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김여정 2박 3일 방남 내내 '턱 끝 올린 채 미소 띤 표정'
[더팩트 | 청와대=오경희 기자] '일거수 일투족(一擧手一投足).'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는 뜻으로,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이르는 말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남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쫓는 국내외 시선이 그랬다. 북핵 도발 등으로 시끄럽던 지난해만 해도 상상하기 어렵던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등장이었다. 그의 표정부터 동선, 말 한마디까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난 '2박 3일' 방남 기간은 분초 단위로 돌아갔다.
북한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 씨 직계가족을 뜻하는 '백두혈통'의 첫 방남, 북한 내 실세, 오빠에 비해 깡마른 체구,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성…. 공개적으로 알려진 김여정 부부장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다. 그의 외양은 북한의 국영방송인 <조선중앙TV>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수행하는 모습이 극히 제한적으로 노출된 게 전부다.
자연스레 많은 이들의 관심도 김여정 부부장의 실제 모습이었다. 생김새부터 성격, 목소리, 행동 등등. 그리고 지난 9일 막이 올랐다. 김 부부장은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함께 김정은 위원장의 전용기인 '참매-1호기(PRK-615)'를 타고, 이날 오후 1시 47분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후 그의 움직임은 곧 실시간 뉴스였다.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육감도 어느 때보다 세밀해졌다. 청와대 대변인과 국민소통수석의 브리핑과 대응도 긴박하게 이뤄졌다.
'오후 2시 4분, 김여정 제1부부장은 (북한 고위급 대표단장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뒤로 미소 지으며 걸어 나왔고, '감사합니다'라는 입모양을 보였으며, 피부 희고 깨끗하다.…(중략)…오후 2시 6분, 김여정 제1부부장이 손으로 김영남 상임위원장 먼저 앉으라며 조명균 장관 앞좌석을 가리킴.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배려하는 듯한 모습이다.…(중략)…김여정 제1부부장은 목과 손목 부분에 검정색 털이 부착된 검정 롱코트 차림이고, 클러치 정도 크기의 검정색 백을 어깨에 메고 왔다. 손목시계를 찼고, 반묶음 헤어스타일로, 검정색 꽃장식 2개 정도 달린 핀으로 머리를 고정시켰다.'
김여정 부부장의 입국 장면을 기록한 청와대 풀(POOL) 기자단의 스케치 중 일부다. 풀기자들은 보도를 위해 기자단을 대표해 대통령의 각종 공식행사에 윤번제로 참여한다. 입국 장면은 두 가지를 포인트로 해석됐다. 하나는 김 위원장을 대리해 방남한 김 부부장의 '미소'였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나이보다 대략 3배 많은 90살쯤의 김영남 위원장이 그에게 상석을 권함으로써 보여준 '위상'이었다. 기자들은 김 위원장이 '상석'을 권한 게 맞는지 재확인하기도 했다.
하이라이트는 문 대통령과의 첫 대면이었다. 이날 오후 8시께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해 귀빈석에 앉아 있던 김 부부장은 문 대통령이 자신 쪽으로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은 밝게 웃으며 3초쯤 악수했다.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올림픽으로 복원된 남북 대화 무드에 청신호로 읽혔다.
인사방식이 제각각인 국제 외교장에서, 단 한가지 인사만은 통용되는 데, 바로 '악수'다. 개막식 두 시간 전, 문 대통령이 각국 정상들을 위해 주최한 사전 리셉션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북한 김영남 위원장과 악수조차 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한반도 문제의 관련국인 미국·일본 ·중국 등 정상급 인사들과 김영남 위원장의 악수 여부, 헤드테이블 자리 배치도 등에 집중했다. 외교적 관계를 보여주는 '단초'이기 때문이다.
본 무대는 10일이었다. 김 부부장과 고위급 대표단은 이날 오전 11시께 청와대를 찾아 문 대통령을 접견했다.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명을 받고 왔습니다"라며 문 대통령에게 친서와 함께, 김정은 위원장의 문 대통령에 대한 북한 초청 의사를 구두로 전달했다. 파격 제안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어 문 대통령과 김 부부장은 같은 날 오후 9시 10분께 남북 단일팀인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를 관람했고, 12일 저녁 6시 50분 서울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까지 함께 봤다.
문 대통령과 김 부부장은 모두 '네 번' 얼굴을 마주했다. 남북 관계의 '압축 회복'으로 해석됐다. 눈길을 끈 점은 '퍼스트 여동생'으로서 위상을 보여준 김 부부장에 대한 국내외의 큰 관심에 비해 그의 '말'은 별로 공개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다시 만나길 바란다" 등의 인삿말과 '김정은 특사' 자격으로서 메시지 정도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11일 서울 반얀트리호텔에서 주재한 만찬에서 건배사를 제의하자 김 부부장은 "제가 원래 말을 잘 못한다"고 했다.
그래설까. 국내외 언론은 김 부부장의 '몸짓 언어'에 주목했다. 바로 '턱 끝을 살짝 들어올린 채 미소를 유지하는 표정'이었다. 이를 두고 일부는 "도도한 김여정" "백두공주"라고 분석했다. 시선을 자연스럽게 아래쪽을 내려다보면서, 지도층으로서 권위와 긴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식적 행동이란 시각이 제기됐다. 문 대통령과 첫 만남에서도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 여기에 '필요한 말'만하면서 무게감과 신뢰감을 실었다는 관측이다.
어쨌든, '김여정 등판'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를 들끓게 만들었다. 김 부부장은 12일 저녁 10시 24분 인천국제공항에서 전용기 편으로 돌아갔다. 미국 외신은 이번 그의 방남에 데해 "금메달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이목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김여정' 이름 석자를 각인시킨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돌아갔지만, 문 대통령의 '평창 시계'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간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공식 초청하면서 3차 남북 정상회담이 현실화되고 있다. 벌써부터 '대북 특사' 후보군에 대한 하마평이 돈다. 문제는 미국 등 주변국을 설득할 수 있느냐다. "평창 후 봄을 고대한다"고 한 문 대통령은 그 '바람'을 실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