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서다빈 기자]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장 선거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지난 3일 초선 김남희 의원이 재선 문정복 의원을 꺾고 당선됐다. 문 의원은 정청래 전 대표 체제에서 최고위원과 조직사무부총장을 지낸 대표적인 친청(친정청래)계 인사다. 당내에서는 문 의원의 우세를 점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최근 만난 호남권을 지역구로 둔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김남희 의원이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 등 당내 강경파의 입장과 다른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강성 당원들의 지지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문정복 의원은 친정청래계와 강경파의 지원을 받는 상황이어서 김 의원이 승리한다면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충청권을 지역구로 둔 한 의원도 놀란 눈치였다. "당연히 문정복 의원이 승리할 것으로 봤다. 재선 의원인 데다 최고위원까지 지냈고, 당내 조직력도 갖추고 있지 않나. 그런 점에서 이번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라고 했다.
이번 선거는 일찌감치 계파 간 대리전으로 주목받았다. 김 의원은 친명(친이재명)계, 문 의원은 친청계로 분류된다. 더욱이 전국여성위원장은 차기 총선 공천관리위원회에 당연직으로 참여하는 자리다. 선거 결과에 정치적 의미가 부여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두 의원은 투표 기간 중 이재명 대통령의 시정연설 직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나란히 SNS에 올리는 등 막판까지 치열한 선거전을 벌였다.
이번 결과를 단순히 어느 계파의 승리와 패배로만 해석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계파 구도에 가려진 김 의원의 정치적 행보도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그간 당내에서 강경한 메시지를 앞세우기보다 정책 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데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당내 다수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자신의 판단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둘러싼 논쟁이다.
민주당이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던 당시 김 의원은 보완수사권의 전면 폐지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했다. 여성과 아동 등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입은 사건에서 수사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검찰개혁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가 소홀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는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는 당내 강경론과는 결이 다른 목소리였다. 일부 당원들의 비판도 뒤따랐다. 그럼에도 김 의원은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내 강경한 여론에 호응하기보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물론 김 의원의 주장이 반드시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보완수사권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도 검찰의 수사권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주장이 옳으냐가 아니다. 같은 개혁 목표를 향하더라도 그 방법을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할 수 있고, 이를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견이 정치권에서 충분히 존중받고 있느냐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정책의 타당성보다 강성 지지층의 호응이나 계파 간 이해관계가 먼저 부각되는 일이 적지 않다. 상대 진영을 향해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면 주목받지만, 자신이 속한 정당의 주류 의견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정책을 둘러싼 건전한 논쟁마저 계파 간 갈등으로 번지면서 정치인의 소신이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치인이 지지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지층의 요구에 호응하는 것과 그 요구가 언제나 옳다고 판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지층의 눈치를 보느라 필요한 문제 제기를 주저하거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바꾼다면 정치인의 역할은 결국 지지층의 목소리를 대신 전달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김 의원의 당선은 눈여겨볼 만하다. 당내 강경론과 다른 목소리를 내온 정치인이 조직력과 계파의 지원을 갖춘 후보를 꺾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당내 강경론과 다른 목소리를 내온 정치인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결과는 정치권의 익숙한 성공 공식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물론 이번 결과만으로 당원들이 김 의원의 정책적 소신을 높이 평가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계파 간 역학관계와 조직력, 선거운동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다만 그가 당내 강경론과 다른 입장을 밝혀왔다는 사실이 당선을 가로막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 결과를 냉정하게 되짚어볼 여지가 있다.
정치인에게 소신이란 무조건 다수의 의견에 맞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문제에 대해 근거를 갖고 설명하고, 반대 의견을 경청하며, 그 판단에 책임지는 태도에 가깝다. 때로는 지지층이 듣고 싶어 하는 말보다 듣기 불편하더라도 필요한 말을 하는 용기도 요구된다.
정치권 역시 정치인을 평가하는 기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얼마나 강한 발언을 쏟아내는지, 어느 계파의 지원을 받는지만큼이나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도 중요하다. 정치적 소신이 지지층의 요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면 정치인은 갈수록 자신의 판단보다 지지층의 반응을 먼저 살피게 될 것이다.
김 의원의 당선이 정치권에 던진 질문도 여기에 있다. 강성 지지층의 호응이 정치적 영향력으로 이어지는 시대, 우리는 목소리가 큰 정치인을 원하는가, 자신의 목소리에 책임지는 정치인을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