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서다빈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영화관의 비상대피 안내 영상에 수어와 자막 등을 제공하도록 개선을 권고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장애인을 위한 대피안내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멀티플렉스 업체들이 제출한 자료마저 기준과 범위가 제각각이어서 실제 안내가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관련 법령이 시행된 지 6년이 지난 만큼 장애인의 생명과 직결되는 대피안내 실태를 전수 점검하고 관리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전국 주요 멀티플렉스 3사의 영화관은 총 416곳으로 집계됐다. 업체별로는 △CGV 174곳 △롯데시네마 128곳 △메가박스 114곳이다.
이 가운데 CGV는 전국 58개 지점에서 비상대피 안내 영상에 자막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전체 CGV 영화관의 33.3%에 해당한다. 자막과 수어를 모두 제공하는 지점은 40곳으로, 전체 CGV 영화관의 23.0%였다.
롯데시네마는 자료를 제출한 80개 지점 가운데 10곳(12.5%)에서 수어·자막 비상대피안내를 제공한다고 표시했다. 전체 롯데시네마 128곳을 기준으로 하면 7.8%에 해당한다. 나머지 제출 지점 70곳은 자료만으로 실제 안내 제공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같은 영화관 안에서도 상영관에 따라 안내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은 수어·자막 비상대피안내를 제공하는 지점으로 분류됐지만, 제출 자료에는 '수어 비상대피도(21관 한정)'라고 기재돼 있었다. 특정 상영관에 한정된 안내가 지점 전체의 제공 현황에 포함된 것이다. 이처럼 지점 단위의 집계만으로는 개별 상영관에서 실제 어떤 안내가 이뤄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메가박스는 수어·자막 비상대피안내를 제공하는 지점으로 35곳을 제출했다. 전체 114곳의 30.7%에 해당한다. 다만 일부 회원사가 자료에서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 실제 제공 지점은 이보다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수치를 실제 장애인 대피안내 제공률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업체마다 자료 제출 범위와 작성 방식이 달라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CGV는 자막과 수어 제공 여부를 구분한 반면, 롯데시네마는 두 항목을 묶어 표시했다. 일부 영화관은 특정 상영관에 한정된 안내도 지점 단위로 기재했다.
특히 제출 자료에 안내 제공 표시가 없는 영화관이 실제로 관련 안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인지, 단순히 자료에서 누락된 것인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장애인의 생명과 직결되는 대피안내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판단할 기초자료부터 불완전한 셈이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년 영화관의 피난안내 영상에 수어와 자막 등을 제공하지 않는 문제를 장애인 차별로 판단하고 개선을 권고했다. 청각장애인도 다른 관람객과 마찬가지로 위급한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를 전달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이후 관련 법령도 개정됐다. 2020년 4월부터 시행된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규칙'에 따라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영화관은 피난안내 영상에 수어와 자막, 화면해설 등을 제공해야 한다. 다만 적용 대상과 시기에 제한이 있어 모든 기존 영화관에 같은 의무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관련 법령까지 마련됐지만 이번 제출 자료만으로는 어느 영화관에 해당 의무가 적용되는지, 실제 기준을 지키고 있는지도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업체별로 제각각인 자료 제출 기준을 통일하고, 법적 의무 대상 영화관을 중심으로 실제 안내 제공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에서다.
영화관은 불이 꺼진 상태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공간이다. 화재 등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비상구 위치와 대피 경로를 신속하게 파악해야 하지만, 청각장애인은 음성 안내만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 시각장애인 역시 화면에 표시된 안내만으로는 대피 방법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정부와 관계기관이 단순한 시설 설치 여부를 넘어 개별 상영관에서 장애인에게 대피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직접 점검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재원 의원은 "2020년부터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영화관에는 수어·자막·화면해설 등을 포함한 피난안내가 법적 의무로 규정됐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떤 영화관이 의무 적용 대상인지, 실제로 관련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안전기준을 법으로 정해놓고도 이행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관리·감독을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법적 의무가 적용되는 영화관을 전수조사하고, 개별 상영관의 실제 이행 여부까지 점검해야 한다"며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시설에 대한 시정조치는 물론,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기존 영화관의 안전 사각지대까지 해소할 수 있도록 관리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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