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이런 것까지?

지난해 8월 17일 개설된 청와대 국민청원 열기가 6개월여가 흘러도 여전히 뜨겁다. 사진은 지난 1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안에 설치된 문재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판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는 모습./김세정 인턴기자

6개월 만에 12만 건 돌파…청원 열기 속 부작용 우려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대통령님, 이 건을 청원합니다."

바야흐로 '청와대 국민청원 전성시대'다. 지난해 8월 17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개설한 국민청원 게시판은 6개월여 만에 무려 12만2594건(21일 현재)의 청원이 올라와 있다. 청와대를 향해 국민들이 하루 평균 681건의 청원을 한 셈이다.

날이 갈수록 청원 열기는 뜨겁다. 청와대 답변 기준선인 20만 명(건당)을 넘은 청원이 벌써 15건이다. 이 가운데 8건을 답했고, 7건이 대기 중이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국정철학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청원이 봇물을 이루는 이유다. 그러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선도 비례하고 있다.

◆ 너도나도 앞다퉈 청원…이런 것까지?

국민청원은 이제 리스트만 봐도 여론을 읽을 수 정도가 됐다. 화제의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즉각 관련 청원이 잇따른다. 국민적 분노를 살 경우, 하루 만에 20만 명을 훌쩍 넘기도 한다. 최근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국가대표인 김보름·박지우 선수의 자격을 박탈해야한다'는 국민청원은 지난 19일 하루 만에 답변 기준을 넘어섰고, 21일 오후 최단시간 내 50만 명을 돌파했다.

대체적으로 많은 이들은 '소통 창구'로서 국민청원의 순기능을 호평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여론몰이성 청원'이란 지적을 제기한다. 특정인에 대한 감정적 분노 표출이란 시각이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판사를 파면하거나 특별감사해 달라는 청원, 북한과의 단일팀 결성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전달한 나경원 의원(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의 위원 자격 박탈을 요구 등 청원 제도가 자칫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을 요구하는 청원 게시글./청와대 홈페이지

아무런 제약 없이 청원을 올릴 수 있다 보니 다소 '황당(?)'한 청원들도 있다. 전국에 있는 고등학교 3학년생들에게 치킨을 사달라하고, 롱패딩 착의 규제법 발의, 중국집 고춧가루도 포장해 달라거나, 로또 복권을 6년째 같은 번호로 구매해도 4~5등도 당첨이 안 된다고 따지며, 한국식 나이를 폐지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하고, 조선시대 관념을 버리자는 제안과, 당신은 보수인지 진보인지를 묻는가 하면, 아이돌 팬클럽의 격전장 등이 되기도 했다.

또, 모든 분야를 망라해 종 잡을 수 없을 정도다. 청원은 17가지 분야별로 나뉘어 있다. △정치개혁 △외교/통일/국방 △일자리 △미래 △성장동력 △농산어촌 △보건복지 △육아/교육 △안전/환경 △저출산/고령화대책 △행정 △반려동물 △교통/건축/국토 △경제민주화 △인권/성평등 △문화/예술/체육/언론 △기타 등이다.

◆ 실제 해결엔 '한계'…원론적 답변 지적

실제 문제 해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는 '특정 청원에 30일간 20만명 이상이 추천할 경우 청원 마감 이후 30일 이내에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 비서관, 특별보좌관 등)가 공식 답변을 내놓기로' 원칙을 세웠다고 지난해 9월 25일 밝혔다.

이에 따라 청원별 답변 일자와 참여인원 및 답변자를 보면 ▲2017년 9월 25일 청소년 보호법 폐지(29만6330명, 이하 조국 민정수석) ▲11월 26일 낙태죄 폐지(23만5372명) ▲ 12월 6일 주취감형 폐지(21만6774명) ▲12월 6일 조두순 출소 반대(61만5354명) ▲2018년 1월 16일 권역외상센터 지원(28만1985명,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1월 25일 전안법 폐지(25만5554명, 채희봉 산업정책비서관) ▲2월 14일 가상화폐 규제 반대(22만8295명,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2월 20일 정형식 판사 특별감사 및 파면(24만8888명, 정혜승 뉴미디어비서관) 등의 순이다.

답변 대기 중인 청원 게시글 리스트./청와대 홈페이지

일각에선 청와대의 이 같은 답변이 원론적이라고 꼬집는다. 8개의 청원 답변의 요지는 청와대 권한 밖이며, 각 분야별로 시행되고 있는 현 제도에 대한 설명과 향후 개선 의지를 말한다. 삼권분립 원칙 하에서 사실상 '손에 잡힐 정도'로 청와대의 답변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정형식 판사 건인 경우 전례에 비춰 조국 수석 또는 박상기 법무장관이 답변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혜승 뉴미디어비서관이 답변자로 나선 것도 이 같은 시각에 무게를 싣는다.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 국민청원제도와 관련해 "(일부) 답변하기 부적절한 성격의 내용들이 올라온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한 의원(나경원 의원)님의 문제나 국회 관련 것이 올라올 때"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도 "답변하겠다고 약속한 이상 곤란한 질문이라도 원론적 답변이라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답변 대기 중인 청원은 ▲김보름·박지우 국가대표 자격 박탈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직 파면 ▲미성년자 성폭행 형량 강화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 교통사고 처벌 강화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국회의원 급여 최저시급 책정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대한 철저한 수사 촉구 등 7가지다.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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