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에 '응답'한 김정은…트럼프 "두고 보겠다"

문재인(가운데) 대통령과 김정은(왼쪽) 북한 노동당 위위원장은 오는 4월 말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을 한다.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는 6일 방북 결과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히며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천명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대화에 나설지 주목된다./청와대·더팩트DB

김정은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유훈"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승부수'가 통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상'에 예상보다 파격적으로 응답했다. 6일 방북 후 귀환한 대북 특별 사절단은 '4월 말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끌어낸 동시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까지 확인하며 북·미 대화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이제 관건은 미국이 북한의 메시지를 얼마나 신뢰하고, 이에 응할지다.

특사단 수석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오후 8시께 춘추관에서 1박 2일간 방북 결과를 브리핑했다. 발표문의 내용은 크게 여섯 가지였다. ▲4월 말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 ▲남북 핫라인 개설 ▲北, 체제 안전 확인되면 비핵화 의사 표명 ▲북미관계 개선 위한 대화 용의 ▲대화 국면에서 북측의 추가 핵실험 중단(모라토리엄)▲남측 태권도 시범단 및 예술단 평양 초청 등이다.

◆ 모라토리엄에 비핵화 의지 천명…김정은 "선대 유훈"

우선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지난 2007년 10월 이후 11년 만이다. 역대 세 번째 회담이다. 시기 역시 예상보다 빨랐다. 대북 전문가들은 5월쯤으로 예측했었다. 특사단이 방북하기 전 4월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예정돼 있었고, 북한이 반발할 게 뻔했다. 정 실장은 회담 시기와 관련해 "지난 (평창 동계) 올림픽 기간 중 북한 특사와 고위급 회담을 했을 때 북측에서 회담을 조기에 개최하자는 입장을 밝혀왔다"며 "저희도 원칙적으로 동의해서 양측이 편리한 시기를 4월 말로 특정 짓고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장소 또한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 두 차례 정상회담(2000년 6월, 2007년 10월)은 북한의 수도인 평양에서 이뤄졌지만, 이번엔 판문점 남측 구역인 '평화의 집'에서 열린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 정상이 남한 땅을 밟은 것은 김 위원장이 처음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더팩트>에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대결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그것도 남측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은 김 위원장의 대담한 성격과 결단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은 지난 5일 정의용(왼쪽) 수석 대북특사가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악수를 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남북이 정상회담에 전격 합의한 핵심은 북측이 모라토리엄(일시 유예)과 함께 비핵화 의지를 천명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여건 조성'을 내걸었다. 이 '여건'은 북미대화를 의미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고수해 왔다. 정 실장은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밝혔다.

특히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선대의 유훈"이라고 말했다고 정 실장은 전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김 위원장은 언급했다. 북한은 대화 국면에서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 도발 재개 중단'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의 '입'에서 '비핵화 의지'까지 나온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유훈'까지 언급한 것은 '강한 의지'로 읽힌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 대해서 상당히 신뢰를 하는 것으로 언급했다"며 "그 과정에서 특사도 교환하면서 두 정상 간 신뢰가 많이 쌓였다"고 설명했다.

◆ 北 믿을 수 있나?…'공'은 美로, '북미대화' 응할까

북한은 대화의 입구로 들어왔고,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문 대통령은 그간 미국의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선(先) 핵 동결-후(後) 핵 폐기'라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이번 특사단 방북 결과, 핵 폐기까지 이어지기 위한 과정에 가까워졌다.

미국으로선 북한의 강도 높은 선언에 고심할 수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 수위를 높여온 명분은 북핵 및 미사일 도발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모라토리엄에 비핵화 의지까지 표명했다. 북한과 대화에 나설 조건이 어느 정도 마련된 셈이다.

정 실장은 "한국 정부는 특사 방북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한 모라토리엄 수준을 넘어서서 북한의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 추진 및 남북 정상 간 핫라인 설치까지 합의했다"면서 "한국 정부는 특사 파견을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의 안정적 관리 및 한반도에서의 전쟁 방지와 정치적·군사적 신뢰구축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매우 중대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 수석 특사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특사단이 북한 조선노동당 본관 진달래 관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면담을 하는 모습./청와대 제공

일각에선 당장 북미대화 재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북한이 진취적 태도를 보였지만, 과거 여러 차례 비핵화에 합의한 후 번복했고, 대화를 이어가다 도발을 한 전례가 있어서다. '대화 중 핵실험 중단'은 바꿔 말하면, '대화 중단 시 핵실험'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평가다. 또, 김 위원장이 "대화의 상대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은 상태에서 미국과 대화를 하겠다는 뜻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대북 전문가들은 풀이했다.

이에 따라 다음 절차는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다. 정의용 실장은 곧 방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방북 성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정 실장은 이후 중국과 러시아를, 특사단인 서훈 국정원장은 일본을 방문해 성과를 공유한다.

정 실장은 "미국은 가급적 이른 시일 내, 이번 주중 갈 예정으로 우선 대화를 해봐야 좀 더 정확한 말씀을 드릴 수 있겠다"면서도 "미북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조성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현지 시각) '김정은이 정권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국의 특사를 맞았다'는 내용 등을 담은 드러지리포트 기사를 리트윗(재전송)하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겠다!"라고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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