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가입 문턱이 낮아진 지 10여 년. 스마트폰으로 본인 인증 몇 번만 하면 수 분 만에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시대다. 여야 모두 '당원 직선제'와 '1인 1표제' 확산으로 당원의 한 표가 당 대표 선출과 공천 등 당내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가입 단계에서 신청자가 다른 정당의 당원인지 확인하는 절차는 사실상 없다. 당원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이중당적'이 경선에 개입할 수 있는 사각지대도 커지고 있는 셈이다.<편집자주>
[더팩트ㅣ김시형 기자] 정당법은 누구든지 2개 이상의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어기고 이중당적을 보유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이를 확인할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는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등과 달리 정당법 위반 사항 전반에 대한 일반적인 조사 권한이 없다. 선관위 관계자는 "정자법이나 선거법은 조사 권한이 법에 명시돼 있지만, 이중당적을 포함한 정당법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선관위의 조사권 자체가 없어 부족한 부분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선관위가 당적을 전혀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공직선거 '후보자 등록' 등 행정 업무상 필요한 경우에는 정당의 협조를 받아 당적을 조회할 수 있다. 정당 등록 시에도 5개 이상의 시·도당과 각 시·도당 1000명 이상의 당원이 필요한 만큼 당원 현황을 확인하는 업무도 이뤄진다.
반면 이중당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당원명부를 강제로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관위 관계자는 "신고·제보가 들어왔을 때 정당이 협조해준다면 당적 조회를 해볼 수 있지만, 강제적으로 조사는 할 수 없다"며 "범죄수사를 위해 당원명부를 조사하려고 해도 법관이 발부하는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당법 제36조에 따라 선관위가 정당에 보고나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지만, 당원명부는 그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결국 이중당적을 확인할 필요가 생겨도 선관위가 정당별 당원 정보를 상시적으로 넘겨받아 대조할 법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정당 내부에서도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한 정당이 다른 정당에 특정인의 당적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요구하더라도 상대 정당이 당원명부를 내놓을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예컨대 국민의힘에서 확인하려고 민주당에 물어보면 민주당이 그걸 알려주겠느냐. 거꾸로도 마찬가지"라며 "당원명부를 당원 외에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게 돼 있는 게 문제"라고 짚었다.
대안으로는 중앙선관위가 당원명부를 관리하면서 중복 여부를 확인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 관계자는 "당원명부 자료를 중앙선관위에 제출하게 하고, 선관위가 수시로 관리하면서 중복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가기관이 정당의 당원 자격과 명부를 직접 관리하는 방식은 정당의 자율성과 충돌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또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선관위가 당원명부를 관리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정당 관리는 선관위가 개입하지 않고 정당이 자율적으로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당원명부에 대한 보호 수준과 이중당적의 법정형 차이를 근거로 신중론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현행 정당법상 당원명부 열람을 강요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반면, 이중당적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관계자는 "이중당적에 낮은 법정형을 둔 이유에는 헌법적 고려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이중당적이 왜 안 되느냐는 것부터 헌법적·역사적 관점에서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에 특정인의 타당 당적 의혹이 제기됐을 때 선관위가 해당 정당의 가입 여부만 확인하는 수준의 절충안도 거론된다. 그는 "특정인에 대한 이중당적 의혹이 제기되면 선관위가 그를 특정해 가입 여부를 물어보고 답변하도록 하는 수준이라면 처벌 규정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원명부를 어디까지 확인할 것인지는 개인정보 보호 문제와도 맞물린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는 "이중당적을 걸러낸다는 게 개인정보 보호와 상충되는 면이 있을 수가 있어서 조심스러운 문제"라고 말했다. 또다른 당 관계자도 "한 정당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여야가 공히 같이 봐야 할 문제"라며 "입법보다 여야 합의가 먼저여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개인정보 보호가 제도 마련의 절대적인 걸림돌은 아니라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인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정당 관련 활동은 개인정보보호법 적용 범위에서 상당히 유연할 수 있다"며 "당원 가입 단계에서 이중당적 확인에 필요한 개인정보 이용에 대한 동의를 받는 방식으로 제도 설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모든 당원의 정보를 상시적으로 대조하기보다는 당원의 표가 실제 행사되는 당내 경선이나 전당대회 등 특정 시점에 한정해 이중당적을 확인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타당 당적 보유자의 당내 경선·전당대회 참여를 제한하는 방향의 정당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는 움직임도 있다.
법안 준비에 관여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우리나라 정당이 40개가 넘는 만큼 실시간으로 누가 우리 당에 가입하는 시점에 다른 당에도 가입돼 있는지 알 수 있는 시스템을 바로 구축하긴 어렵다"며 "당내 경선·전당대회가 있을 때에만 당원명부를 취합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대조해 이중당적을 확인한 뒤 적발된 경우 투표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개정할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도 이중당적 정리 필요성에 당 차원의 공감대를 보이고 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지난 17일 당 공식 유튜브 채널 '민주당TV'에서 "진보진영 내에서도 조국혁신당 등 이중당적이 현실로 존재하는 경우들이 있어 정리해야 한다"며 "선거법상 각 정당이 명단을 내놓지 않으면 진전이 안 되는 만큼, 어떻게 처리할지 여러 방안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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