년 1억 관중을 돌파했다. 프로야구의 인기는 계속 돼 지난해 802만4857명(평균 1만1547명)이 야구장을 찾았다. 2016년에 이어 2년 연속 800만 관중을 기록하며 프로야구는 '관중 1000만' 시대를 바라 보고 있다.

출범 37년. 어느덧 불혹으로 향하는 프로야구의 외연 성장에 의문 부호를 제시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팬 서비스로 눈을 돌린다면 고개를 가로저을 이들이 많다. 30여 년의 시간 동안 프로야구에는 이른바 '스타'가 생겼고, 이들은 팬들의 동경의 대상이 됐다. 많은 팬들은 선수들의 출퇴근 길을 이용해 사인이나 사진 등을 요청하고 준비한 선물을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팬들을 무시하거나 도망치고 심지어 짜증을 내는 선수들이 있다. 물론 팬들의 사인 요청에 친절하게 응해주는 선수도 있지만,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한 선수가 어린 팬들의 사인 요청을 무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이런 일은 프로 선수들의 팬 서비스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이다. 구단이 하는 다양한 이벤트만이 팬 서비스가 아니다. 팬들이 건네는 인사에 손 한번 흔들어주는 것도 작은 의미의 팬 서비스다. 하지만 많은 선수들은 '귀찮다', '시간 빼앗긴다' 등 이유로 팬 서비스에 소홀하다. 사인 한장 받기 위해 언제 올지 모를 선수를 몇 시간씩 기다리고, 자기 시간과 돈을 써가며 야구장을 찾아 환호하는 팬 편에서 생각한다면 겨우 몇 분을 빼앗기는 것을 아까워하는 프로 선수들의 행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물론 선수 편에서 보면 매번 받는 사인 요청이 불편하고 번거러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팬을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일부 선수는 자신이 해 준 사인이 중고장터에서 거래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사인을 해주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돈을 주고라도 좋아하는 선수의 사인을 사고 싶은 팬의 애틋한 마음을 보지 못한 비겁한 변명으로도 비친다.

프로라면 자신들이 받는 연봉이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야 한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같은 나이대 일반인들보다 월등히 높은 연봉을 받는다. 2월14일 KBO는 소속 감독 10명, 코치 234명, 선수 609명 등 모두 853명의 연봉 등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중 선수만 따로 떼서 보면 신인과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513명의 평균 연봉은 1억5026만 원으로 지난해 1억3985만 원보다 7.44% 상승했다.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금융공공기관의 신입 초봉이 5000만 원이 채 안 된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마크 트라웃(오른쪽)이 여성 팬의 유니폼에 사인을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대기업들이 왜 엄청난 돈을 들여 야구 선수들에게 억대 연봉을 지불하는 걸까. 단순히 야구를 잘해서는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팬이 있어서다. KBO의 연구 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해 리그 타이틀 스폰서였던 타이어뱅크가 TV중계, 온라인 미디어, 각종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노출 등으로 거둔 광고 효과는 1800억 원 규모다. 타이어뱅크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간 모두 210억 원을 후원한 걸 고려할 때 비용 대비 9배에 가까운 광고 효과를 얻었다. 올 시즌부터 3년 간 매년 80억 원의 타이틀 스폰 계약을 맺은 신한은행 역시 올해 2000억 원이 넘는 광고 효과를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 단순히 타이틀 스폰서십이 이 정도인데 지역을 기반으로 실제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에게 프로야구 효과는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 크다.

천문학적인 돈이 흐르는 만큼 메이저리그는 팬들을 대하는 매너를 프로의 조건으로 따진다. 선수들 역시 야구를 하고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돈을 버는 이유가 팬들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KBO에 온 외국인 선수들은 대부분 팬서비스가 좋다. 팬을 바라보고, 대하는 인식이 국내 선수와 사뭇 다르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 칼리 컬버슨(오른쪽)이 경기 중 소년 팬과 인증샷을 찍고 있다. /게티이미지

팬 없는 프로야구는 존재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선수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도 가혹하다. 구단과 KBO의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 선수들을 상대로 팬 서비스에 관한 방침을 신설하고 교육도 해야 한다. 동시에 프로선수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선수들은 팬이 없는 프로야구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사적인 공간에서 훈련 시간까지 쪼개어 팬들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적어도 출퇴근 때나 야구장을 찾은 팬들을 향해 프로답게 의무와 예의를 다하라는 이야기다. 대기업의 지원을 받고, 관중의 입장료로 수익을 내는 '프로 리그'라면 고객인 '팬'들을 위해 의무를 다해야 한다. 팬이 있어야 프로야구도 있다. 야구장에 팬들의 함성이 사라진다면 공 잘 던지고 날아오는 공 잘 받아치는 기술은 세상 쓸 데 없는 한낱 '기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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